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바깥과의 온도차이 때문에 차장에는 김이 하얗게 서렸다.
히터를 틀었지만 차안의 온도가 추운 날씨 때문에 좀처럼 올라가지 않아 두 형사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하얗게 입김이 올라왔다.
“윤재영씨의 진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소림 형사?”
“제가 듣기에는 그 사람이 아는 모든 사실을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감정의 폭이 커서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렇게 개의치 않아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갚아야하는 돈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그것 때문에 피해자를 살해했을 수도 있지만.. 윤재영씨의 진술을 듣고 나서 드는 생각은 정희정씨가 김현진이 말했던 것 처럼 완전한 천사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어. 그렇다면 다른 친구들도 그녀를 살해할만한 이유는 하나쯤 가지고 있을지도."
“워낙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선배님.그런데 왜 김현진씨는 갑자기 BAR로 찾아왔을까요 선배님? 정말 뭔가를 잊어버린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이민형 형사는 잠깐 동안 고민하더니 이내 핸드폰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마 본인이 택시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금쯤 깨닳았을거야, 그래서 그것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하려고 BAR에 왔겠지, 하지만 CCTV는 이미 고장나 있다고 했어, 혹시 한번 더 확인해봤나?”
“네, 잠깐 윤재영씨가 잠깐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에 몰래 확인 해봤지만 고장 났습니다. 언제 고장 났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CCTV는 먹통이었습니다.”
“협박도 그렇고 계속해서 우리가 한 발씩 밀리고 있어. 가장 가까이서 일했던 호준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편이 낫겠어.”
소림형사는 박호준과 관련된 정보를 고객센터 직원처럼 천천히 설명했다.
“박호준씨는 다림 병원 간호사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선배님께서 박호준씨를 보고 싶어 할 것 같아 병원에 연락했더니 오늘은 휴가를 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로구청 사거리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지낸다고 합니다.주소는 받았습니다. 지금 바로 갈까요?”
“그래 같은 병원에서 일했으면 어쩌면 이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직 알지못하는 용의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줄테니 말이야"
소림 형사는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뒤를 돌아보며 선배에게 물었다.
“새로운 용의자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럴 만한 용의자가 없다면 범인은 친구들 중에 하나이겠죠 선배님?”
“글쎄, 우리가 원한 관계가 명확 해진다면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수사를 할 수 있겠지만.. 이 동아리 모임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 과거속에 있었던 일들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트리거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튼, 우리는 의심스럽다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넣을 수는 없으니 증거와 진술들을 하나씩 따라가면서 해결하는 수 밖에. 혹시 그날 저녁에 피해자가 놓인 장소에 방문했던 차량을 본 목격자는 없나?”
소림 형사는 핸드폰을 들어 혹시라도 자기가 놓친 전화가 있는 지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는 이민형 형사를 보며 아무 말없이 고개를 양 옆으로 휘저었다.
“하긴 이미 CCTV가 어디 있는지 알고 어떻게 무력화시켜야 될지도 알 정도면 범인은 이 모든 걸 철저히 계획해서 사람이 없는 시간까지 계산했겠지, 아마 이 부분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겠군. 범인은 이 모든 걸 철저히 계획 했어. 모든 걸 자기의 계획안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흔적을 남기지 않았어. 딱 하나 빼고.”
“뭘 찾을 수 있습니까 선배님?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소림 형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우리가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딱 하나뿐이야, 1시 45분경에 정희정씨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이 건물로 들어왔지만 나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는 것.”
“그렇긴 하지만 CCTV상의 흐릿한 화면으로 그 사람이 정희정씨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병동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그녀를 만났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려. '왜 굳이 사건이 일어난 그날 새벽에 그녀와 비슷한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야만 했을까?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정희정씨가 맞다면, 왜 병원으로 꼭 돌아가야만 했을까?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서 다시 수사를 시작해야할 것 같아, 소림 형사.”
소림 형사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한채 빨간 불이 켜진 횡단 보도 앞에서 차를 멈췄다.
신호가 바뀌자 다시 속도를 내다가 다림 병원이 보이자 차를 멈춰 세우고는 이민형 형사에게 먼저 내려서 병원안의 카페테리아로 가라고 말했다. 시간이 이미 늦었기에 자신은 차를 대고 올라가겠다며 소림 형사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민형 형사는 차에서 내려 1층 로비로 향하며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진료가 한창일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오가고 있었다.
이민형 형사는 입구에 놓인 팜플렛에서 1층 카페테리아의 위치를 확인한 뒤, 팜플랫을 버리지 않고 접어서 안주머니에 넣었다.
