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끌려다니지 않고, 함께 서는 힘(3)
며칠 전, 딸아이가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이야기였습니다.
같이 노는 친구 셋 중에, A는 아이가 생각하는 '절친'이었고 B라는 친구도 함께 어울리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B 친구가 아이에게 서운함을 자주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오늘은 너를 투명인간처럼 대할 거야." "넌 왜 자꾸 A랑만 놀아?"
처음엔 당황했고, 다음엔 속상했고, 결국엔 "미안해. 너랑도 놀고 싶어."
그렇게 스스로 잘못한 게 없어도,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해요.
"그 친구가 싫은 건 아닌데… 그냥 너무 힘들어."
그 말속에는, 친구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만 때로는 친구의 행동에 상처받으며,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안해져 버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의 복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이럴 땐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요?
"그 친구랑 놀지 마!"라고 잘라 말해주는 게 나을까요? "그건 걔가 너무 예민한 거야."라고 친구 탓을 해줘야 할까요?
섣부른 답을 대신 말해주기보단, 그 상황 속에서 자기가 느낀 감정과 욕구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일.
그게 제가 아이와 함께 찾아갈 수 있었던 길이었어요.
회복을 아는 부모란 '정답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회복하는 방식을 함께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먼저 감정을 다스리고, 아이의 마음을 해석하며, 관계에서 '함께 서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죠.
1. 아이의 감정 속 신호를 듣는다 → "그 상황이 네겐 어떤 기분이었어?" → 감정 속에는 아이의 욕구, 기준, 경계가 숨어 있어요.
2. 감정과 행동을 구분해서 말해준다 → "그 친구가 서운할 수 있지만,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하며 무시하는 건 다른 문제야." → 아이는 감정을 수용하면서도 기준을 세우는 연습을 합니다.
3. 자기감정도 함께 나눈다 → "엄마도 예전에 그렇게 해서 속상했던 적이 있었어." → 감정은 잘못이 아니라 이해와 연결의 시작이라는 걸 알려줘요.
4. 경계를 표현하는 문장을 함께 연습한다 → "너는 그 친구와 어떤 관계를 원해?, 친구가 너에게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어?" →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고, 그걸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할 수 있어요.
5. 실패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 "네가 솔직하게 말했는데도 상대방이 바로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 솔직한 표현이 곧 관계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요.
1단계 - 감정 속 신호 듣기
엄마: 그때 기분이 어땠어?
아이: b친구 싫은 건 아닌데, a친구랑 놀면 매번 뭐라고 하고 쪽지 보내고, 투명인간취급한다고 하고, 미안해라고 사과할 때까지 표현을 해서 손절하기 직전이야
엄마: 아 그럼 친구랑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런데 또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런 거구나?
아이: 맞아요 친구는 좋은데, 자꾸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게 싫어요
2단계 - 감정과 행동 구분하기
엄마: B친구가 그때 어떤 감정이었을 것 같아?
아이: 서운하고 질투가 났을 거 같아요.
엄마: 맞아. 그런 감정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그래서 친구의 마음은 이해하고 공감해줘야 하는 감정이야. 하지만 서운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해도 될까?
아이: 아니요
엄마: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고 모라에게 투명인간취급하거나 쪽지로 괴롭히는 행동 또한 친구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거야.
3단계 - 내 감정도 함께 나누기
엄마: 엄마도 어릴 때 친구 사이에서 그런 적이 있었어. 정말 혼란스럽더라고
아이: 엄마도 그랬어요? 엄마는 어떻게 했어요?
4단계 - 경계 표현 연습하기
엄마: 모라는 그 친구와 어떤 관계를 원해? 그리고 친구가 모라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아이: 친구랑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A친구랑 놀 때마다 미안해하거나, 투명인간 취급은 받기 싫어요
엄마: 그럼 네가 원하는 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 볼 수 있을까?
아이: 어떻게 말할 줄 모르겠어요
엄마: 방금 엄마한테 말한 거처럼 친구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모라의 마음을 먼저 표현하고(모라의 관계에 대한 욕구 인정), 불편한 상황에서의 친구의 감정을 수용해 주고(상대방의 감정인정), 그다음 모라의 마음이 왜 불편한지 이야기(구체적인 상황과 나의 감정)하고 그래서 모라는 친구가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어(대안제시) 이렇게 말해보는 거야 한번 연습해 볼까?
아이: 나는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내가 A랑 놀 때 네가 서운한마음이 드는 것도 이해해. 그래도 내가 A랑 놀 때 투명인간 취급하겠다고 하고 쪽지로 기분 나쁘다고 하면 나도 속상해. 그래서 앞으로는 서운하면 말로 직접 이야기하고 그냥 같이 놀았으면 좋겠어.
5단계 - 다시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주기
엄마: 모라가 진심을 다해 말했는데도 그 친구가 바로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네 마음을 표현한 건 용기 있는 일이고, 관계가 끝나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서로 마음을 정확히 전달할수록 더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어. 서로 맞춰가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반복되는 불편함이 있다면 다시 처음부터 생각을 하면 돼.
아이: 응 엄마 친구한테 연습한 대로 말해볼게요.
이 5단계를 통해, 부모는 단지 아이를 훈육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과 관계를 함께 회복하는 동반자가 됩니다.
함께 성장하는 관계란, 나만 편한 관계도, 상대만 편한 관계도 아니에요. 내 마음을 전달하고, 불편할 때 "나는 이런 기분이야"라고 표현할 수 있는 관계. 그런 관계에서 아이들은 진짜로 자라날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 아이에게 가르쳐준 것은 완벽한 의사소통 기술이 아니라 이 세 가지였습니다.
1. 불편한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것 → "미안하다고 했지만, 억울했던 마음도 있었구나." → 감정의 '다름'을 인정하면 자기감정의 기준이 생겨요.
2. 친구의 감정은 이해하지만, 행동은 구분해서 보도록 돕는 것 → "서운한 건 이해하지만, 무시하는 건 너도 속상하지?" → 상대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감정을 지킬 수 있어요.
3. 솔직한 표현이 곧 관계의 끝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 → "네가 마음을 표현하면, 오히려 더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어." → 아이는 그 말을 믿고, 말하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어요.
아이가 관계에서 배우는 것, 그건 단순한 사회성 기술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이해받고,
또 누군가의 마음도 들여다보는 연습입니다.
그 경험이 반복되면 얻고자 하는 건 얻게 하고,
지켜야 할 건 지키게 하는 '자기 주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관계는, 함께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연습이에요.
완벽하게 맞춰지는 퍼즐처럼 꼭 들어맞지 않아도, 서로 다른 모양 그대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이.
불편함을 말할 수 있고, 서운함을 감정적으로 협박하지 않으며, 내가 바뀌고 너도 성장할 수 있는 관계.
아이에게 그런 경험을 심어주는 것, 그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깊은 감정 코칭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릴까?" "누군가 한 마디만 해도 마음이 복잡해져요."
다음 화에서는 외부의 기준보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흔들려도 괜찮아요. 당신은 점점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으니까요.
《모라의 정원》에서 곧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