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둘은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달랐다.
성운이가 어렸을 적, 성운이를 집에 놔두고 성운이의 부모님께서 잠깐 외출을 하신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 곰탕을 끓이기 위해 불을 올려놓고 밖으로 나가셨고, 호기심이 많던 어린 성운이는 오른손으로 냄비를 만졌고 손에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성운이가 깜짝 놀라 냄비에서 손을 떼면서 불똥이 벽지로 튀었고 삽시간에 불이 번져 집을 뒤덮었다.
성운이의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어마어마하게 치솟는 검은 연기를 보고 층수를 세어보았다.
그리고 검은 연기가 시작되는 곳이 자기의 집인 것을 확인하고는 어머니는 황급히 119로 연락을 했고, 아버지는 성운이를 구하기 위해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반팔만 입은 채 뛰어들었다.
불은 계속해서 번져가며 가족의 행복한 공간을 어둠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성운이는 그 파멸을 피하기 위해 안방을 넘어 베란다 끝에 웅크려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를 모르고 불로 뛰어들었지만, 중간에 불꽃이 더 타오르며 자신의 몸을 그을리기 시작하자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난관에 빠졌다고 했다.
성운이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책망할 시간조차 없었고, 자신과 성운이를 애타게 울부짖으며 점점 질식해 가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둘 다 죽을 거라는 잔인한 공포에 시시각각 시달렸다고 했다.
다행히 곧이어 119가 도착했고 소방관들은 불길을 잡아가며 둘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소방관들 아니 성운이에게는 여전히 영웅인 그들이 먼저 아버지를 구했고, 성운이는 불길이 더 강해져 안으로 진입할 수 없어 탑차를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구조되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성운이는 자기와 자신의 가족을 살려준 소방관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다고 했다.그리고 이에 보답하고자 수능이 끝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즌에 알바를 열심히 해서 가족을 구해준 소방관에게 찾아갔다고 했다.
“그때 그 꼬마 친구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묵묵히 했을 뿐이야.
그러니 너도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면서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렴”
이런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생명의 은인의 말 한마디에 성운이의 인생관은 송두리째 흔들렸다고 했다.
불 속에 갇힌 이후로 불에 대해서 공포를 가지게 되어 소방관은 되지 못했지만, ‘어쩌면 경찰로 지내면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성운이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경찰이 됐다.
재영이는 달랐다.
화학 교육을 전공한 재영이는 졸업 후 한국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꿈꿨다.
집안에서는 재영이가 공부를 더해서 의료쪽으로 편입하기를 원했지만, 재영이는 자신의 삶이 묶인 채 남들처럼 살아가는 게 싫어 한국을 떠나 여러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 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다음 재영이는 차마 한국을 떠날 수 없었고,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바텐더의 매력에 푹 빠졌다.
힘든 삶을 위로 받기 위해 혹은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자기가 일하고 있는 바에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바텐더로서 일하지 않더라도 손님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고민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바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럴 거면 공부 다시해서 정신과 의사선생님 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내가 농담조로 이야기 했지만,
재영이는 웃으면서 이제는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며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다.
그렇게 그 둘은 너무도 달랐지만 적어도 내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동안 그들은 서로를 존중했고 한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3분전까지는.
회상에 잠겨 우두커니 문 앞에서 서있던 내 어깨를 재영이가 툭 치자 정신이 들었다.
“너 괜찮아? 약은 먹고 있는 거야?”
“응, 괜찮아. 나 때문에 너네 끼리 싸우지 마라 내가 성운이랑은 다시 이야기 할께.”
“그래, 나도 좀 말이 심했네... 다시 만나면 사과 해야겠다. 지금 가서 이야기를 해도 또 싸울 것 같아서 말이지... 그나저나 나도 네가 그날 핸드폰으로 택시 불렀던 건 기억이 나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 네 핸드폰에 손을 댄 건 못 봤어,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CCTV도 하필 고장 나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뭐라도 찾으면 바로 알려 줄게.”
“그래 고마워, 곧 손님들 오겠다. 나도 간다. 안녕.”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지만 차디찬 공기만이 나를 감쌀 뿐 성운이는 문 앞에 서있지 않았다.
아마도 답답한 마음에 담배라도 태우러 갔을 거라 생각하고 잠시 성운이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 어귀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성운이의 모습이 보였다.
날이 선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자 아무렇지 않은 척 성운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둘이서 왜 나 때문에 싸우고 지랄이야 지랄은, 내가 알아서 할께. 너는 여기까지만 해. 재영이 말이 맞아 내가 알아서 처리할께, 어차피 내가 범인이라는 증거도 사실 지금 없으니까. 너가 날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성운이는 한숨을 푹 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그 소리야? 너가 범인이라는 확증은 없지만, 모든 화살이 너를 향하고 있는데 내가 옆에서 손 놓고 있으라고?”
“어, 뒤져도 내가 뒤지는 거니까 그만해. 내가 정말 네가 필요할 때 말할께, 그때만 나 조금씩 도와줘.
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우리 둘이 뭉쳐 다니는 거 좋지 않아 보여. 오히려 경찰들은 우리를 공범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성운이는 계단에 털썩 주저 앉아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 오히려 더 의심을 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방식대로 하나씩 찾아볼께. 너는 네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거나 아니면 범인이 실수한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해봐. 형사님들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잘못된 증거로 네가 깜빵에 들어 가는 거 생각도 하기 싫으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일단 그거 대충 피고 너는 너 갈길 가, 나는 어제 기억을 좀 되살려서 내가 걸었던 길을 좀 걷다가 들어갈께, 혹시라도 뭔가 생각나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경찰이라는 새끼가, 길바닥에 떡 하니 앉아서 담배피시면 안됩니다. 민중의 지팡이가 저기 너 처다보고계시는 할아버지의 지팡이로 처 맞고 싶지 않으시면요.”
성운이는 황급히 전원을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나도 집에 들어가서 생각해볼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조심하고.”
“내 걱정 말고 너나 조심해, 범인이 혹시라도 우리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너한테 해코지 할수도 있으니까.”
성운이는 말없이 뒤돌아 손을 흔들며 대로를 향해 멀어져갔다.
나도 잃어버린 그날 밤을 기억하기 위해 눈을 살며시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