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3_계속
뻐꾸기가 달린 엔틱 시계는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인의 취향인듯 오래된 바를 표방한 것처럼 내부는 원목과 나무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BAR의 원형 테이블들도 원목 느낌이 나도록 거칠게 마감이 되어있었고, 바텐더와 손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긴 직사각형의 테이블은 진한 갈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바텐더가 자리한 곳에는 언제든지 컵을 꺼낼 수 있도록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은색의 긴 홀더가 있었으며, 그 사이에는 유리잔들이 끼워져 가게의 노란 조명이 은은하게 비춰 취하고 싶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불빛은 천장 가운데에 위치한 수많은 크리스털과 촛대 모양의 샹들리에로부터 흘러나왔고 카운터 반대편에는 난로 모양의 스탠드와 그 안에 황금색 글씨로 각인이된 크기가 같은 두개의 오크통들이 BAR의 분위기를 더했다.
하지만 어떠한 노래도 BAR에서는 흘러나오지 않았고 주인은 침통한 표정으로 창문 앞 블라인드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가니쉬에 사용할 재료의 상태들을 확인하기 위해 냉장고를 활짝 열었을 때, 짤랑하면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재영씨 혹시 계십니까?” 소림 형사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네 제가 윤재영입니다, 아직 영업시간이 아니라 6시 이후에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냉장고를 뒤적이던 남성은 문을 닫고 뒤를 돌며 나직하게 부탁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어제 정희정씨의 살인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소림 형사 그리고 이쪽은 제 선임 수사관이신 이민형 형사입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들의 소속을 윤재영에게 밝혔다.
“아.. 네 오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현진이와는 이야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6시부터 개점이니 그때까지는 이야기 나눌 시간이 있습니다. 일단 난로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계시죠, 정리하고 바로 가겠습니다.”
두 형사는 윤재영이 말한 테이블에 말없이 앉았다.
하던 일이 조금 길어지는 지 윤재영은 바로 자리로 오지 않았다.두 형사는 어제 사건이 벌어진 현장일지도 모르는 업장을 주의깊게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느라 바빴기에 윤재영이 자리에 오는 지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이민형 형사는 혹시라도 바닥이 패이거나 테이블이나 의자가 옮겨진 흔적이 있나 밑을 유심히 살폈지만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바닥은 마루를 최근에 시공했는지 흠집이 거의 없었고 전체적인 인테리어와 맞추기 위해 약간 검게 바란것 처럼 보였다.
윤재영은 계속해서 냉장고 내부를 정리하고 있었고 소림은 살며시 일어나 바텐더 테이블 뒤에서 혹시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느라 바빴다.
윤재영은 레몬과 다른 과일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지만 형사들이 아무 말없이 자신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어색함을 깨고자 윤재영은 뒤돌아보지 않고 두 형사에게 물었다.
이민형 형사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소림 형사는 어느새 그의 뒷편에 놓인 테이블 뒤에 기대 서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 사건 때문에 바빠서 못했습니다, 빠른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재영은 바쁜 사람들을 붙잡아서 미안하다며 간단한 요기거리라도 만들어 오겠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림 형사는 자리에 앉아 노트를 정리하고 있는 이민형 형사의 옆으로 돌아왔다.
십분 남짓 흐른 뒤에 윤재영은 두 손 가득 갓 구운 작은 빵과 안주로 쓰던 견과류를 들고 왔다.
윤재영은 접시를 먼저 내려 놓고 차가운 커피 세 잔을 다시 들고와 경찰관들의 맞은 편에 앉았다.
“이미 소식은 성운이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희정이가 갑자기 죽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윤재영은 형사들이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울먹이며 자신의 감정을 전했다.
“네.. 그래서 오늘 부득이하게 어제 모임에 계셨던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몇 가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민형 형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울고 있는 윤재영에게 물었다. 울먹이던 윤재영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붉어진 두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아무 말없이 고개만 두 번 끄덕였다.
“먼저 사장님과 희정씨는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소림 형사가 안타깝다는 듯 물었다.
“희정이는 저희 다도 동아리에서 가장 활발하고 인기가 많은 친구였습니다. 워낙 착한 성격이라 다른 친구들의 어려움을 자기일처럼 도와줬었죠. 저도 희정이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화학 교육을 전공했지만 우연히 좋은 BAR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고,
그 이후로는 나만의 BAR를 열기 위해서 과외와 BAR일을 밤낮으로 병행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물론 BAR를 열기 위해서는 제 영혼을 팔아낸다고 해도 턱없이 돈이 부족했습니다.
꽤 오래전에 희정이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제 꿈을 이야기했고, 희정이는 꼭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저를 응원해줬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응원해주는 희정이 덕분에 제 꿈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을 수 있었죠.
그러다가 1년 전, 희정이와 따로 만나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중,
상가 보증금이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결국에는 BAR를 열지 못할 것 같다고 희정이에게 말했습니다.
희정이는 가만히 듣더니 얼마나 부족하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시 초기자본으로는 1억정도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별 생각 없이 사실 대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희정이는 그 다음 날 연 대출 이자 0.5%계약서를 저에게 등기로 보내고는,
은행보다는 나을거니까 이걸로 시작하고 천천히 갚으라며 저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지금 앉아 계시는 이 BAR를 열 수 있었고, 희정이도 지인들과 자주와서 매상을 높여줬습니다. 자기가 투자한 곳이니까 꼭 성공해야 한다고 하면서요."
윤재영이 쉴 틈 없이 말하다 말을 멈추자, 꾹 참았던 눈물이 그의 오른쪽 눈가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두 형사는 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그들 앞에 놓인 볶은 호두와 아몬드만 아작아작 씹어댔다.
"저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는 친구입니다.
계약서의 빚은 생각보다 잘되서 빠르면 3년안에 원금과 이자를 다 갚을 예정이었고, 희정이한테 진 마음의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항상 고민했는데... 이렇게 가다니.."
윤재영은 두 형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치 참회를 위해 염불을 외는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비단 희정이 뿐만 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모임에 참석했던 친구들이 저에게 도움을 주는 게 너무 고맙기도 했고, 모두 모여 얼굴 보고 이야기를 나눈지 너무 오래됐으니 제가 자리를 마련해서 모였던 거였거든요.. 형사님.."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