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번째
까만 그늘이 내려 앉아 땅을 뒤덮은 곳에는,
지난 밤 내린 눈이 녹지 않고 포슬포슬하게 쌓여 있었지만,
해가 드나드는 땅은 이미 눈이 녹아 내리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발자국에 따라 더러움을 곳곳에 남겼다.
이성운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 길을 최대한 피하면서 새로산 하얀 신발이 더럽혀 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며 뒤를 쫓았다.
서울 한복판에 있다보니 공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이성운은 공원 한바퀴를 천천히 돌았지만 10분만에 처음 들어왔었던 입구 쪽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찾기 위해서는 CCTV가 절실했지만 휑한 나뭇가지들만이 바람에 흔들릴 뿐,
공원안에는 CCTV가 없었다. 다만 공원 끝에 차량이 6대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도로형 공용주차장이 그의 눈에 띄었다.
주차장 끝에는 따로 승인을 받지 않은 차량은 언제든지 견인될 수 있으며 비용은 얼마인지 신청하려면 어느 과로 연락해야 되는지 녹슨 표지판이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혹시라도 주변을 관리하기 위해서 CCTV를 설치했을까 싶어 주변을 살폈지만 역시 이곳에도 없었다.
“젠장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나? 도대체 맨날 내는 세금은 어디에 쓰는건지 알 수 가 없군..”
이성운은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자신 또한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서 세금을 헛투르 쓰고 있다고 욕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며 이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조그마한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산책로를 한바퀴 돌았지만 휑한 벤치들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미 그는 타겟의 위치를 놓쳤고 독자적인 수사진행 또한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벤치는 물을 머금어 촉촉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허리를 비스듬히 기댄 체 의자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지에 차가운 물이 스며들자 그는 움찔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바지가 젖어 얼어가기 시작했지만 그의 정신은 온전히 김현진을 뒤쫓을 방법으로 쏠려 있었다.
용의자를 함정에 빠뜨려서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을 했지만,
이성운은 자신이 뽑을 수 있는 카드가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굳이 카드를 뽑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놓을 수 있는 적절한 패가 없다면 허세로 상대방이 포기하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날이 따뜻해졌지만 영하의 날씨에서 바깥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성운의 손은 빨갛다 못해 푸르뎅뎅하게 변하고 있었다. 양손 깍지를 꽉끼고는 손을 놓지 않고 고민하던 끝에, 그는 핸드폰을 꺼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찾은 게 좀 있어서 그러는데 내가 찍어주는 공원으로 올래? 같이 확인했으면 하는게 있어서.”
그리고는 이성운은 김현진과 몇 마디 더 나누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정답을 가장 먼저 맞춰서 시험장을 떠나는 듯한 홀가분한 마음으로 벤치에서 멀어졌다.
차갑고 축축한 벤치에는 그의 머무름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