카페테리아에 들어서자 그는 소림형사가 자신에게 그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소매나 앞주머니에 자신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거나 그 마저도 없으면 명찰들을 패용하고 있기에 둘러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자리에 앉지 않고 주변을 계속해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한 남자가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이민형 형사님 맞으시죠? 제가 박호준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뒤를 돌아보니 185cm에 큰 키에 안경을 쓰고, 하늘색 남자 간호사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에는 장난기가 많은 얼굴에 조금 통통했지만 친구를 잃을 슬픔 때문인지 두 눈 밑으로는 어두운 그림자가 바닥까지 끌려 먼 발치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아닙니다. 제가 다행히 시간을 맞춰서 왔네요. 저는 이민형 형사입니다. 다른 동료가 주차를하고 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저희끼리 먼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통유리창에 얇게 햇빛이 비춰 따뜻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뭐 드시겠습니까 형사님? 제가 사겠습니다.”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계속 어제 모임에 있었던 분들을 한 분씩 만나면서 음료를 너무 많이 마셔서 힘듭니다. 괜찮습니다.”
정중히 거절하는 형사를 바라보며 그는 알겠다는 듯 찡긋 웃었다.
“바쁘시겠지만 어제의 모임에 대해서 그리고 정희정씨와 호준씨의 관계에 대해서 듣고자 합니다.
친구를 잃으신 슬픔으로 눈가에 수심이 가득하신 걸로 봐서는 평소에 희정씨와 많이 가까운 사이셨나 보군요.”
이민형 형사의 어림짐작에 긍정으로 수긍하며 박호준은 말을 이어갔다.
“네, 거기 있던 친구들은 모두 서로에 대해서 잘 압니다. 저는 특히 희정이랑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한 의학 계열쪽이라 희정이랑 붙어있던 시간도 많았습니다. 거기 다가 일하는 병원도 비슷해서 자주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는 편이었습니다.”
이민형 형사는 잠시 뜸을 드리다가 입술을 오므리고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질문을 했다.
“사적인 질문을 드리게 되어 죄송하지만 그렇게 오래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성으로써 희정씨를 느낀 적은 없으셨습니까?”
“네, 희정이는 케어가 많이 필요한 친구이기도 했고, 저는 희정이 같은 스타일은 안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지금 여자친구도 따로 있습니다. 곧 결혼도 할 거라서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패를 들켜 어쩔 줄 몰라 하는 도박사처럼 이민형 형사의 귀 끝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박호준은 푸핫하고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당황할 필요는 없으십니다. 다른 사람들이면 모르겠지만 저는 사람 낯빛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거든요. 형사님 귀여우신 면이 있으시군요 덕분에 오랜만에 웃었습니다.”
박호준의 얼굴에서 어둠이 사라지고 잠깐동안 햇빛이 얼굴을 비춰 밝게 빛났지만 이내 흐려졌다.
“죄송합니다. 조사를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관이 되어있고 정보는 한정적이다 보니 이런 쓸 때 없는 질문까지 하게 됩니다. 양해를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손이 많이 간다고 방금 말하셨는데 무슨 뜻인 지 다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다른 분들은 희정씨를 이타적이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람처럼 이야기하던데 간호사 선생님만 다르게 이야기 하셔서요.”
그는 박호준의 성격을 대충 파악한 듯, 조금 더 편안한 말투로 그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들은 희정이가 항상 웃으면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희정이가 의사가 된 것도 자기처럼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그리고 말못하는 아이들이 잘 태어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 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고는 했습니다.”
“아, 저희가 알지 못했던 내용이군요. 혹시 희정씨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나요?”
박호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뭐, 이제는 볼 수 없는 친구기도 하고 수사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씀드리죠.
희정이는 혈소판 감소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상처에 민감했죠. 출혈이 발생하게 되면 위험하거든요. 저도 이 사실을 안지는 그렇게 오래되지않았습니다.”
이민형 형사는 어느새 펜과 수첩을 꺼내 그가 말하는 내용을 적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간다고 말씀하신거군요, 혹시 다른 친구분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희정이가 그 부분을 숨기고 싶어했지만 저도 우연히 희정이가 저와 같이 밥을 먹다가 그 친구가 말실수를 해서 알게 됐으니까요.”
“그날 저녁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호준씨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신것 같은데, 지금처럼 당일의 정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호준씨의 이야기가 다른 분들의 이야기보다 중요해서요.”
박호준은 큰 덩치와 어울리는 산만한 어깨를 움츠리며 형사에게 갑자기 조심스레 존대를 하며 물었다.
“친구들과 이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 불법은 아니죠 형사님?”
