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심리적 자립이 먼저인 이유

흔들리는부모, 흔들리는아이(2)

by 모라


부모의 심리적 자립이 먼저인 이유


우리는 모두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합니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마음과 달리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이때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한번 해보세요


"나는 어떤 순간에 화를 내는 걸까?"

"나는 아이의 어떤 말이나 어떤 행동에 흔들리는 걸까?"




아이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내 감정을 가장 많이 건드리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이의 감정보다 내 감정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가 내 감정을 자극하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억울했던 과거의 감정,

자존감이 흔들렸던 순간,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이의 한마디에 툭 하고 드러나버립니다.




저는 27년 동안 아동복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정말 많은 부모님들과 후원자님들, 아이들을 만나왔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저소득가정의 부모님들,

아이들을 홀로 돌보는 조부모님들,

그리고 자수성가한 20~70대 여러 후원자님들까지...

삶의 배경은 달라도,

아이를 향한 마음은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예전엔 KBS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심리치료나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당시 그 프로그램에 소개되지 않았던 아이들 역시

전국 사회복지사들이 추천하고 심의를 거쳐 후원금을 배분받을 수 있었죠.


그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습니다.




제가 20대 후반,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정위탁은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

유기, 학대, 경제적 사유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일시적으로 다른 가정이 맡아주는 제도입니다.


그때 한 아이가 위탁의뢰되어 심리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반사회적 성향이 매우 강했고,

이대로 크면 사이코패스로 성장할 확률이 높다는 평가까지 받았죠.


그 아이는 안정적인 위탁가정에 배정되어

1년 넘게 꾸준히 심리치료를 받았고,

재검사 결과는 놀라울 만큼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행동은 현저히 줄었고,

무엇보다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이 아이는 처음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어른들의 말에 무반응이었습니다.

장난감을 부수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행동도 잦았죠.

하지만 1년 후, 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화가 나요"라고 말하며 도움을 청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위탁부모님은 특별한 기법보다 단순하지만 깊은 변화를 가져온 접근법을 사용했습니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했고,

감정이 격해질 때는 안아주되 위험한 행동은 단호하게 제한했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 스스로가 심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이런 부모님을 "충분히 좋은 부모(good enough parent)"라고 표현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아이의 필요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회복할 줄 아는 부모가 오히려 아이의 건강한 발달을 돕는다는 개념이죠.


무엇이 변화를 만든 걸까요?


심리치료도 물론 중요했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아이를 품은 위탁부모님의 마음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정은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아이의 아픔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단했습니다.


반대로,

어떤 가정에서는 심리치료를 받아도

일시적으로만 호전되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반복됐습니다.

그런 사례들은 대부분,

주양육자의 정서적 불안정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아이에게 심리치료를 해도

돌아갈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심리학자 해리 스택 설리번(Harry Stack Sullivan)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을 그대로 내면화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불안정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불안정한 내면을,

안정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안정된 내면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런 내면화 과정은 말로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는 그 모습을 '체화'하게 됩니다.




이건 비단 위탁가정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보호대상아동 자립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아이들의 자기 주도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프로그램의 내용이 아니라,

주양육자의 심리적 안정과 양육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양육 태도는 결국

그분의 심리적 자립,

즉, 내면의 회복 정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이 모든 경험들이 저에게 알려준 것은 단 하나입니다.

부모의 심리적 자립이 먼저입니다.


내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을 다룰 수 있어야

아이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밀어내지 않게 됩니다.


내가 내 속도를 인정할 수 있어야,

아이의 속도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내가 내 기준을 세울 수 있어야,

아이의 기준도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 아이도 덜 불안합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완벽한 말과 행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회복할 줄 아는 어른의 모습입니다.


내가 나를 지킬 줄 알 때,

아이는 그 울림 안에서

자신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결국,

부모의 심리적 자립은

아이의 심리적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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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아이와 갈등이 생길 때 "지금 내 감정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반사적인 반응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음화 예고


《모라의 정원》

3-3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자기 회복을 아는 부모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어느새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바뀌진 않았나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그리고 부모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게 될 때

가족은 함께 성장합니다.


흔들리는 부모, 흔들리는 아이 3화의 마지막 이야기,

《모라의 정원》에서 따뜻하게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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