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밤 속_붉은 점

챕터2_마무리

by 김현진


“아무래도 윤재영씨에게 가기 전에 CCTV랑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를 다시 확인해 봐야겠어.

모임장소인 문래동에서 대림병원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서 뭐라도 건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이민형은 소림에게 들릴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CCTV 상에는 피해자가 병원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찍혀 있습니다. 하지만 사체가 발견된 건 뒤쪽 폐기물 처리장 근처였습니다. 언제 피해자가 그곳에 놓였는지는 입구의 CCTV만으로는 확인이 불가해서 다른 CCTV를 확인 중에 있다가 급하게 선배님과 합류해서 아직 현장의 CCTV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내가 급하게 오느라 그곳은 들리지 못했으니까, 다시 한번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번거롭게 해서 정말 미안해 소림 형사."

아이를 유치원에 바래다 줘야하는 날이라 사건의 흐름을 놓친 상태로 급히 소림에게 합류를 요청하는 바람에 소림을 두번 걸음하게 만드는 것이 미안했던 이민형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괜찮아요 선배님, 운전은 제가 수 백 번도 더 할 수 있으니, 사건현장에서 제가 뭘 놓쳤는 지나 알려주세요.” 그녀는 엑셀을 살짝 밟으며 조심스럽게 운전을 시작했다.


길가에는 매연과 태양의 열기에 뒤덮여 버린 거무죽죽한 눈들이 길을 따라 쭉 녹아 있었다.

도로의 아스팔트는 스키드 마크로 끓여낸 흑임자 죽처럼 흐물흐물했다.

우중충한 거리를 보며 답답해지는 마음을 잠깐이라도 비우고자 둘은 앞좌석의 창문을 끝까지 내렸다.

창밖으로는 단층짜리 건물들이 즐비한 곳에서 고드름이 녹아내려 구정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철가루 냄새와 구정물이 길을 지날 때마다 얼굴에 닿을 듯이 튀었다.


지붕 밑으로 문을 활짝 연 철공소들은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작업중이었다.

두 블럭을 지나서 고가도로로 진입하자 철공소의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바람을 쐬던 이민형 형사는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어 전화를 걸었다.

“택시기사에 대해서 아직 나온 건 없나? 김현진씨 진술에 따르면 그날 택시를 타고 보냈다고 했으니까 해당 플랫폼에 협조 요청하면 필요한 정보는 지금쯤 나왔을 것 같은데 협조가 안되고 있나?”

이민형 형사는 수화기 넘어 다른 경찰관에게 꾸짖듯이 물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은 그의 표정은 한층 더 일그러졌다.

그리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 안된다는 듯, 창문의 닫힘 버튼을 연타하며 말했다.


“정희정이 살해된 그날 밤에 김현진은 택시를 부른 적이 없어.”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탄 차량은 고가도로 끝에 있는 과속방지턱을 덜컹거리며 뛰어 넘어갔다.

소림 형사도 그가 말한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오른발로 브레이크를 제때 밟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선배님.. 그러면 김현진씨가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글쎄.. 누군가가 김현진에게 혐의를 씌우려고 했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조사를 해봐야겠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다림 병원 지하 2층 주차장으로 진입하였다.

두 경찰관은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지하 1층에 위치한 관리실에 가기 위해 소림 형사는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지하2층에서 1층까지 올라가는데 5초남짓 걸렸고 그들은 문이 열리자 바로 관리실로 향했다.

관리실에는 의자를 뒤로 젖힌 채 핸드폰에서 유투브를 보고 있는 담당자 한 명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민형 형사는 살며시 다가가 정중히 자신의 소속과 여기 온 이유를 밝혔다.

“안녕하세요. 영등포서에서 나온 이민형 형사라고 합니다. 여기서 발생한 살인 사건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잠깐 CCTV 자료 좀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 다시 한번 찾아온 불청객들을 바라보며 관리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제 사건 당시의 CCTV 화면을 찾아냈다.

새벽 1시 30분 병원 입구와 폐기물 처리장 근처에는 특별히 의심될 만한 일은 없었다.

급하게 들어오는 응급차량과 응급실을 가려고하는 듯한 환자 몇몇이 있었을 뿐이었다.

새벽 1시 45분, 정희정씨로 보이는 사람이 병원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160CM 정도의 키와 눈보다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화가들이 쓸 만한 검은색 빵모자를 눌러쓰고, 겨울에 입기에는 조금 얇아 보이는 갈색 트랜치코트를 입고 술에 취한 것처럼 휘청거리며 병원입구로 들어갔다.

사망 추정 시각의 마지노선인 새벽 2시, 그녀가 나오는 모습은 병원출입구 그리고 폐기물 처리장 어느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형사들과 관리자가 확인한 것은, 정희정씨가 45분경에 들어왔지만 나가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는 것과 사망 예상시간에 그 누구도 시체가 놓여 진 폐기물 처리장 근처에 접근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었다.


소림 형사는 이미 한번 봤던 내용이지만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이건 말이 안돼, 1시 45분까지는 그녀는 살아 있었지만 사망 예상시간인 2시에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서 그녀의 흔적은 찾을 수 가 없다는 건...’

그녀는 관리자에게 2시 이후부터 다음 날 아침 10시까지의 CCTV 정보를 빠른 속도로 틀어 달라고 요청했다.

