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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Aug 30. 2021

하얀 밤 속_붉은 점

24번째


드라이브 쓰루는 한산했다. 

드라이브 쓰루 옆 작은 주차장에서 빅맥 셋트로 허기진 위장을 채우기 위해 두 형사는 게걸스럽게 햄버거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이민형은 항상 신입이 오면 그날 점심이든 저녁이든 드라이브 쓰루에서 햄버거를 사 먹였다. 

자신이 처음 형사일을 시작했을 때 가장 마음이 놓였던 시간은 짬시간에 선임과 함께 햄버거를 먹는 시간이었기에. 

소림 형사는 얇고 긴 입술에 소스를 묻히며 무아지경으로 햄버거와 콜라를 번갈아 가며 씹고 마셨다. 

그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봤던 이민형은 자기와 같이 어려운 일을 해야만 하는 소림에게 잠깐동안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고개를 숙이고는 햄버거를 입에 넣으며 소림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왜 형사가 하고 싶었던 거야? 조금 더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곳도 있잖아?” 

소림은 그 말을 듣고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햄버거를 입에서 떼고는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선배님은요? 제 이야기 듣고 싶으시면 선배님 이야기부터 해주세요.” 

이민형에게는 늘 있었던 일이다.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운지 남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그는 이번에도 먼저 대답해주기로 했다. 

“들으면서 웃지나 말라고, 내가 생각해도 그런 일을 겪고도 경찰을 선택한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니까.”

소림은 알았다며 다그치며 선배의 어깨를 툭치며 얼른 말해달라며 보챘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부모님 강원도에서 총포사를 하셨어, 소림 형사가 태어나기 전부터 말이야.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총기소지 금지라 총포사가 많지가 않아. 덕분에 총기 관련 사건 사고가 나면 가게로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이것 저것 부모님께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어. 

물론, 불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을 저지르시는 분들은 아니셔서, 아직까지 두 분다 아직까지 멀쩡히 살아 계셔.”  

“제복입은 아저씨들이 들어와서 조사를 하는게 멋있어 보였던거에요? 그게 아니면 굳이 경찰이 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요 선배님.”  

소림형사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장 기본적인 추리를 했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제복입은 아저씨들은 오지도 않았어.  맨날 머리는 감는 둥 마는 둥 정신없어 보이는 아저씨들만 와서 가게를 뒤집고 다니니 오히려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지.

그런데 1999년 12월 31일...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 

한겨울인데 눈은 내리지도 않고 그날 따라 공기도 안 좋았는지 산성비만 주륵 주륵 내렸었지.  

연말에 할 일도 딱히 없었던 나는 별 생각없이 부모님을 도와서 가게를 보고 있었어.  

비가 많이 내려서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왔을 때 바닥이 젖지 않도록 종이박스를 북북 찢어서 바닥에 깔아 댔던게 기억나.” 

소림은 그게 경찰이 된 이유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들어나 보자라는 식으로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인내심이 좋네. 꼭 이 이야기를 하면 여기서 후배들이 끊어 먹던데...

그날 저녁도 다를 게 없었어. 다만 비가 많이 와서 가게 안에서 부르스타에 물을 올리고 라면이나 끓여 먹자고 하고 있었지, 그날 아버지는 동창회를 가신다며 오전에 나가셨고 가게에는 나와 어머니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어.  

그런데 아마 오후 6시쯤이었을거야, 가게의 문이 옆으로 스르륵 밀리며, 연갈색 캡을 푹 눌러쓴 채 비를 잔뜩 맞은 아저씨가 가게 안으로 들어 왔어. 

얼마나 밖에 오래 서있었는지 이미 옷인 흠뻑 젖어서 더 이상 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걸을 때마다 그사람 몸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어. 

그 시간에 그런 상태로 들어오는 사람이 정상이 아니란 건 나도 알았고 어머도 알았기에 서로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다가 어머니가 그 손님에게 무슨 일로 왔냐고 말을 걸었지. 

지금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는 별말 없이 서류부터 내밀더군.  

