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밤 속_붉은 점

챕터3_마무리

by 김현진


소림 형사는 BAR 테이블에 특별한 흔적이 있는지 아니면 혹시 테이블 뒤에 숨겨놓은 것들이 있는지 조사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이민형 형사도 그가 들어간 남자화장실 쪽으로 건너가 주변을 살펴봤지만 보이는 것은 화장실 근처의 목재 장식품, 그리고 앉아있던 곳 근처에 놓여 진 캐스크가 전부였다.

윤재영이 수도꼭지를 돌리고 손을 씻는 동안 그들은 혹시 모를 증거를 찾기 위해 쥐잡듯이 BAR를 뒤졌지만, 그가 돌아올 때까지 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윤재영이 문밖으로 나오기 직전까지 두 형사는 정신없이 BAR를 촬영하다가,

그가 나올 낌새를 보이자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척 핸드폰을 만지작댔다.

“죄송합니다. 형사님들도 분명 이유가 있어서 물어보시는 건데, 제 마음만 생각했습니다.

그럴 일은 정말 없어야 되겠지만 혹시라도 희정이가 친구들 중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요”

그는 넋두리하듯 말하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날 저녁에 제가 기억나는 것들을 말씀드리죠....

현진이까지 모두 도착했을 때, 제가 제일 아끼는 위스키를 한 병 꺼내서 파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태휘가 가져온 선물을 열어봤습니다.

태휘는 대학을 졸업하고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양장점에 들어갔습니다.

전공도 의류 관련이었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사업장에도 자주 나가서 미리 일을 배워서 실력이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다들 태휘가 무엇을 가져왔을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민주만 시큰둥한 채로 혼자 샷을 두번이나 연거푸 들이 마시던 게 기억납니다.

그 하얀 봉투안에는 갈색 캐시미어 조끼가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게 그 조끼입니다.”


두 형사는 윤재영이 양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조끼를 처다 봤다.

조끼는 갈색 캐시미어와 울 혼방 소재로 따뜻해 보였고, Y자로 목 부분에서 단추 부분까지 깔끔하게 떨어지며 Y라인 외에는 격자 체크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고 사용할 수 없는 주머니가 양 옆에 있어 옷의 포인트를 잡아 줬다.

“다들 똑같은 옷을 선물 받았나요? 다들 이정도 퀄리티의 선물을 받았으면 정말 좋아했을 것 같은데..”

소림 형사가 윤재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다들 같은 옷을 선물 받았습니다. 다만 여자 친구들의 옷은 신체 사이즈에 맞춰서 좀 더 작았고 희정이와 민주의 옷이 서로 바뀌어서 중간에 민주가 태휘에게 너는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느냐며 화를 냈습니다.

이후에 희정이가 민주를 진정시키고 둘이 옷을 바꿔서 가져가긴 했지만, 그날 저녁에 둘이 평소처럼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뭐 친한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민주씨가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민주씨가 질투를 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소림 형사가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소림 형사님이라고 하셨었죠? 역시 여자들의 직감은 다르군요. 아 물론 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 남자들보다 오묘한 변화에 대해 잘 알아차리신다는 소리니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뭐... 제가 생각하기에 민주는 태휘에게 상당히 호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가 다른 술집을 제치고 여기에 자주 오는 건 아무리 봐도 태휘 때문인 것 같았거든요.

태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자기가 익숙한 곳에서 이야기해야 마음이 편하다며 밖에서 술을 마시면 자기는 여기밖에 안 온다고 하는 걸 민주가 엿들은 이후로는 민주가 문지방이 부셔지도록 왔거든요.

마치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이길 바라는 듯이.....

그리고 민주가 와서 눈길도 안주고 태휘만 바라보면 눈이 반달로 쪼개져서 정신을 못차리는 걸 한두번 본것도 아니니까요.. 아무튼 그 날 시큰둥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태휘가 희정이한테 잘 보이려고 선물을 가져온 것 게 눈꼴 시려웠기 때문이겠죠.”

어느새 윤재영은 단골 손님에게 가십거리를 전하는 바텐더처럼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희정이만큼은 아니었지만 태휘도 사실 꽤나 잘나가는 친구입니다.

압구정에서 잘나가는 테일러 집안인데다가, 태휘 아버님이 가업을 더 확장시켜서 사실 태휘가 평생 백수로 지내도 별 문제 없을 정도로 잘나갔거든요. 근데 태휘는 저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는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공부할꺼라고 철든 소리부터 했었습니다.

아 그리고 어제 저희가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면 아시겠지만 이 친구 생긴 것도 괜찮아서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습니다.”

윤재영은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찾은 뒤 화면을 두 형사들에게 보여줬다.

소림 형사가 옆에서 괜찮네하며 추임새를 넣자 이민형 형사는 그녀의 뒷통수를 가볍게 한 대 쳤다.


