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지키는 귀여운 고양이
2023년 10월 21일은 유난히 날이 추웠다.
오랜만에 막내 작은엄마네와 친정식구들과 시골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금의 시골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집이 몇 백 년 되어 관리를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 폐가처럼 변한다며 부모님께서는 거의 매주 방문하여 집을 관리하시고 미니텃밭에 작물도 키우고 있다.
세종은 비가 내리고 있으니 조심히 오라는 엄마의 연락을 받았다.
남편은 비의 요정이 세종 가는 걸 어찌 알고 하늘에서 비를 내린다며 웃었다.
시골집 근처에 왔을 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오히려 예쁜 무지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엄마표 치즈닭발로 낮술 한잔했다.
우리 도착하는 시간 맞춰서 하느라 바빴다는 엄마의 말에 엄마최고라며 맛있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는 우리의 요리사다.
남편도 다행히 엄마 음식이 입에 맞아 잘 먹는다.
시골은 달이 잘 보인다.
푸르스름한 하늘에 떠있는 달이 왜 이리 예뻐 보이는 건지.
나의 느낌일 뿐이지만 서울에서 보는 달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용하고 평화로 가득한 시골집 마당에서 보는 달은 옛날 생각이 들어 미소를 짓게 하고, 유난히 힘든 날이 많았던 날은 울컥하게 만든다.
옆집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달 보며 떠드는 소리에 잠시 나오셔서 같이 얘기하다가 아빠가 키운 호박을 보며 “주말마다 오더니 예쁘게 잘 키웠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할머니가 생각난다.
마당에서 얘기하다가 “할머니 이제 고기 구울 건데 같이 드셔요”라는 말에 “아녀, 난 자야 혀” 하며 손사래를 치며 불을 끄고 들어가셨다.
시골분들은 정말 일찍 주무신다.
해가 떨어지면 불 켜있는 집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어둠이 찾아오면 산에서는 부엉이 소리가 들린다.
예전에 고라니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무서워서 아빠를 깨운 적이 있다.
아빠는 고라니소리 처음 듣냐며 집까지 내려오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갑자기 고라니 생각이 나서 대문을 잠갔다.
나는 은행을 좋아한다.
아빠는 시골집 뒷산에 있는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잔뜩 따다가 손질해 주셨다.
“허리 아프다 하면서도 딸이 좋아하는 거 해줄 땐 안 아프지?”라는 엄마의 말에 조용히 웃기만 하는 아빠.
작은엄마는 “나는 어째 딸이 없을까 부러워 형님” 하며 엄마를 쿡 찔렀다.
결혼을 했어도 나를 보는 부모님의 눈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
삼겹살 파티가 시작되었다.
아빠와 작은 아빠는 번갈아가며 고기를 구워주셨다.
날은 추웠지만 밖에서 먹는 고기는 어쩜 이리 맛있는 건지
분위기가 무르익고 막냇동생이 마당에 서서 외쳤다.
“누나 하늘 봐 별이 엄청 많아”
막내의 말에 우리 모두 하늘을 쳐다봤다.
괌에서 본 별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구나’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셨다면 같이 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우리 동네에선 점보도시락 구하기가 어려웠다.
작은 아빠도 아는 분이 주신 건데 우리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셔서 웃음바다였다.
동생들은 라면을 좋아하는데 점보라면을 볼 때마다 누나네 언제 오냐며 기다렸다고 했다.
저녁 다 먹고 치운 뒤 마당에 앉아 불멍을 했다.
엄마가 불에 뿌리면 오로라 색상을 볼 수 있다는 신기한 가루를 가져왔다.
너무 예뻐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멍하니 보다가 이건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었다.
지금 봐도 참 예쁘다.
시골의 아침은 동물들이 깨워준다.
옆집 할머니의 닭이 우는 “꼬끼오”,
감나무 위를 날아다니는 까치와 참새의 소리 “짹짹”,
아침밥 달라고 우는 길고양이 “야옹야옹”
늦잠을 잘 수가 없다.
아빠의 손을 타서 아빠에게는 잘 가는데 나에게는 선뜻 오지 않는다.
고양이 아침부터 챙겨주고 아빠와 작은 아빠를 따라 호박을 땄다.
수레 한가득 실으니 내가 끌 수는 없었다.
호박 하나만 들었을 때도 묵직했는데 여러 개가 모이니 어후 너무 무겁다.
늙은 호박죽 해 먹으라고 엄마가 손질해 줘서 지퍼백에 넣어 집 오자마자 얼렸다.
떠나기 전 우리의 아침이다.
배 든든히 채우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