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째
챕터13.
병원의 외관은 여러 동이 한곳에 모여 직사각형 화이트 초콜릿 같았다.
병원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서 주위를 둘러보면 알 수 있듯이,
건물의 너비는 짧지만 건물 끝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할때지 족히 5분은 걸어야할 정도로 길이가 긴 모양의 병원이었다.
기다란 형태를 유지하다보니 출입구가 여러 곳이라, 병원측에서는 환자들이 위치에 대해 쉽게 문의할 수 있도록 병원의 중앙에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위치시킨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선임 안내원이 두 형사의 요청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쩔쩔매고 있었다.
“저희는 박호준씨와 다시 만나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저기 카페테리아에서 이야기 나눴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안내 선임 안내 요원은 자신들이 개인 정보를 알려줄 수는 없으니,
잠깐 기다리면 관련 부서에 문의 후에 답을 주겠다며 앞에 앉아 기다리라고 말했다.
둘은 안내자의 말에 따라 데스크 앞에 놓인 긴 벤치 의자에 앉았다.
사실 그들은 데스크로 찾아오기 전에 박호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받지 못했다.
문자도 남겼지만 15분 남짓 아무런 대답이 없자, 소담은 박호준이 긴급한 업무 때문에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으니 차차 조사하자고 했지만 이민형 형사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이렇게 데스크를 찾아와 소란을 벌였다.
“선배님 왜 굳이 지금 박호준을 찾으시려고 하시는거에요? 여기는 병원이니까 간호사들 언제든지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일에 소환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일 오자고 말씀드렸는데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고..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우시면 선배님이 저한테 시킨 일도 들통 날 수 있다고요.”
그녀는 속삭이듯 선배에게 이야기했지만 이민형은 여전히 박호준의 행동에 의구심을 풀지 못한 상태였다.
이민형은 얼마지나지 않아 흠하는 코소리를 내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흠.. 글쎄, 네 말이 틀린 건 없어. 나도 우리가 조사해야 할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고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다음에 오는 게 맞다고 생각 했지만, 아무래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눈들이 많아서 혹시라도 몰래 뒷조사한 게 그 친구 귀에 들어가서 우리를 피하는 것 아닌 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기다 인포데스크에서 한번만 그쪽 관리자한테 물어보면 박호준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걸.."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데스크의 직원은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선임 안내원은 다른 환자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기에 옆에 있던 다른 안내원이 그들에게 말했다.
“형사님들께서 찾으시는 분이 박호준 간호사 맞죠? 오늘 아예 OFF라서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라고합니다.
형사님들이 가지고 계신 번호가 맞을 것 같은데 핸드폰 번호는 다시 한번 확인해드릴 수는 있어요. 한번 확인해 드릴까요?”
선임 안내원은 그녀가 굳이 개인정보를 재 확인해주려는 것이 못마땅한 듯, 환자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를 째려봤지만 이미 소담 형사가 데스크 안쪽으로 몸을 기울여 번호를 재확인하느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두 형사는 이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번호가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둘 다 동시에 목을 좌우로 왔다갔다 꺾어대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휴가인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와서 굳이 선배님을 만났을까요? 필요하면 집에서 볼 수도 있었을텐데..
게다가 아무리 휴가라고 하더라도 본인도 용의 선상에 올라간 친구의 죽음을 조사하고 있는 형사의 전화를 이렇게 무시하는 것도 참...”
소담 형사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번번히 막히는 사건이 야속하여 이민형에게 답답함을 토해냈다.
그 또한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고 싶었는지, 안에 껴입은 후리스의 지퍼를 내리고는 양손으로 옷을 펄럭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다시 생각해보자고 소담 형사. 우리를 굳이 이곳에서 보려고 했는 지는 나도 아직 짐작조차 할 수 없어, 거기 다가 여기서는 본인이 더 의심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박호준은 우리가 그 증거를 찾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만나자고 했을 것 같은데... 그럴 만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혹시 박호준이 떠나기 전에 어디를 간다고 하거나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제가 오기 전에 선배님이랑 박호준이랑 무언가 주고받는 걸 봤었거든요.”
이민형 형사는 박호준에게 받은 연락처가 적힌 종이 쪼가리를 펼쳐 보이며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뭐, 아까 확인해본 박호준의 번호가 적힌 종이가 전부야. 그런데 특이한 점이라 하면 박호준 말고 죽은 정희정씨한테 특이한 부분이 있다고 했었어, 아까 사진을 보느라 말을 못해줬군.”
“저도 알려주세요 선배님. 백지장도 맞들면 나아요”
다 죽어가는 분위기를 살려보고자 실없는 농담을 하는 소담 형사에게 이민형은 멸시의 눈빛을 보내다가 이성을 되찾았다.
“박호준은 원래 정희정 집에 자주 드나들며 치맥까지 자주하던 사이라고 했어.
그런데 약 3개월 전부터 정희정이 누군가가 자신을 쫓고 있다고 박호준에게 이야기했다고 해.
그리고 그 이후부터 박호준도 정희정의 집에 들어가서 노는 일은 더 이상 없다고 했어.”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둘이 연인 사이가 아니었을까요?”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본인 말로는 본인의 취향이 전혀 아니라고 했어, 박호준이 말하길 정희정은 혈소판 감소증 때문에 육체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스타일이라 손이 많이 간다고 했거든.”
박호준의 기행 때문에 열이 받은 이민형 형사는 그를 비꼬아 대며 말했다.
소림은 그의 힐난한 비난을 뒤로 하고 데스크로 다가가 무언가 물어보고는 이민형 형사에게 돌아왔다.
이민형은 후배가 자신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게 못마땅 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뭘 물어보고 돌아왔냐고 물었다.
“다른 용의자들과도 이야기해야겠지만, 지금은 박호준을 먼저 찾아야 될 것 같아서 쓸만한 정보를 얻어왔습니다 선배님.”
“개인 정보는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버티는데 무슨 수로? 뭐 아직 증거도 없는 데 아마추어처럼 아무 잘못없는 일반인들 협박한건 아니지?”
그의 말에 소림은 코웃음을 치고는 그를 향에 쌍수를 들며 쌍권총을 날렸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림의 행동에 뭐하는 짓이냐고 대꾸했다.
“선배님, 조사는 저보다 잘 하시지만 여자 마음은 전혀 모르시네요. 저기 말 안 통하는 선임말고 선배님을 계속해서 곁눈질하던 다른 안내원에게 물어봤어요. 물론 기브엔테이크로 선배님 개인 번호도 드렸으니까 그 정도는 봐 주실거죠?”
이민형은 입을 꾹 다물고는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소림은 그렇게 모자란 모습을 그 안내원에게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민형 형사는 양팔을 꼬고 등을 벽에 기대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그 잘난 정보 한번 들어보지 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