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가지 않으면서 함께 서는 법(1)
"우리 아이는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다 따라가요. 싫어도 말도 못 해요."
며칠 전, 한 엄마가 제게 털어놓은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들이 위험한 놀이를 하자고 했는데, 우리 아이는 분명 무서워하고 있었지만 "응, 좋아"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반대로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부모님도 계세요. "자기주장만 해서 친구들이 피곤해하는 것 같아요." 아이가 자기 의견은 확실히 말하는데, 친구들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걱정된다고 하시죠.
또 다른 아이는 "같이 놀고 싶어서 매번 맞추려 하는데, 그러다 상처받고 와요."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계속 양보하다가, 결국 혼자 서운해하며 집에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아이가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건 잘하는 것 같은데, 정작 그 관계 속에서 우리 아이의 마음은 잘 지켜지고 있는 걸까요? 이렇게 계속 맞추기만 하다 보면 자기다움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아이들이 친구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보면, 대부분 극단적인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끌려가는 아이'입니다.
친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서 자기 마음은 꾹꾹 눌러 담아요. "친구들이 싫어할까 봐", "혼자가 될까 봐" 무서워서 자기 생각이나 감정은 뒤로 미뤄둡니다. 겉으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같지만, 집에 오면 "오늘도 재미없었어" 하며 시무룩해합니다.
이는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아쉬(Solomon Asch)의 유명한 동조 실험을 떠올리게 해요. 실험에서 사람들은 명백히 틀린 답도 다수가 선택하면 따라가는 경향을 보였거든요. 우리는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위험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예요. 특히 한국처럼 집단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집니다.
두 번째는 '단절하는 아이'예요. 싫으면 "안 해!"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자기 입장은 확실히 지키지만, 그러다 보면 친구들과 어색해지거나 혼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못 알아듣지?" 하면서 답답해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정말 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을까요? 친구들과 잘 지내려면 꼭 내 마음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내 마음을 지키려면 혼자가 되는 걸 감수해야 할까요?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이런 상황을 '개별화(individuation)' 과정으로 설명했어요. 진정한 성숙은 집단에 매몰되지도 않고, 완전히 고립되지도 않으면서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죠. 사실 많은 어른들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직장에서, 가족 관계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다 맞춰주자니 내가 힘들고, 내 뜻대로 하자니 사람들과 멀어지고..." 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제3의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바로 나를 지키면서도 관계를 맺는 능력이죠.
그런데 많은 부모님들이 이런 고민을 하세요. "우리 아이가 친구들 눈치를 너무 봐서 걱정이에요." 아이가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고, 자기 의견은 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말해"라고 조언하시곤 하죠.
사실 위에서 말한 '끌려가는 아이'의 행동도 결국은 눈치를 보는 거예요. 친구들의 반응을 살피고, 분위기를 읽고,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계산하는 거니까요.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기 마음은 뒤로 밀려나는 거죠.
한국 사회에서 눈치는 꽤 중요한 생활 기술이에요. 회의실에서 분위기를 읽고 적절한 타이밍에 발언하는 것, 친구가 힘들어할 때 그 마음을 알아채고 위로해 주는 것, 상황에 맞게 자기 행동을 조절하는 것... 이 모든 게 눈치라는 사회적 감각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실제로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인지능력'이라고 불러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능력 말이에요.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가 제시한 다중지능 이론에서도 '대인지능'을 중요한 지능 중 하나로 분류했죠.
실제로 눈치가 너무 없는 것도 문제가 되죠. 다른 사람 기분은 전혀 살피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아이를 본 적 있으실 거예요. 그런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른다", "이기적이다"라는 소리를 듣기 쉬워요. 심리학자들은 이를 '마음이론(Theory of Mind)'의 부족으로 설명하는데,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많은 부모님들이 "얘가 눈치는 빨라요", "애가 분위기 파악은 잘해요"라고 말하며 안심하시는 것도 당연해요.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 눈치는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언제 생기는 걸까요? 바로 그 눈치가 '자기 마음을 억누르는 도구'가 될 때입니다.
