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온 자리에서, 나에게

떠나왔기에, 비로소 내가 되었다

by 주말이

서울에 올라온 지 벌써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숫자로 적어보니 세월은 담담한데,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떠나는 것이 참 어려웠다.
떠나면 안 될 것 같았고, 떠나면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을 것만 같았다.
내가 살던 곳에는 그 시절의 나의 전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를 설명해 주던 수많은 추억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떠난다는 것은
공간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잘라내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큰 결심으로 떠나온 뒤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꽤 잘 살아왔다.
때로는 힘들었고, 때로는 흔들렸지만
결국 나는 여기까지 왔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떠나왔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된 건 아닐까?’


그곳에 남아 있었다면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이고, 친구였고,
어제의 기억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서울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삶은 뒤돌아보며 이해되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요즘 들어 자주 마음에 남는다.
그때의 선택이 옳았는지 글렀는지는
그 순간에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의 나는,
그 선택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떠나온 시간들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잃어본 사람만이 선택의 무게를 알고,
홀로 서본 사람만이 자기 삶의 온도를 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나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세월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간들을 버텨낸 나 자신에게
조용히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니체는 말했다.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이미 예술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완벽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잘 떠나왔다.
그리고 잘 살아왔다.
오늘만큼은 그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은
잘 살아온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고마움을 전한다.

“수고 많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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