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밤 속_붉은 점

챕터3

by 김현진

열린 문틈사이로 TV 소리가 들려와 잠을 깼다.

한 시간정도 잤을거라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처다 보니 벌써 오후 2시였다.

계속해서 대화창의 내용이 오버래핑 되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닥쳐온 현실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닳았다.

이제는 이 시끌벅적한 대화방에 끼는 방법말고는 도망갈 길이 없어보였다.

형사들이 나에게 가장 먼저 찾아왔다고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가 어떻게 된 일이냐며 나에게 되물었지만,

나도 아는 바는 없으며 차례대로 그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대화방의 내용을 처음부터 확인해보니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먼저 연락을 취한 성운이를 제외하고는 희정이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가족들을 걱정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챙기는데 급급해 보였다.

다들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날 술에 진탕취해 다들 제대로 기억을 하고 있지 못할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믿을 수 없었기에 나는 더 이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


성운이는 이 사건을 미리 알고 전화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신이 전담하는 구역에서 그것도 자신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범인으로 지목 당한 상황에서 손놓고 기다릴 성격은 전혀 아니니까.

다른 친구들은 계속해서 사건에 대해서 영양가 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었지만,

아무 말없이 채팅방의 숫자만을 지우고 있는 성운이의 상태가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죽은 친구보다는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걱정만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고 있는건지, 아니면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책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이상 지켜볼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답답해지자,

전화를 들어 전화기록에서 아침에 연락한 성운이 번호를 찾아 발신을 눌렀다.

신호음이 3번 오가고 나서야 성운이가 무거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이미 형사님들 왔다 가셨지?” 성운이는 전화를 하자 마자 경찰관들의 행보를 물었다.

“응 이미 왔다 갔어, 내가 아는 것들은 전부다 이야기 했어. 너는 괜찮아?” 진심으로 걱정되어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응.. 이 사건 나도 너처럼 용의자 중 한명으로 취급되고 있어서 더 알아볼 수도 없고 오히려 내부에서 감시를 당하는 것 빼고..”

그는 다소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줄였다.

“그래 그때 같은 자리에 있었던 모두가 의심받는 상황이더라, 나는 심지어 택시까지 태워서 보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의심을 받는 기분이야..”

나도 성운이와 같은 느낌을 받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모두가 서로를 의심할 만한 상황이니까.

성운이는 내말이 끝나자 형사들에게 어떠한 내용을 진술했는지 물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만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나의 모든 것을 알고있는 것은 성운이였기에 진술한 내용을 서슴 없이 말했다.

물론 성운이가 찾으려고하면 얼마든지 내 진술을 몰래 찾을 수도 있을테니 괜히 시간 끌어서 오해를 사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너 이야기를 들으니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이 자식도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성운이가 바로 덧붙여 말했다.

“난 너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아 이 자식아. 그랬으면 너한테 전화도 안 했겠지, 내가 마음에 걸리는 건 택시 기사야, 혹시 확인해보고 나한테 알려줄래? 아무래도 지금 가장 의심되는 건 그 택시 기사니까.”

성운이의 말대로 일단 어제 사용했던 로그를 확인하려고 택시 앱을 켰다.

앱에서 사용내역에 들어가 어제 부른 택시번호와 기사 정보를 확인했으나 어제 이용내역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스크롤을 엄지로 당겨 새로 고치기를 했다.


없다.


내역을 찾아보려고 몇 번이고 스크롤을 아래로 당겨봤지만 남은 기록은 두 달 전에 회사에 급하게 돌아 갈 일이 있어 거래처 근처에서 사용한 내역밖에 없다.


“성운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들어 줘, 난 정말로 희정이를 죽이지 않았어..

그런데... 없어 기록이 없다고!!”

나는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내 결백을 주장했다. 그 뒤로는 성운이의 침묵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내가 정말 범인이 아니라고 다시 읍소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성운이가 물었다.

“그래... 나는 너를 믿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나는 너가 그럴 일을 하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

그럴 배짱도 없는 것도 잘 알지 멍청아..” 성운이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실없는 농담까지 곁들이며 말했다.

“하지만, 너가 정말 희정이를 죽이지 않았다면, 너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야만 해.

안 그러면 경찰들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전부 다 너를 의심할 수밖에 없으니까.

어제 술을 과하게 마시더니 헷갈린 건 아니지? 지금이라도 정확히 기억해봐 그래야 진술을 수정해서라도 너가 결백하다는 걸 밝혀야 하니까.”


성운이의 말이 맞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분명 핸드폰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는 것이었고 나는 희정이가 택시를 타는 모습이었다.

“나한테 술 좀 적당히 처먹으라고 말해주지 그랬어.. 지금 내가 기억나는 건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희정이가 택시를 타고 떠나는 거... 그것 뿐이야.”

성운이에게 다시 한번 심문을 받는 것 같아 심통이 난 목소리로 말했지만 지금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성운이 뿐이었다.

“택시를 언제 불렀는지는 기억나?” 성운이는 나와 다르게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아마도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다들 자리에 일어나서 바 테이블 근처에서 불렀던 것 같아. Bar에 CCTV가 있으면 내가 전화했다는 내역을 분명 확인할 수 있을거야, 아무래도 가서 직접 확인해봐야 겠어, 같이 가줄 수 있지?”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오랜 시간 가장 친하게 지내온 성운이까지 나를 의심하는 것은 너무나도 견딜 수 없는 일이었기에, 성운이가 반드시 나와 같이 가서 의심을 풀기를 바랬다.

“어휴.. 너는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냐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하여튼...

BAR에서 바로 만나자 보는 눈들이 많아서 아마 내가 유력한 용의자이신 김현진씨와 같이 움직이는 걸 보면 큰일날꺼니까 3시까지 거기로 와.”

여전히 성운이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농담을 곁들이고 있었지만 같이 가주겠다는 그에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화를 끊고 시간을 보니 이미 2시 10분이었다.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는 30분가량 걸리니 대충 씻고 택시를 타야 3시까지 도착할 것 같았다.

아내가 혹여나 더 걱정할까봐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급히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음성검색으로 날씨를 확인해 보니, 어제 쏟아질 듯이 내리던 눈은 이제 더 이상 오지 않고 상온의 날씨가 하루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하여, 니트와 코트 그리고 혹시라도 현장에서 지문을 남기지 않도록 얇은 가죽장갑을 끼고는 문밖으로 향했다.


햇살은 너무나 따뜻했고 아이들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눈을 가지고 꺄르륵 거리며 눈싸움을 하느라 바빴다.

아파트 그늘 밑으로 녹지 않고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고, 한 그루의 작은 나무 옆에는 더 자그마한 눈사람의 조약돌로 만든 눈이 햇빛에 비춰 푸르스름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눈보다 하얗던 희정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하얗게 반짝이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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