“첫 동아리 환영식에 이 친구들이 모두 모였을 때 부터, 태휘는 희정이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여러 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걸로 대충 들었는데, 그때마다 희정이는 태휘를 거부했고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고 저에게도 몇번 이야기했습니다. 태휘는 자기가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자라서 그게 쉽게 포기가 안된다고 술에 진탕 취해 이야기한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주도 바보가 아니라 이걸 모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파티가 시작할 때 기분이 안 좋은 건 민주였지만 그래도 민주는 희정이에게 빚을 진게 있어 티를 내지 않았죠.

그는 말을 멈추고 양손으로 머리를 뒤로 거칠게 쓸어 넘겼다.

그리고 나서 윤재영은 입술을 깨물며 오른쪽 눈을 치켜 뜨며 말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계속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말씀해주시는 내용들 하나 하나가 수사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그게 사실인지는 다시 본인에게 확인하는 절차들을 거칠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민형 형사는 그가 혹시라도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을까 굵고 정중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그를 설득했다.

윤재영은 잠깐 눈알을 양옆으로 굴리며 갈팡질팡하다가 자신이 우려했던 일이 생겨버렸다고 말했다.

“네.. 어차피 저만 기억하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제가 준비했던 파티주들은 이미 바닥이 났고 다들 더 마시려고 제가 가게에서 파는 와인이며 위스키들까지 까먹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나서 다들 한동안 담아두었던 이야기들과 추억을 안주삼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자리를 바꾸면서 총재가 잠깐 희정이 옆으로 왔었습니다.

둘 다 등을 지고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총재가 왼편에 있는 남자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난 순간, 하필이면 희정이가 술잔을 들고 뒤도는 바람에 술잔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렇게 둘이 떨어져 절대 싸우지 않게 하려던 제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됐습니다.

총재는 미안하다고 바로 사과했지만 희정이는 화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실 총재가 일어섰을 때 의자소리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희정이가 술에 취해서 정신이 없는 상태로 갑자기 뒤돌아서 문제가 생겼는데 말이죠.”


“혹시 어디에서 서로 부딪혔는지 기억나십니까?”

이민형 형사가 왼손 끝으로 BAR 테이블을 가리키며 물었다.

“희정이가 왼쪽부터 3번째 자리에 앉았었고, 총재가 왼쪽에서 4번째였습니다.”

두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을 자세히 살펴봤다.

검게 색이 바랜 바닥이었지만 바닥 위로는 더 진한 검은 보랏빛을 띄는 얼룩이 보였다.

“네 그 자리에서 잔을 떨어뜨려서 정리하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희정이가 너는 왜 제대로 하는게 없냐며 계속해서 총재에게 막말을 했거든요.

제가 총재였으면 친구든 뭐든 한 대 치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총재는 희정이에게 ‘옛날부터 왜 그렇게 자기를 괴롭히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분위기가 일순간에 어그러지자 다들 어떻게 이 상황을 처리해야 될지 몰라 다들 잠깐 벙쪄있다가

현진이가 총재랑 이야기해보고 오겠다며 가게 밖으로 나갔습니다.

민주와 태휘는 희정이에게 너무 했다고 이야기하고 저랑 성운이는 어지러워진 주변을 청소했습니다.

주변을 다 치우고 나니 현진이와 총재가 진정된 상태로 들어왔습니다.

마침 그 타이밍에 희정이는 화장실에 들어가 있어서 다시 어색하게 얼굴을 마주칠 일은 없었습니다.

총재는 현진이와 마침 비어 있던 오른쪽 끝 테이블에 앉았고, 친구들은 왼쪽 끝테이블을 비워 놓고 앉았습니다.

호스트라 술이 그나마 덜 취해 있었던 저는 희정이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총재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봤습니다.

호준이도 마침 저랑 이야기하다가 같은 곳을 바라봤는지 혹시 또 싸움이 붙을까봐 희정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희정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서 총재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세수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울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 하얀 얼굴에서 검은 마스카라가 주륵주륵 흐르는 걸 보고 총재도 웃으면서 ‘거울 좀 봐라 팬더도 아니고 그만 좀 처울어’라고 농담을 했냈습니다.

그제서야 희정이도 정신차리고 그간 미안했다는 둥, 너무 세상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해서 너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자신을 용서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친구들은 다들 조용히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둘의 관계는 정말 귀엽게 말하면 톰과제리지만 사실 조커와 배트맨에 더 가까웠거든요.

그래서 모두들 총재의 대답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모두들 실수를 하지만 그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그걸 깨닫고 네가 이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라고 총재가 말하자 다들 긴장을 풀고 앉아서는 다시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둘이 화해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려고 둘이 앉히고 저는 다른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구끼리 앙숙이 되면 그 주변 친구들이 힘든데 잘 버티면서 도움을 주셨군요 사장님. 그 이후에 더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까?”

“그 뒤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1시 15분쯤 다들 나갔습니다.”

윤재영이 이민형의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도어벨이 딸랑하고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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