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밤 속_붉은 점

챕터3_계속

by 김현진


“어제는 희정이를 포함해서 총 8명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가장 빨리 도착한 사람은 민주였습니다. 6시 15분쯤 근처의 회사에서 업무가 끝나자마자 숨을 헥헥거리며 뛰어와서는 저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성운이가 6시 40분쯤에 도착했고, 희정이와 호준이는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 둘이 같이 6시 50분쯤에 도착했습니다.

7시 정각에 뻐꾸기가 울릴 때 총재가 문을 열고 들어왔었고 태휘가 5분 뒤에 선물 가방을 들고 늦어서 미안하다며 들어왔습니다.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은 현진이었습니다. 아마 7시 20분쯤에 도착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 뒤로는 저도 술 마시고 떠드느라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거든요.”

소림 형사는 아직 배고팠는 지 계속해서 주전부리들을 삼키고 있었지만 이민형 형사는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윤재영의 눈을 뚫어져라 처다 보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CCTV는 따로 설치되어 있습니까? 말씀해주신 내용을 조사에 참고하겠지만 영상이 있다면 저희가 어제 놓친 부분까지 체크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공교롭게도 1주일 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이 발생해서 오늘 재설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CCTV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죄송합니다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민형은 마지막 한 피스만 채우면 되는 퍼즐의 조각이 어긋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죠.. 뭐.. 각자 만나 뵙고 여쭤보겠지만 어제 오셨던 분들에 대해서 아시는 만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호스트로서 이 모임의 중심이셨을 것 같아서요."

“현진이는 이미 만나 보셨죠? 그 친구는 처음 저희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 그렇게 말이 많지 않은 친구 였습니다. 워낙 낯을 가리는 편이라 성운이와 친해지고 희정이와 셋이 잘 어울리면서 저희 동아리 활동에 잘 적응했습니다. 한동안 그 친구의 개인사 때문에 연락이 뜸 했지만 오랜만에 모두가 모이니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현진이와 가장 친한 친구인 성운이는 행정학을 전공하다가 언젠가 경찰이 되겠다면서 간부후보시험을 보고는 경찰이 됐죠. 성운이도 현진이랑 단짝이라 현진이가 저의 가게를 찾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방문 횟수가 줄어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정말 그 둘과는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습니다."

윤재영은 옅은 웃음을 지었지만 계속해서 말을 하느라 목이 아팠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로 향했다.

하얀 찻잔에 따뜻한 물을 받으며 그는 친구들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민주는 이곳에 자주 들렸습니다. 항상 거래처의 손님들 아니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오곤 했죠.

제가 오히려 부담스러워 매상 올려주려고 오는 거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맘 편하게 접객하려면 이만한 곳이 없다면서 다음에 또 온다고 하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가끔 태휘가 테일러샵에서 일을 마치고 민주와 함께 오면 셋이 모여서 자주이야기 했었죠."

그는 두 형사들에게 들릴 듯 말듯이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는 찻잔과 함께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 총재 그 자식도 자주 오기는 했지만 항상 술을 마시러 온 건지 일을 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 터덜 터덜 입구에서 걸어와 롱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면서 저와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갑자기 태블릿을 꺼내서 일을 하거나 했거든요. 학교 다닐 때도 이러던 녀석이라 이해는 가지만 남의 술집에서 이러면 손님 다 도망간다고 해도 매번 씨익 웃어대니 그 버릇을 차마 고칠 수가 없더라고요."

소림 형사는 이제 배가 조금 부른 듯 본래의 역할을 하기 위해 그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외람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모임의 가장 중심이셨던 것 같은데 맞으시죠?”

윤재영은 소림 형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것 보다 저는 딱히 척을 지는 친구가 없었거든요 희정이와 총재처럼...

희정이는 여유로운 집안에서 태어나서 모든 것들이 좀 여유로웠어요, 그래서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경우도 많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그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런 걸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죠. 그 둘의 관계가 딱 그랬습니다. 총재가 학창시절부터 항상 프로그래밍에 미쳐서 살았지만 졸업 직전에 취업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어요. 다들 인턴, 실습, 시험 등으로 바뻐서 정신이 없었지만, 저와 희정이 그리고 총재, 아! 태휘까지 그래도 틈틈히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동아리실에 모여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희정이가 총재에게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분하지도 않느냐는 식으로 의미 없는 도발을 했고, 총재는 그 말에 격분해서 한바탕 둘이 다툰 이후로는 총재는 희정이가 있는 모임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그 둘을 붙여 놓지 않으려고 항상 애를 썼습니다."


소림 형사가 계속해서 윤재영의 진술을 노트에 적고 있는 동안 이민형 형사가 바톤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재씨는 어제의 모임에는 참석했네요?”

“제가 현진이와 성운이가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한다고 하니, 총재도 그 친구들을 꼭 보고 싶다며 희정이랑 제일 멀리 떨어져 있게 해달라고 따로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앉아 있는 테이블에 앉히지 않고 저기 보이는 기다린 바 앞에 있는 곳에 일렬로 모두를 앉혔습니다. 물론 희정이와 총재를 끝에서 끝으로 배치해서 서로 얼굴도 못볼정도로 미리 조치해놨죠. 혹시 화장실 가는 길에도 시비가 붙을까봐 왼쪽 남자 화장실이 있는 곳에 총재를 앉혔고, 희정이를 여자 화장실이 있는 오른쪽 테이블 끝에 앉혔습니다.”


두 형사는 힐끗 테이블을 쳐다봤다. 밤색으로 유광처리를 한 테이블의 길이는 그다지 길어 보이지 않았다.

호리호리한 사람들이 앉는다고 한들 여덟명 이상이 앉아 놀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두 사람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을 느꼈는지 가게의 주인은 자신이 호스트였기에 BAR 테이블 뒤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친구들에게 술을 대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그들이 묻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그 날 저녁에 특별히 기억나는 일들이 있나요? 사건과 연관되었든 아니면 평소와는 친구들이 다르게 행동한다던지..” 이민형 형사가 말을 이어 나가려고 했으나 윤재영은 침착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지금 저희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도대체 희정이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인지 말씀도 해주시지 않고 이렇게 추궁하시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희정이를 죽이기라도 했단 말씀이신건가요?”

소림과 이민형 형사는 완고한 그의 태도에 짐짓 당황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희정씨는 살해당했습니다. 자세한 사인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저희가 현재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은 이게 전부입니다. 이 모임과 연관이 없으면 좋겠지만 어제의 모임이 이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은 확실하기에 사장님께서 답변을 해주셔야만 합니다."

이민형 형사가 말을 마치자 소담 형사가 지원 사격을 이어나갔다.

“사장님께서 아시는 내용을 다 말씀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저희는 어제의 진실과 희정씨의 죽음에 감춰진 무엇인가를 풀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사장님께서도 희정씨와 각별하셨던 사이셨으니 희정씨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협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윤재영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빈 찻잔과 접시들을 BAR 테이블 뒤로 가져갔다.

두 형사는 아무말 없는 윤재영을 주시했지만 들려오는 것은 달그락대는 설거지 소리뿐이었다.

그는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화장실로 향했고 탁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챕터3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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