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째
김현진이 왼쪽으로 길을 틀자 멀찌감치 그로부터 떨어져 뒤를 밟았다.
무엇인가를 찾는 듯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으로 부터 멀어지기 위해
이성운은 가로등 뒤에 숨기도 하고 건물 사이에난 골목길로 쪼르르 들어가기도 했다.
관찰 대상이 대로를 향해 빠져나갔지만 이내 또다시 지나간 길에서 잠시 멈췄다가 빠져나온 골목을 휙 하고 쳐다보고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대로에는 숨을만한 곳이 없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최대한 김현진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이성운은 거리를 유지했다.
해는 슬슬 저물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고 건물의 그림자와 사람들의 그림자가 거리를 덮으며 검게 물들였다.
이성운은 혹시라도 친구가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고민하며 친구의 까만 그림자를 뒤쫓았다. 내리막길이 나오자 김현진의 발걸음의 폭이 점점 커지더니 뜀박질을하듯 앞으로 쭉 내질렀다.
이성운은 달리면서 자신의 위치를 노출할 수 없었기에 그가 얼마만큼 내려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위치에서 빠른 걸음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
평평한 평지에 다다르자, 김현진은 무엇인가 생각난듯 주위를 둘러보며 멈춰 섰다.
이성운은 가까이 가면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리막길에 위치한 커다란 배전함 뒤에 숨어 그를 훔쳐보았다.
그가 서있는 곳은 택시 정류장이었다.
김현진은 그 자리가 기억나는 듯 힐끗 대기석을 처다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 택시정류장에서 김현진은 희정이를 보내줬을지도 모르겠군...
그때 둘은 엄청 취해 있었고 골목으로 들어와서 빠져나가는데 시간이걸리니
혹시라도 택시가 너무 늦으면 거기서 기다리다가 택시를 탈 요량이었을지도 모르겠네
거리상으로도 멀지 않고, 평소 김현진의 성격상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걸 죽는 것보다 싫어해서 문이 닫히는 지하철에도 서슴없이 뛰어 한국인이니까..'
멀리서 내려다 봤지만 CCTV는 보이지 않았다 .
좌측 대로 변으로는 차량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도심을 내달리고 있었고, 우측에는 넓은 공원에 맺혀 녹아내리는 눈송이들과 추적추적 빗물위에 만든 눈사람이 이 삭막한 도시의 풍경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꾸며보려고 애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들은 녹아내려 비처럼 흘러내려 오히려 더러운 인상을 주기 시작했지만 아무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정류장 근처에 가까운 가로등이나 CCTV는 보이지 않았다.
이성운은 김현진이 저기서 희정이를 태웠다는 증거는 확보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김현진이 공원을 가로질러 길을 통해서 나갔다면 뭔가 건질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그가 아직도 그 자리에 꼿꼿이 앉아 있는지 눈을 돌려 확인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놓친 건가? 아니면 그 사이에 모든 걸 눈치채고 나를 따돌린건가?’
자신이 혼자 상념에 빠진 시간을 고려해봤지만 의미 없음을 깨닫고는 다음 행동을 정했다.
의심스러운 알리바이에 대해서 몇 번이고 다시 조사하는 것.
그는 자신의 수사 원칙을 따라 길에서 내려와 눈과 물에 젖어 뭉글뭉글해진 공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