친구가 하자는 대로 하면서 속으로는 "정말 하기 싫은데..."라고 생각하지만 말은 못 하고, 의견이 달라도 "내가 이상한 건가?" 하며 자기 생각을 의심하고,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친구들과 함께 있기 위해 자기 기준을 계속 포기하게 되는 거죠.
이는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의 사회학습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면 내 마음을 숨겨야 한다'는 패턴을 학습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외적 통제소재(external locus of control)'가 강해져서, 자기 삶의 주도권을 다른 사람의 반응에 맡기게 돼요.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이를 '거짓자기(false self)'라고 불렀어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만 살다 보면,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는 거죠. 겉으로는 관계가 유지되는 것 같지만, 아이의 자기다움은 점점 희미해져요. 나중에는 "나는 진짜 뭘 좋아하는 거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뭘까?"라는 질문에도 답하기 어려워지게 되죠.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이들의 자존감과 정체성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자기감정을 계속 억압하다 보면 감정 조절 능력도 떨어지고,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도 약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건 눈치를 아예 없애는 게 아니라, 눈치를 보면서도 자기 마음을 잃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거예요.
아이의 나이에 따라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달라져요. 발달심리학자 에릭슨(Erik Erikson)의 발달단계 이론을 보면, 각 연령대마다 중요한 발달 과제가 다르거든요.
이 시기는 에릭슨이 말한 '주도성 대 죄책감' 단계예요. 아이들이 자기 의지를 표현하기 시작하는 시기죠. 이때 아이들에게는 복잡한 사회적 기술보다는 자기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이 더 중요해요.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은 전전두엽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특히 UCLA의 매튜 리버만(Matthew Lieberman) 교수의 연구에서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편도체의 활성화가 줄어들고 감정 조절이 더 쉬워진다는 걸 보여줬죠.
"지금 어떤 기분이야?"라고 자주 물어보세요. 아이가 대답하기 어려워한다면 "아, 지금 화난 것 같구나", "속상해 보이네" 하면서 감정을 이름 붙여주세요.
그리고 부모도 자기감정을 자주 말로 표현해 보세요. "엄마는 지금 조금 피곤해", "아빠는 지금 기분이 좋아" 이런 식으로요. 아이는 부모를 보면서 '아, 감정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해도 되는구나'를 자연스럽게 배워요.
이 시기의 목표는 단순해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걸 말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거예요.
이 시기는 '근면성 대 열등감' 단계로, 아이들이 사회적 규칙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 역할을 찾아가는 시기예요. 이때부터는 자기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울 수 있어요.
이 시기 아이들의 뇌에서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급속히 발달해요. 특히 측두엽과 전전두엽 사이의 연결이 강화되면서 '나'와 '너'를 동시에 고려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갈등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거절할 때도 무작정 "안 해"가 아니라 "나는 이런 이유로 어려워서, 대신 이건 어때?" 하면서 이유와 대안을 함께 제시하는 거죠.
친구의 감정도 함께 고려하는 말하기도 연습해 봐요. "너도 속상하겠지만, 나도 이런 기분이야"처럼 서로의 마음을 인정하면서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이 시기의 목표는 나를 지키면서도 친구를 배려하는 기본적인 표현 방법을 익히는 거예요.
이 시기는 '정체성 대 역할 혼란' 단계의 시작으로, 아이들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해요. 동시에 또래 관계가 가장 중요해지는 시기이기도 하죠. 이때는 더 복잡한 사회적 상황에서도 균형을 잡는 연습이 가능해요.
이 시기 아이들은 여러 사람의 관점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게 된다고 해요. 집단 역학을 이해하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도 자기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죠.
집단 내에서 의견이 갈릴 때 어떻게 대처할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또래들의 압력을 받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이런 상황들을 미리 대화로 연습해 볼 수 있어요.
