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밤 속_붉은 점

17번째

by 김현진


사진속에는 널부러진 약통들이 찍혀있었다.

스테로이드, 소론토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약들을 보고서 이민형 형사는 뭉특한 손가락들로 스크린샷을 꾹꾹 눌러대고 있었다

사진에 있는 약품명들을 하나씩 대조해가며 꾸역꾸역 스마트폰과 사투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소림형사가 그의 분주한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선배님 그만 찾으셔도 됩니다. 이미 제가 오는 길에 리스트 뽑아서 정리했습니다.”

“너는 그걸 이제 말해? 아주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아는구나 너?”

이민형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소림형사는 전혀 그런 뜻으로 행동한 게 아니라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저는 선배님이 이 사진들을 보고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 네가 무슨 말할 지는 나도 잘 알겠어... 이 약들 전부다 혈소판 치료 관련된 약품들인데...

왜 이게 박호준의 서랍에 있는 걸까?”

소림형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방전 같은 건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약통들은 잘 보이지 않도록 캐비넷 서랍 두번째 칸에 상자 속에 약들이 있었습니다. 상자 사진은 이렇습니다.”

상자는 다이소에서 산 선물 상자처럼 정육각형에 빨간 색이었다.

뚜겅에는 무엇인가 붙어 있었는 듯, 촬영 때 빛을 받았는지 무언가 붙였다가 띄어 진 자국이 보였다.

소림 형사는 앞쪽 상자만 그런 게 아니라 상자의 밑바닥도 비슷하게 되어있었다며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밑바닥에는 풀이 붙었던 것처럼 끈적이는 바닥과 종이 상자가 정사각형 모양으로 비벼져서 해당 부분이 거칠게 올라와 있었다.

이민형은 계속해서 두개의 사진을 교차해서 보더니, 이내 소림형사의 핸드폰을 가져가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 거리를 두며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병원 바닥을 뛰어다니며 몰래 남의 소지품까지 뒤져야 했던 소림 형사는 하루종일 이 사건에 매달려서 피곤한지 근처에 있는 의자에 스르륵 주저 앉아 선배가 답을 줄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5분 쯤 지나서야 그는 핸드폰을 그녀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넌 그 약들이 박호준꺼라고 생각해?”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본인 거라면 그렇게 힘들게 숨기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는 병원이고 자신이 간호사라는 점 때문에 그걸 숨겼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굳이 그런 박스에다가 숨기는 것도 이해가 안가긴 합니다. 정말 털털해서 아무 박스나 상관없다면 모를까 굳이 약통도 아니고 선물 박스 같은 곳에 숨기는 건..”

그녀는 말 끝을 흐리다가 혹시 하는 눈빛으로 이민형 형사를 처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만약... 박호준이 자신의 약들을 누군가 줬었던 선물함에 별 생각 없이 보관했다면, 정말로 그건 털털을 넘어서 대충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물함 내부는 어지러웠지만 그 나름대로 두서 있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성격과는 너무 다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방금 네가 말한 것처럼 박호준이 정말로 정희정과 같은 병을 앓고 있다면, 간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장을 위협하는 약점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게 오히려 그의 성격에 부합하는 게 아닌가?”

소림 형사는 꿀 먹은 한 마리 곰처럼 조용히 볼에 바람만 넣어 자신의 의견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보여준 자국들 자세히 보면 크기도 다르고 사이즈도 달라, 누군가 이걸 박호준의 사물함에 넣은 건가 싶기도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선배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는 말없이 상자의 위쪽을 찍은 사진을 가리키고는 핸드폰을 검지로 툭툭 눌러 화면을 확대했다.

“잘 봐, 이거 평소에 어디서 많이 보던 흔적이지?”

손바닥 절반 만한 크기에 얇게 남은 테이프자국 주변에 쌓인 먼지들을 보고 소림 형사는 이내 그에게 대답했다.

“포스트잇 자국이네요. 이제야 보입니다 선배님. 그럼 그 뒤에도 포스트잇일까요?”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민형 형사는 사진을 뒤로 넘겨 화면을 확대했다.

“아니, 이건 길이가 너무 작아도 너무 작아 그리고 포스트잇처럼 윗부분만 있는 게 아니라 사각형 모양 전체적으로 먼지가 길게 눌러 붙어있어 아마도 이 박스에 붙어있었던 제조사나 원산지 표기 정도지 않았을까 싶어.”

“그런데 왜? 굳이 원산지까지 뜯어야만 했을까요?”

이민형은 후배를 답답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너 앞으로 밥벌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생각을 해봐”

“음... 선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박호준의 물건이 원래 아니라면, 이 박스와 물품들을 집어넣은 사람은 어떤 메세지를 포스트잇에 박스위에 적어서 붙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원산지 표기나 아니면 이 박스에 대해서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숨겨서 누가 보냈는지 모르게 하려는게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에 박스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박스 위에 글씨가 눌려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포스트잇에 글을 쓰고 박호준에게 경고를 했거나, 아니면 박호준이 보고서 불쾌할 만한 내용을 적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왜 굳이 이런 선물 박스 같은 걸 골랐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종이 박스를 사용할 수도 있고 협박을 할 거면 그냥 포스트잇만 박호준의 자리에 붙여도 되는데 말이죠.”

소림형사가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자 이민형도 만족한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가설을 발전 시켜나갔다.

“그래, 나도 너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어. 다만 박스를 왜 그렇게 골랐는 지에 대해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해. 조사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박호준은 병이 있지는 않을 거야, 다만 이 약들과 포스트잇에 적힌 문구가 자신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와서 이 박스를 받은 후에 바로 내칠 수 없었을 거고, 자기가 캐비넷에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

“그 말인 즉슨, 이 상자를 채워 넣은 사람이 범인이거나 이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네요?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요? 그리고 왜 박호준은 이걸 버리지 않고 아직도 자신의 캐비넷에 가지고 있는걸까요?”

이민형 형사는 소림형사의 연달아 터지는 질문을 감당하기에는 버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손을 펼쳐 들어올렸다.

“낸들 알겠어? 그걸 찾아야 하는게 우리의 일이야.. 다시 한번 박호준과 바로 이야기를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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