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번째
이성운은 쓰레기가 구정물과 함께 넘실대는 골목에서 빠져 나와 김현진으로부터 멀어진 듯했다.
하지만 그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BAR 근처로 되돌아갔다.
김현진이 자리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서있는 걸 보며 이성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자 이성운은 황급히 건물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이성운은 피식댔지만 그 마저도 소리가 날 까봐 스스로 입을 틀어막느라 바빴다.
자신의 관찰 대상이 어느 길로 가야할지 갈팡질팡 하는 동안 이성운은 핸드폰을 켜서 빨간 버튼을 눌러 녹화를 시작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사건에 대해서 보고를 받을 때 이 사건에 개입하지 말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지만,
이성운은 자신이 이 사건에 개입된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어디서부터 무엇이 문제였는지 밝히기 위해 경찰로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경험과 지식들을 동원했다.
그리고 모든 정보들로부터 멀어져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날 저녁 희정이는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특별히 없었다.
그저 호준이가 진상 환자를 이야기하며 왁자지껄 떠드는 걸 들으며 같이 웃던 게 그가 그날 희정이와의 접점이었다.
희정이와 총재의 어수선한 싸움이 지나가고 난 후에도 희정이는 걱정하거나 아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도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기는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희정이 김현진과 나간 이후에 택시를 탔었고 희정이는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죽었다.
암담하게 짓누르는 현실의 압박에 정신까지 이상해졌다고 해도 자신이 가장 믿는친구가 누군가를 살해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남겨진 키는 지난 겨울 밤 그 친구의 행적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이성운은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와 샤워를 하고 몸을 푹 녹인 후에 잠에 빠져 있었다.
잠을 깨우는 알람소리에 일어나 끔찍한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게됐다.
이 사건을 풀어나갈 하나의 실오라기를 찾아 낸다면 어떻게든 자신이 풀어나갈 수 있을거라는 오만한 생각과 함께 사건보다 친구를 걱정하는 척, 그렇게 김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자신이 술에 취해서 어떻게 걸어서 돌아왔고 자기가 택시를 불러줬는데 그 이상의 기억이없다.
'만약 현진이가 범인이라면?'
충분히 본인에게도 거짓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성운은 생각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수 있는 건 조커 같은 싸이코들 뿐이니까, 하지만 이성운이 아는 김현진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구를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확실한 목격자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이후에 그가 말한 진술조차도 어긋나기 시작하는 건, 경찰일을 하면서 수없이 겪었던 범인들의 특징 중 하나였으니까.
친구의 진술이 어긋난 퍼즐 조각처럼 맞지 않기 시작하자 이성운은 친구라는 사실을 가슴 한켠에서 밀어냈다. 대신 지금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건,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유력한 목격자 혹은 잔혹하고 치밀하게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도 뻔뻔하게 가면을 쓰고 있는 살인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