이 시기의 목표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친구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아이로 키우는 거예요.
이론은 좋은데, 실제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자주 겪는 상황들을 예로 들어볼게요.
지수가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다른 반 아이를 보더니 "쟤 좀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놀려주자"라고 말했어요.
보통 아이들은 이럴 때 어떻게 반응할까요?
- 끌려가는 반응: "어... 그래." 마음으로는 불편하지만 친구들이 자기를 나쁘게 볼까 봐 걱정돼서 그냥 따라가요. 끝나고 나서는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자책하죠.
- 단절하는 반응: "난 안 해." 자기 기준은 확실히 지켰지만, 친구들이 "쟤는 재미없어" 하면서 멀어질 수 있어요.
- 나를 지키면서 관계 맺는 반응: "너희가 왜 화났는지는 알겠어. 나도 그런 적 있어. 근데 저 친구도 기분이 있을 것 같아서... 우리끼리 재밌는 다른 거 해보면 어때?"
마지막 반응이 왜 좋을까요? 친구들의 감정을 먼저 인정해 주면서도,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거든요.
민지는 친구와 술래잡기를 한 시간째 하고 있어요. 이제 지겨워졌는데 친구는 계속하자고 해요.
- 끌려가는 반응: "응... 또 하자." 자기는 지겹지만 친구가 좋아하니까 계속 맞춰줘요. 점점 재미없어지고 짜증도 나지만 말은 못 해요.
- 단절하는 반응: "난 집에 갈래." 더 이상 못 하겠다며 놀이를 끝내버려요. 친구는 서운해 할 수 있죠.
- 나를 지키면서 관계 맺는 반응: "이 놀이도 재밌긴 한데, 난 이제 다른 것도 하고 싶어졌어. 우리 새로운 거 해볼까? 아니면 이걸 조금 바꿔볼까?"
이렇게 말하면 지금 놀이를 무시하지도 않고, 자기 욕구도 표현하고, 함께 새로운 방법을 찾아갈 수 있어요.
수진이는 새로 산 색연필이 자랑스러워요. 그런데 친구가 자꾸 빌려달라고 해요. 처음 한두 번은 기꺼이 빌려줬는데, 이제는 좀 부담스러워요.
-끌려가는 반응: "또... 그래." 친구가 서운해할까 봐 계속 빌려주지만, 내심으로는 스트레스를 받아요.
-단절하는 반응: "이제 안 빌려줘."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친구는 서운해해요.
-나를 지키면서 관계 맺는 반응: "네가 내 색연필 좋아해 줘서 고마워. 근데 이건 내가 아끼는 거라서 좀 조심히 다루고 싶어. 대신 이거 같이 써볼래? 아니면 네 것도 같이 보여줄래?"
이렇게 말하면 친구의 마음도 인정해 주고, 자기 기준도 분명히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 놀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할 수 있어요.
위의 예시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예요.
첫 번째 단계는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인정해 주세요.
"네 마음 알겠어", "나도 그랬던 적 있어", "그럴 수 있지" 이런 말로 시작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아, 이 친구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구나" 하면서 마음을 여는 걸 도와줍니다.
소통의 첫 단계는 공감입니다. 뇌과학적으로도 공감을 받을 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신뢰감이 형성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요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이야", "나는 이럴 땐 좀 힘들어",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이런 식으로 자기 입장을 분명히 하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I-message(나 전달법)'를 사용하는 거예요. 심리학자 토마스 고든(Thomas Gordon)이 제시한 개념으로, "너는 왜 그래?"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느껴"라고 말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공격받는다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어요.
세 번째 단계에서는 함께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해요.
"그럼 이런 건 어때?", "같이 더 좋은 방법 찾아볼까?", "우리 둘 다 괜찮은 방법이 있을까?" 이렇게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거죠.
