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 중 하나는 살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한국에 살면서 살림은 거의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컨설팅 업무를 하기도 했고, 현업으로 옮긴 회사에서도 야근이 많아, 늘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렇다 보니 살림은 무슨…
할머니, 할아버지와 더 큰 정을 나눈 우리 딸은 주재원 부임 전 할머니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제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게 생겼다’며 엄마가 밥이랑 반찬을 못해서 어떻게 하냐며 그렇게 대성통곡을 했다. 사실 나도 그게 걱정이긴 했다. 세탁기에 세제는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장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좋은 식재료는 어떻게 구분하는지 등.. 남들은 이미 다 아는 것들조차 새롭게 배워야 할 것들이 하나 두 개가 아니었다.
아… 일을 한다는 핑계로 나는 그동안 세상 살며 필요한 필수 지식 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채 살아왔던가.. 바빠 보이는 커리어 우먼이라는 허상 속에 정작 살면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들은 하나도 익히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왔던 것이다.
안 쓰던 영어를 쓰며 일을 하고,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이다 보니 정시에 퇴근을 해도 한국에서 12시까지 야근을 한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온다. 문제는 그렇게 퇴근을 해서 집에 와도 고생했다며, 따뜻한 밥을 차려주시던 엄마가 이곳에는 안 계신다. 대신 내 퇴근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원재가 있다.
이곳에 처음 와서는 퇴근해서 고작 찌개 하나를 새로 해서 밥을 먹고 치우는 데 2시간이 걸렸다. 진수성찬이라도 차렸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고작 된장찌개, 김치찌개 하나를 끓이는 데 레시피를 숱하게 보며 재료를 다듬고 손질하고.. 엄마는 쉽게 쉽게 하던 것들이 나는 왜 이리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버벅거리고 더듬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건 하나도 없구나.. 매일 밥을 해 먹으며 내가 그동안 참 날로 먹은 게 많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한 끼 한 끼 해 먹는 것이 이렇게 고역이고 수행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