‘10시경에 주변을 정리하던 청소부로부터 신고를 받았으니, 누군가는 그 사이에 피해자를 폐기물 처리장 근처에 놔둬야만 하니, 여기서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겠지..’

하지만 관리자는 그 시간에는 누군가가 해당시간대에 사각지대에서 CCTV를 훼손하여 아직 복구를 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곳에는 CCTV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지랄 맞은 새끼,, 이미 여기에 CCTV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놈이라고? 그것도 이 병원에 사각지대가 있는 곳에서 일부러 고장을 내?”

옆에서 아무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던 이민형은 쌍욕을 하며 관제용 테이블을 쾅 쳤다.


소림 형사는 놀라서 벙찐 표정을 하고 있는 관리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선배의 팔을 붙잡고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관리자에게 화를 내며 물었다.

"당신은 어제 당직이라고 들었습니다. 나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았습니까?”

그러자 관리자는 큰 죄를 짓고는 판사에게 속죄하는 사람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어제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저도 무슨 일이야 있겠냐는 생각으로 그 시간에 잠깐 잠이들어 3시가 넘어서 일어났었습니다.

일어나보니 CCTV 한 개가 파손된 것으로 보여서 밖으로 나가 둘러봤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앞이 안보이기도 했구요..”


소림 형사는 관리자의 말이 끝나자 이민형 형사의 팔을 여전히 붙잡았다. 혹시라도 그가 담당자를 폭행해서 일이 커지기 전에 막으려는 심산이었다.

이민형 형사는 관리자에게 더 화를 내려고 했지만, 소림형사가 그의 팔을 꽉 붙잡고 엘리베이터로 끌고 가자 말없이 따라갔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렸다.

소림 형사는 후문으로 나가 건물 뒤편의 오른쪽 끝으로 가야 폐기물 처리장이 나온다고 선배에게 말했다.

폐기물 처리장에는 이미 대기중인 경찰관이 조사중 출입금지 테이핑 앞에 서있었으며 소림형사를 보고는 경례를 했다.

“아 그래 안녕, 특별한 일이나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려고 한적이 있나?” 소림 형사가 긴장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찰관에게 물었다.

“병원 옆에서 발견되다 보니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나 직원들이 계속해서 찾아왔었지만 계속해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 특별히 수상하거나 의심될 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대기했는지 얼어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민형 형사는 소림 형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출입 금지 표시를 넘어 현장으로 들어갔다.

사건 현장에 놓여 있었던 시신은 이미 감식을 위해 옮겨져 있었다.

시신 폐기물 처리 쓰레기 통 옆에 양팔을 내리고 누워있는 상태로 발견된 듯 하얀색으로 표시 되어있었다.

주변의 쓰레기는 대부분 위험물 마크가 붙은 의료 폐기물들이 뒹굴고 있었으며 시신이 있었던 곳 근처에도 위험물 쓰레기들만 놓여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CCTV는 무언가에 얻어 맞은 듯 금이 간 상태였고 건물의 뒤를 지나 정문쪽으로 향하면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와 지하주차장 출입구가 보였다.


“소림 형사 혹시 어제 폐기물 차량이 여기로 오갔는지 확인해봤나?” 그는 소림 형사를 처다 보지 않고 계속해서 눈이 녹아 까맣게 변한 출입구의 아스팔트를 보며 물었다.

“네 어제 차량은 어제 저녁 00시경에 왔다가 갔다고 합니다. 사건이 터져서 오늘부터는 다른 장소를 통해서 폐기물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그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대답했다.

“주변에 다른 목격자나 특이한 점은 더 없었나 소림형사?” 그는 다시 그녀에게 되물었다.

“이미 주변에 추가로 목격자가 있는 지는 병원내부에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더 확인된 사항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발견 당시에는 쓰레기통 근처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피해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쓰레기를 피해자 위로 덮은 상태였다는 점 빼고는 더 알아낸 점이 없습니다.” 소림 형사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이민형 형사는 빨갛게 시린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는 병원의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혹시 저기에 있는 CCTV는 2시 이후부터 있는 자료도 체크를 했나? 만약 안 했다면 일단 관련 정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그는 소림형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선배님이 관리자에게 화내시는 동안 미리 챙겼습니다. 다만 유력한 용의자들을 조사하는 편이 먼저라 데이터가 멀쩡한지만 확인했었고 특별히 데이터가 손상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관리실로 가실까요?”

소림 형사는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그에게 물었다.

“아니 소림형사가 말한 것처럼 지금은 주변인들을 먼저 심문 해야겠어.

이만하면 됐으니 다음 장소로 이동하지, 그들이 만났던 Bar로 가자고.”


그는 터벅터벅 걸어 나오다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찰관에게 고생하라고 큰소리를 치며 손을 휘휘 저었다.

소림형사는 지나 가던 병원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에 창피함을 느껴, 재빨리 그의 뒤를 앞질러서 차량으로 향했다.

소림 형사는 먼저 들어가서 시동을 걸고 히터를 약하게 틀었다.

이민형 형사는 곧이어 차에 조수석에 탑승했고 네비게이션에 Bar 이름을 입력했다.

점심시간이 이미 지나 다소 한산한 시간이었지만 병원에서 Bar까지 30분정도 소요된다고 네비게이션이 말했다.

소림 형사는 다시 한번 드라이브로 스틱을 돌리며 ‘점심으로 뭘 먹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민형 형사는 이 복잡해 보이는 퍼즐에 알맞은 틀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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