입장 대립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찾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3 단계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관계를 살리겠다는 마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도 친구가 이해 못 하면 어떡하죠?" 맞아요, 처음에는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아이가 용기를 내서 자기 마음을 말했는데 친구가 화를 낼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처음에는 어려워도 괜찮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네가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그리고 친구가 화를 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미리 이야기해 두세요. "친구가 화낼 수도 있어. 그래도 네 마음을 말하는 게 중요해. 진짜 친구라면 시간이 지나면 이해해 줄 거야.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해 줄 순 없어. 그래도 너는 옳은 일을 한 거야."
사회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라고 해요.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는 거죠. 다양한 관계의 형태가 있다는 것, 혼자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는 것도 아이에게 알려주세요.
아이가 갑자기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게 대처할 수는 없어요. 단계별로 연습해 보면 좋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를 '스캐폴딩'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부모가 많이 도와주다가 점점 도움을 줄여서 결국 아이가 혼자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면, 자전거 타기를 부모님이 자녀를 가르칠 때, 처음에는 부모가 뒤에서 자전거를 꽉 잡아주고, 그다음에는 살짝만 잡아주고, 마지막에는 손을 놓아도 아이가 혼자 탈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가 먼저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아이에게 "너는 네 마음을 지키면서 친구들과 잘 지내야 해"라고 말만 한다고 해서 아이가 갑자기 그럴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말보다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워요.
반두라의 유명한 '보보 인형 실험'에서 보듯이, 아이들은 직접 가르치지 않아도 어른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학습한다고 했죠. 특히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의 행동은 아이에게 가장 강력한 학습 모델이 돼요.
일상에서 부모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소통하는지... 이 모든 걸 아이는 지켜보고 있어요.
가장 가까운 관계인 아이와의 갈등 상황에서부터 연습해 보면 어떨까요?
아이가 뭔가 잘못했을 때 "그건 네가 잘못했잖아"라고 바로 지적하는 대신, "그렇게 속상할 수 있겠다. 엄마도 그런 기분 들 때 있어"라고 먼저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 주세요. 그러면 아이가 마음을 열고 진짜 이야기를 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부모도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세요. "엄마는 괜찮아. 너만 좋으면 돼"라고 무조건 양보하는 대신, "지금은 엄마도 조금 쉬고 싶어. 그러고 나서 같이 놀자"라고 자기감정과 욕구를 구체적으로 말해보는 거예요. 심리학에서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신뢰와 연결을 만든다고 해요. 부모가 완벽하지 않은 모습, 자기감정과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낼 때 아이도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는 거죠.
그리고 뭔가를 거절할 때도 "이건 안 돼"로 끝내지 말고, "이건 어렵지만, 이런 방법은 어떨까?"라고 대안을 함께 제시해 보세요.
"그런데 저도 관계에서 어려워하는데,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쳐주죠?"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아요.
괜찮아요. 부모도 사람인 걸요. 우리도 관계 속에서 혼란스럽고, 서운하고, 버거울 때가 많아요. 때로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내 마음도 잘 몰라서 허둥댈 때도 있죠.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회복하는 능력이에요. 부모와 아이 사이의 애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완벽한 상호작용이 아니라 '관계 복구' 능력이에요. 갈등이나 실수 후에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내가 감정적으로 흔들렸을 때, 아이에게 화를 냈을 때, 그 후에 어떻게 관계를 회복하느냐가 더 중요해요.
"엄마가 조금 전에는 미안했어", "엄마도 화났지만, 지금은 너와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 이런 회복 대화 하나가 아이에게 '자기감정을 돌아보고 다시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줘요.
우리가 일상에서 정말 나를 지키면서 관계를 맺고 있는지 한번 돌아봐요.
피곤한 날에도 "괜찮다"며 억지로 모임에 참석하고 있지는 않나요?
가족이나 친구의 무리한 요구에 "어쩔 수 없지" 하며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나요?