“네, 아닙니다. 저희도 당일 날 있었던 일에 대한 진술들을 통해서 사건의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게 저희의 일이니까요.”
“사실 재영이가 말한 것처럼,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중간에 희정이와 다툼이 조금 있었고 그 뒤에 현진이가 핸드폰으로 택시를 불러서 희정이를 바래다줬습니다.”
“혹시 희정씨가 아프거나 어딘가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나요?”
한껏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피고 박호준은 눈을 위로 치켜 뜨며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다.
“아니요, 딱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술에 취하긴 했지만, 희정이도 꽤나 많이 취해 있었고 정말 문제가 있었으면 희정이 본인이 알아차리고 조심 했을거에요 형사님.”
“그리고 김현진씨가 핸드폰으로 차량을 불렀을 때, 언제쯤 어디서 불렀는지 기억하시나요?”
“네, 다들 모여서 테이블에서 일어설 때, 그때 불렀습니다. 왜냐면 다들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고, 각자 집에 가는 방향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하나 둘 흩어졌거든요. 희정이는 좀 정신이 없어서 현진이가 택시 불러서 태워 보내자고 저희끼리 이야기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없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닙니다. 조사하면서 몇몇 정황에 대해서 확실히 알 수 없어서 이렇게 여쭤 보는거죠.”
이민형 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박호준이 마른 기침을 터뜨렸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목이 조금 갈라지신 것 같은데 드실 차라도 한 잔 시키시지요. 저는 동료에게 연락해서 얼른 합류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미안하다며 두손을 모아 고개를 숙인 후에 카운터에 길게 늘어진 줄로 향했다.
이민형 형사는 그 사이에 소림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호준씨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피해자가 병을 앓고 있었다고 해. 근처가 아니라면 로비의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어, 내가 몇 가지 확인해야하는 것들만 좀 더 물어보고 박호준이 나랑 있는 동안 소림형사가 몇 가지 확인 해줘야겠어, 자세한 건 문자로 보내지.”
이민형 형사는 혹시라도 박호준이 통화 내용을 들었을까 봐 그가 서있던 곳을 다시 한번 처다봤다.
여전히 그는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그는 소림형사에게 문자로 조금 더 확인해야 될 내용들이 있겠지만, 박호준이 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그의 대기실로 찾아가 캐비넷을 열어서 특이한 점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물론 불법이지만 그의 소지품들도 뒤져보고 사진을 찍어 오라고 했다.
그가 문자를 보내고 분주히 돌아가는 병동을 바라보는 사이에 박호준이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돌아왔다.
“형사님도 한 잔 드세요, 저만 먹기 조금 죄송해서요.”
“안 마시면 버리실 테니...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저 그런데 형사님, 제가 그날 밤에 희정이와 이야기를 나눴던 게 있는데, 아무래도 범인은 저희가 아니라 희정이를 쫓던 다른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희정이를 쫓던 다른 사람이라면 스토커라도 붙었다는 말씀인가요?”
“사실 그날 밤에만 이야기했던 게 아니라, 한 3개월 전부터 누군가가 자기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므로 걱정되서 여러 번 희정이의 집에 같이 가주고 그랬는데 딱히 주변을 맴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도 아직 그런 기분이 들거나 증거가 있으면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하자고 제가 먼저 희정이한테 이야기 했었거든요.”
“혹시 언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 지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이야기했었나요?”
“거기까지는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따라다니는 걸 무서워했지만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했거든요 희정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지켜 줬어야 했는데, 다 제 잘못입니다 형사님..”그의 유쾌한 말투와 웃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눈물이 방울방울 그의 두 눈에 맺혔다.
“호준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살해한 것이니까요. 실제로 본적이 없다면 의심가는 사람도 없나요? 피해자의 친구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호감을 가졌던 사람도 많았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 같더군요.” 슬퍼하고 있는 그를 잡아 먹을듯이 이민형 형사는 끈질기게 질문을 난사했다.
“희정이가 그날 밤에도 총재와 한바탕 했다는 거 이미 들으셨죠? 이상하게 희정이는 총재에게만 태도가 공격적이었어요. 다른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모질게 굴지 않았거든요.”
“유달리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제가 들은 바로는 총재씨가 화를 안 내고 참거나 넘어 가는게 용할 수준이던데요.”
“맞습니다 형사님, 대학시절 때부터 지켜봤지만 둘은 항상 앙숙이었어요. 총재는 자기일이 아니면 무심한 편에 가까웠고 희정이는 총재와 다르게 자기일이 아니더라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남을 도와주려고 했거든요.”