서류는 내가 받아서 확인했고 사냥용 엽총을 하나 사려고 왔다고 했어, 어머니가 관련 서류를 다시 훑어보는 동안 나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그 사람에게 설명해주려고 계산대 밖으로 나갔어. 

내가 나가자마자 그 남자가 내 몸을 낚아채고 한손으로 칼을 내 목에 들이민 순간 알게 됐지, 경찰 아저씨들이 말하는 사건의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걸.” 

소림은 그의 말을 토를 달지 않고 커다래진 눈과 쫑긋 세운귀로 그의 다음 한마디를 기다렸다. 


“그 사람은 내가 팔을 움직일 수 없게 자기의 오른팔로 나를 꽉 조였어.  숨이 막혔지만 나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 죽을 지도 모른 다는 공포에 울부짖으며 살려 달라고 어머니한테 미친듯이 소리쳤지. 그러자 그 남자가 어머니한테 소리치며 사냥용 소총 한 자루와 탄약을 바로 넘기라고 했어, 어머니는 혼비백산하며 그자가 원하는 물건들을 준비해줬지. 

총기함 위에 준비한 물건들을 올려놓고 그자가 요구하는 대로 어머니는 뒤로 물러나 계셨어. 

‘이제 저 총에 맞아서 죽거나 아니면 칼에 목이 들어와서 피를 철철 토하며 죽거나 둘중에 하나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가 나를 놓아주지 않고 버티길래 내가 뒤로 돌아서 빠져나오려는 순간 누군가 발로 협박범을 차서 둘다 바닥에 엎어 졌어.” 

퀭한 눈으로 이민형을 처다 보던 소림은 온데간데 없이 드라마의 다음 편을 기다리는 듯한 소림을 보며, 이민형은 자신의 오른팔 소매를 걷어냈다. 

“여기 팔에 흉터보이지? 그때 그 사람이랑 같이 엎어지는 바람에 칼이 빗나가긴 했지만 깊게 상처가 생겼어. 하지만 조금만 늦었으면 그 사람 손에 둘 다 죽었을지도 모르니 난 다행이라고 생각해.” 

민형의 오른쪽 팔꿈치는 장작에 도끼질을 한 것처럼 깊은 상처가 나있었다. 

흉터는 많이 아물어 보였지만 살들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사라지면서 얼핏 보면 화상을 당했다가 피부조직을 이식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림이 말없이 손을 내밀어 그의 상처부위를 어루만지자 이민형은 당황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운 좋게, 칼은 내 오른쪽 팔꿈치를 스쳤지만 피 엄청나게 나서 내가 쓰러 진지 1분도 안되서 내 몸을 흠뻑 적셨어. 어머니는 어떡하냐소리지르며 내가 괜찮은 지 확인하려고 나와 그 남자 근처로 다가왔고, 발차기를 날린 경찰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그 남자를 나한테서 떼어내고  수갑을 채우는 것까지 보고는 나는 기절했던 것 같아. 

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보니 어머니랑 아버지가 내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지, 내 오른팔은 붕대로 칭칭 감겨서 꼼짝할 수 없었고 다른 팔에는 수액을 맞느라 바늘이 뚫려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한 뒤에 내가 영안실에 온 게 아니라 병원에 와있다는 걸 알고 기뻐서 질질 눈물을 흘렸.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부모님은 나를 감싸 안고 기다려 주셨어, 그리고 내가 눈물을 멈추자 경찰들이 들어왔어. 

여러 경찰들이 들어왔지만 피가 묻은 아저씨는 딱 한 명이었어,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나를 살려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목이 떨어질 것처럼 고개를 수십 번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어. 

그분은 자기 때문에 내가 크게 다쳐서 정말 미안하다며 내 왼손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말했어,  

그분의 손바닥에 난 오돌토돌한 굳은살이 내 작은 손을 파고들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을 때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꼈어. 아마 내가 죽었다가 살아 돌아와서 그랬겠지만, 나도 누군가가 내가 손을 잡았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만들고 싶었어. 

그 따뜻함과 단단함을 다른 직업을 선택하면서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언젠가 나도 경찰이 되어서 똑같이 남을 도와주고 싶더라고 그래서 경찰이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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