아이 앞에서 늘 "엄마는 괜찮아"라고 하면서 내 감정을 숨기고 있지는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아이는 말없이 배우고 있을 거예요.
"관계를 지키려면 내 마음을 포기해야 하는구나"라고 말이에요.
반대로 부모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나를 지키면서도 관계를 맺을 수 있구나"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돼요.
이론만으로는 부족하죠. 실제로 나를 지키면서 관계 맺는 법을 연습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려드릴게요.
상황 1: 아이가 무리한 요구를 할 때
(X) 기존 방식: "안 돼" (단절) 또는 "알았어" (끌려감)
(0) 나를 지키면서 관계 맺기: "네가 그걸 갖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 그런데 엄마는 지금 이런 이유로 어려워. 대신 이런 건 어떨까?"
상황 2: 아이가 떼를 쓸 때
(X) 기존 방식: "그러면 안 돼!" (억압) 또는 "그래, 해줄게" (포기)
(0) 나를 지키면서 관계 맺기: "정말 화가 났구나. 엄마도 그런 기분 알아. 그런데 지금은 이건 안 되고, 우리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상황 3: 내가 피곤할 때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
(X) 기존 방식: "엄마 피곤해, 나중에" (내 마음만) 또는 억지로 놀아주기 (내 마음 무시)
(0) 나를 지키면서 관계 맺기: "너와 놀고 싶은데, 엄마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제대로 놀아주기 어려울 것 같아. 10분만 쉬고 그다음에 재밌게 놀까?"
핵심은 이거예요: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인정하고 (관계 유지)
내 상황과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나 지키기)
둘 다 괜찮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함께 찾기 (win-win 해결책)
이렇게 하면 아이는 "엄마도 감정이 있구나",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구나", "문제가 생겨도 함께 해결할 수 있구나"를 동시에 배우게 돼요.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에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죠.
하버드 대학의 진행한 성인 발달 연구에 따르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좋은 관계'라고 해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좋은 관계'는 무조건 맞춰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관계를 의미하죠.
그런 관계 속에서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 그게 바로 우리가 아이에게 길러주어야 할 진짜 자립심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 자립이 매우 중요합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오늘 하루, 아이와의 작은 갈등 상황에서 한 번만 달리 반응해 보는 거예요.
아이가 "친구가 내 장난감을 안 돌려줘서 화가 나"라고 말한다면, "그건 네가 잘못 빌려준 거야"라고 답하는 대신 "그랬구나, 정말 속상했겠다"라고 먼저 마음을 받아주세요. 그리고 "엄마도 그런 일 있었는데 정말 기분 나쁘더라"라고 공감해 주세요. 그다음에 "그럼 내일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면서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는 거예요.
아이가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이 내가 싫어하는 놀이를 하자고 했어"라고 말한다면, "그럼 안 한다고 말했어야지"라고 훈계하는 대신 "어떤 기분이었을까? 말하기 어려웠겠네"라고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같이 연습해 볼까?" 하면서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생각해 보세요.
이런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워요. '아, 내 마음을 말해도 되는구나', '상대방 마음도 생각하면서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구나', '갈등이 생겨도 관계가 끝나는 게 아니라 더 좋아질 수 있구나'를 말이에요.
이 글을 읽고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좋은 부모예요. 아이가 친구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를 바라는 마음, 아이가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아이에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오늘 하루 속에서 한 번 더 내 마음을 살피고,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는 순간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나를 지키면서 관계 맺는 부모로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부터 함께 연습해 봐요. 작은 대화 하나, 작은 반응 하나가 우리 아이의 평생 관계 맺는 방식을 만들어갈 테니까요.
모라의 정원 다음화에서는
사랑하니까 다 들어줘야 할까?’ ‘거절하면 아이가 상처받진 않을까?’
사실, 경계는 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지켜주는 선일지도 모릅니다.
"경계설정은 사랑의 반대가 아니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