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번째
“첫째, 범인이 너의 핸드폰을 가로채고 난다음 다른 핸드폰으로 택시를 불러냈다고 생각해보자.
범인은 희정이가 가야할 곳을 바꿔서 지정했을거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희정이를 불러 들여서 그곳에서 희정이를 죽이면 계획이 성립하는거지.
희정이를 마지막에 바래다준 사람이 너니까 모든 사람들은 너를 의심할꺼고 너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게 참 쉬웠겠지.
하지만 이 계획은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있어 왜냐하면 내가 알게된 정보로는 희정이는 자기 병원근처 쓰레기장에서 발견됐고 그날 새벽 병원으로 들어가는 희정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고했어.. 눈이 많이 와서 정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지만 희정이가 자기 발로 그 시간에 병원에 들어간게 사실이라면 희정이가 집이 아닌 병원으로 가달라고 택시기사에게 말했을거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서 병원으로 갔다는 소리니까.
그래서 이 첫번째 가설은 성립하기가 어려워.
희정이를 죽일 의도가 명확한 범인이 아무것도 모르는 택시기사를 자기의 계획에 집어넣어 계획을 무너뜨릴 일말의 가능성을 뒀을리가 없다고 생각해.
내가 아무런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멍하니 서있자, 성운이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두번째, 아니 이걸 말하기 전에 너한테 물어볼 게 좀 있어.”
"뭐가 궁금해?"
“그날 저녁 카카오로 택시 불렀다고 했지? 위치를 어디로 지정 했었어?”
그날의 기억을 되짚으면서 계속해서 생각해내려고 했지만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가 따로 지정한 적이 없으니 GPS 따라서 가게 앞으로 지정되어 있었을 것 같다고 성운이에게 말했다.
“그런데 너 바로 앞에서 택시를 타지는 않았지?” 성운이가 눈을 번뜩이며 날카롭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거기서 타지는 않았어 그리고 아까 돌아다니면서 나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생각났어.”
성운이는 나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알아낸 것들을 토하라며 손짓했다.
“너도 기억하겠지만 BAR 근처에 빨간 우체통이 하나있어. BAR에서 그렇게 멀지 않고 거기다가 요즘 우체통은 거의 보기 힘든 골동품이라 그걸 보면서 희정이랑 웃었던 게 기억이 났어.
그리고 차량번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얀색 소나타가 희정이를 태워서 갔던것도.”
“차량위에 택시 마크는 있었고?” 성운이는 조심스럽지 못했던 그날 밤 나의 행동을 꾸짖듯이 물었다.
“그건 기억이 잘 안나, 아마도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성운이는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점점 더 압박해 왔다.
“현진아, 넌 지금 하룻밤 일탈 수준의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야.
모든 정황들이 너를 향해서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고?
너가 기억하지 못하면 나도 너를 더 이상 도와줄 수가 없어,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자 해결할 수 있는 목격자가 바로 너라고.”
성운이의 횡경막이 분노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무거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지금을 네 말을 듣겠어. 하지만 혹시라도 너가 나와 장난을 치거나 나를 속이려고 하는 거면 나는 정말 너를 가만두지 않을거야 현진아. 아마 내 손으로 너를 직접 잡아 쳐 넣을 거야,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간 희정이를 위해서.”
나는 억울함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가 없었다.
그저 입안의 생살들을 잘근잘근 씹어 대며 억울함과 입안에서 터진 피의 맛을 목뒤로 넘길 뿐이었다.
성운이는 자신의 말이 거칠었음을 그리고 자신의 본심을 들어냈음을 깨닫고는 나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나도 정말 답답해서 그런다. 친구란 놈이 널 믿지 못하고 이렇게 몰아 대고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나도 너만큼 정말 찾고 싶다. 도대체 왜 희정이 같이 착한 사람을 죽여야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는지 답이 보이지가 않아.. 이번엔 정말..”
성운이가 말을 먹고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희정이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받고 서로 의심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너무 불쌍하다고 느꼈다. 성운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며 한참동안 서로를 위로를 하고나서야 우리 둘은 진정할 수 있었다.
성운이는 힘이 빠졌는지 털썩 길가에 주저 앉더니 중얼거리며 자신의 두번째 가설을 풀어놓았다.
“택시 마크가 있었던 없었던 그건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아. 뭔가 이상했으면 너도 분명 눈치 채고서 희정이를 태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대부분의 사람은 그 시간에 아무리 취해 있더라도 그 정도는 분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 두번째 가정은 택시기사가 공범이었거나 범인 그 자체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 네가 앱으로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고 생각하게 만들고는 다른 차량과 그 차량을 운용하는 사람을 투입시고는 희정이를 납치한 후에 독약을 먹여서 살해하고는 희정이가 일하던 곳에 버렸을 거야.
만약 그런 식으로 계획을 했다면, 왜 희정이를 굳이 납치하고는 병원 근처에서 발견되게 했는지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밝혀진 증거들만 놓고 보면 지금 이 가설이 더 가능성이 있어 보여.
그리고 네가 번호판이든 얼굴이든 기억하지 못하고 오직 하얀색 소나타만 기억을 한다면..
우리가 가진 힌트는 그 하얀색 소나타뿐이야 일단 그 소나타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아봐야겠지만.
그 근처에는 CCTV가 없고 아까 말한 것처럼 계획된 범죄였다면 그 차량을 아주 가깝게 대기시킬 만한 이곳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불렀어. 그나마 네가 차량 정보라도 기억해내서 다행이다.
내가 일단 공원에서 떨어진 곳의 주차장에서 받은 CCTV 정보를 내 태블릿에 저장해왔어.
일단 추우니까 어디 들어가서 뭐 좀 먹으면서 같이 돌려보자.”
공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렇게 멀지 않은 BAR로 다시 돌아가자고 성운이에게 말했다.
“아니 거기는 좋은 선택이 아니야. 나는 네가 범인이 아니라면 우리들 중 누군가가 분명 희정이를 죽였을 거라고 생각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게 너무 촘촘히 짜여 있고 희정이가 살해당한 방식조차도 한치의 시간의 오차도 없이 짜여 있는 걸 보면 우리는 자신을 빼고 모두 서로를 의심해야 해.”
“그래 네말을 들으니 일리가 있네. 그게 내가 아니라 성운이 너일지도 모르지만.”
성운이의 표정이 잠깐 일그러졌지만 실없는 농담은하지 말라며 웃어넘겼다.
“경찰 뱃지달고 내가 그럴 놈으로 보여? 걱정하지마 내가 이번 기회에 니가 주는 세금 제대로 쓰고 있다는 거 보여 줄테니까." 확신에 찬 성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원 밖으로 향했다.
나는 아무 말없이 성운이의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