“뭐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호준 선생님도 환자들을 대하시다 보면 그 부분은 충분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 일을 하다 보니 대학교때 만났던 인간의 범주만이 제가 알던 인간의 전부가 아니더군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범죄와 그걸 저지르는 사람들 다 각자의 이유가 있어 서요, 혹시 둘 사이의 관계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지 않았습니까?”
호준은 그렁 그렁한 눈물을 애써 참고서는 수염이 검푸르게 올라온 턱을 만지작 대며 기억을 곱씹었다.
“그러고 보니 그 둘이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사이가 틀어졌던건...”
이민형 형사가 그의 말을 중간에 가로챘다.
“희정씨가 총재씨에게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다고 조롱했을 때였죠?”
“음... 네, 그전에도 희정이는 총재의 성격이나 태도가 본인과 많이 달라서 우호적이지 않았는데, 그 말을 한 이후에는 둘의 관계는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혹시 언제쯤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십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나지 않아요. 아마 대학 졸업이후로 그 둘이 모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졸업 이전의 일일 것 같아요 형사님.”
호준은 목이 말랐는지 이민형 형사의 질문에 대답하고는 더 이상 하얀 김을 내뿜지 않는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민형 형사는 그가 원두의 쓴맛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는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하는 것을 보고는 이야기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계속해서 정중한 태도로 질문을 이어 나갔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몇 가지 사항만 더 여쭤보고 최대한 빨리 자리를 떠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네, 아직 30분정도 시간 있습니다. 동료들도 이 사건 때문에 형사님과 이야기하러 간 것도 아니까 뭐든 다 물어보세요. 희정이는 돌아올 수 없겠지만 범인에게는 꼭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으니까요.”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희정씨가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적이 있나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희정이가 너무 불안함을 느낀다고 해서 상담을 받으러 가는게 어떻겠냐고 권유 했었습니다.”
“병원에는 가셨나요?”
“아니요, 아시지 않습니까, 본인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친구라 제가 주변에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도 초지일관으로 버텼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요.”
이민형 형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끝으로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희정씨의 댁에 바래다주셨다고 하셨죠? 혹시 들어가신 적이 있나요?”
“이상하게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형사님. 희정이는 저한테 여자인 친구였고, 둘이 막역한지라 심심하면 희정이 집에서 치맥하면서 티비를 보거나 각자 할 일을 하면서 논 적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최근에는 간 적이 없습니다.”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이민형 형사의 눈을 똑바로 처다 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희정이가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이후로는 저를 집에 들여보내지 않았어요. 그때는 별 생각 없이 희정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민감하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혹시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박호준의 얇고 작은 눈이 탁하고 터진 계란 노른자처럼 동그랗게 변하며 이민형 형사에게 답을 갈구했다.
“글쎄요. 저도 선생님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저희가 조사해 보겠으니 여기 드린 제 번호로 주소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박호준은 그가 수첩을 찢어 전달해준 전화번호로 주소를 바로 전달하자 이민형 형사는 이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게 있으면 꼭 말씀해주세요 형사님. 저는 희정이가 저 세상에서도 계속해서 억울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게 친구로서 할 일이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박호준 선생님께는 또 연락을 드려야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른 들어가시죠. 감사합니다.”
박호준은 이민형 형사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숙이고는 병동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이민형 형사 옆으로 소림 형사는 슬며시 다가가 섰다.
“박호준씨랑은 이야기 다 끝나셨나요? 시키신 것은 다 확인했습니다.”
이민형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응, 몇 가지 걸리는 사항들이 좀 있네, 잠깐 저기 테이블에 앉아봐, 뭘 가져왔는지 좀 보자고.”
둘은 그렇게 이야기하던 자리에 앉아 소림형사가 찍은 사진을 보았다.
출퇴근에 입고 다닐 만한 가벼운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있었고 밑에는 담배와 라이터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것 말고는 특별한 건 더 없었나?”
“아니요, 선배님 다른 사진 하나 더 보여 드리겠습니다.”
소림 형사가 핸드폰의 화면을 오른쪽으로 넘기자, 박호준의 캐비넷을 장식한 사진이 보였다.
대부분 가을 산에 놀러가 자신만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두 형사는 세명이서 같이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신태휘, 박호준, 김희정 셋이서 브이자를 날리며 관악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놔두고 이 셋만 따로 모여서 산에 간 것 같지? 다른 친구들은 스케줄이 안 맞아서 그렇게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셋이서 더 각별한 관계였을 지도 모르겠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사실 사진보다는 제가 따로 찾아낸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선배님.”
그녀가 다음 사진으로 넘기자 박호준의 캐비넷에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