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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이 어둠만 밝혀 주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by SingleOn

40 중반이 넘도록 살면서 나는 평생 반경 20km를 벗어나지 못한 공간에서만 살아왔다. 그러니 얼마나 편협한 시각을 가진 채,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것인가. 퇴근 후 아이와 걸어서 산책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 집에서 5분이면 도다를 수 있는 우면산, 차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한강 시민 공원, 오색 찬란한 백화점과 대형 서점 등, 나는 그냥 그런 인프라가 없는 삶은 상상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당연히 밤길의 반짝이는 가로등, 잘 닦여진 도로, 식별하기 좋은 차선 들은 아마 여기 오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공기와 같은 존재라 감사하다는 생각도 못한 채 말이다.


11월이 되면 이곳 폴섬은 5시만 되어도 어둠이 짙어지고, 저녁 6시가 되면 칠흑 같은 어둠의 세상으로 변한다. 이런 도로의 어두움을 한국과 비교하면 어디 깊은 산속, 굳이 인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굳이 굳이 찾아가는 장소에서나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는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 차로 운전해서 꼴랑 10분도 안 되는 길인데, 그 길이 그렇게 무서웠다. 길도 낯설고, 미국에서의 운전도 처음이라 항상 잔뜩 긴장 상태에서 운전을 했다. 혹시 사고라도 나거나 도로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절박함, 서툰 영어로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무엇보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자체가 투쟁 같은 데다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과 망막함이 깜깜한 도로와 만나 시너지를 내면서 그렇게 무섭기만 했다. 천조국이라며, 왜 이렇게 도로가 깜깜한 거야, 차고 넘치는 물자로 왜 도로에 가로등을 빼곡히 심지 않는 거야.. 이런 원망과 푸념을 운전 내내 읊조리며 말이다.


집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나면 매 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가로등 좀 없는 길을 고작 10분 남짓 운전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가로등이 마치 내 불안하고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며 좋은 길로 안내라도 해주는 양, 길가에 가로등 없음을 탓하며 불평했다. 깜깜한 도시를 보는 게 마치 내 앞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나는 누군가로부터 ‘아무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지금 너는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가로등 불빛이 어두운 골목길을 따스하게 밝혀 주듯, 내 마음도 누가 좀 밝혀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던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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