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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Aug 25. 2021

하얀 밤 속_붉은 점

23번째


예약을 위해 길게 끝없이 늘어있던 줄은 세상의 조명이 꺼지기 시작하자 점점 줄어들었다.

기다란 병원의 홀안에는 구멍이라도 생긴 것처럼 사람들 출구를 향해 물밀듯이 빠져나갔다.

직원들도 하나 둘씩 퇴근하기 시작하던 참이라 두 형사는 눈치껏 병원을 떠나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소림형사는 이민형에게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났는지 빠른 걸음으로 그의 옆에 찰싹 붙었다.

“다행히도 박호준씨가 직장내에서 추파를 꽤나 던지는 스타일이었나 봅니다.

선배님께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아까 그 인포데스크 직원이 박호준과 썸을 타고 있었나봐요.

본인 말로는 아무일 없었다고 하지만 며칠전 그의 집에 들려야 할 일이 있어서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꽤나 흥미로운 정보를 들고와서 의기양양해 있는 후배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수사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는 좋은 정보였기에 근심으로 접혀있던 이민형의 얼굴은 살짝이나마 펴졌다.

“그게 언제였는데?” 이민형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소림을 처다 보며 물었다.

“저번 주 일요일이요,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발생하기 1주일 전에..”

“혹시 이사 예정일은 언제 인지도 물어봤었나?”

“아니요, 그것 까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날 박호준의 행동이 이래저래 이상하다고 했거든요.”

 
이민형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걷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는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는 10초 정도 지난 후 띵 소리를 내며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소림이 먼저 들어가 차량이 있는 지하로 버튼을 누르고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에 도착했다.

저녁 바람은 스산해서 옷깃사이로 스며들자 둘은 옷깃으로 몸을 감싸고는 빠르게 뛰어 차에 탑승했다.

소림은 히터를 키고서 박호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무엇을 돌려줘야 했는지는 개인사를 침해하는 것 같아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선배님도 기회를 가지셔야죠.” 소림은 이민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민형은 중요한 순간에 장난을 치는 소림이 짜증났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듯 그녀의 장난을 철저히 무시하고는 핸드폰을 쳐다봤다.

소림은 한번 더 장난을 쳤다 가는 정말 혼날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는지 다시 선배를 깍듯이 모시는 척하며 짧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박호준 집의 문 앞에 섰을 때, 안에서 테이핑하는 소리와 짐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서 벨을 누르고 박호준이 문을 열어 주길 기다리는데 벨소리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없는 척을 했다고 합니다.

온 김에 얼굴이나 보고 인사라도 하는게 예의 아닌가 싶어 바쁜 거 아는데 잠깐만 나오라고 문을 두드리자 그제서야 박호준이 문을 빼꼼 열고는 나왔다고 합니다.

문이 활짝 열리지는 않아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안에는 이사용 파란색 박스들이 쌓여 있었고, 박호준도 츄리닝 차림이었다고 합니다.

박호준은 꽤나 당황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직원이 물건을 돌려주자 고맙다고 하고는 바로 문을 쾅 닫았다고 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안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했거나 아니면 잠깐 자기 쉬는 시간이라며 나와서 점심이라도 하자고 했을건데 그렇게 자신을 대하니 그 직원도 감정이 상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뒤로는 박호준을 봐도 아는 체도 안하고 연락도 안 했다고는 합니다.

박호준이 눈치없는 행동을해서 썸이고 뭐고 다 없어진거죠."


“박호준 그 사람, 처음보는 나한테도 엄청 싹싹하게 굴었는데 마음이 있는 사람한테 그렇게 행동 했다니 조금 이상하긴 하네.” 이민형은 잠깐동안 그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턱을 괴었다.

“아무래도 그렇죠? 급하게 숨겨야 하거나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없다면 그렇게 까지는 안 했을 것 같은데.”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박호준이 말한 것처럼 정희정의 집에도 방문을 해볼 필요가 있어 정희정이 집에서까지 위협을 느낀게 맞다고 생각하거든.

둘이 찢어지자. 먼저 정희정 집에 나부터 내려주고, 너는 박호준의 이사하기 전 집으로 가보자고.”

“네, 그렇게 하시죠 선배님.” 소림은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두 번 끄덕거리고는 주차장에서 빠져나가 지상으로 향했다.

이민형은 자리에서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네비게이션에 신도림역 근처 오피스텔로 주소를 입력하였다.

‘신도림동 153-0001234번지’

대림 병원에서 차로는 1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나 퇴근시간이 겹처 역근처에 도달하자 길이 꽉 막혀 좀 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소림 형사는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보고자 라디오를 틀었고 빠른 비트의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두 형사는 아무 말없이 노래를 듣고 있는 듯 했지만,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길 기다렸다.

이내 신호등에서 누런 빛을 내자 이민형과 소림은 동시에 “저기..”라고 말을 꺼냈다.

“선배님께서 먼저 말씀하시죠, 제가 말하려고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 나도 별로 중요한 건 아닌데 찢어지기 전에 뭘 좀 먹고 가는 게 어때? 바쁘니 저기 앞에 보이는 맥도날드 드라이브 쓰루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내가 살께. 첫날인데 밥도 제대로 못 먹이고 하루 종일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서 선배 노릇 좀 하려고.”

소림의 검고 커다란 눈동자가 놀라움에 휘둥그레 지며 말했다..

“저도 마침 배고프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역시 선배님 우리 부서 최고의 형사님이 맞으십니다!”

소림이 자신을 보며 실실거리며 웃자 이민형은 그녀를 툭치며 파란불로 바뀐 신호등을 가리켰다.

신호등이 바뀌자 거리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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