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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Sep 02. 2021

하얀 밤 속_붉은 점

27번째


카페 테이블 위에 아이패드 미니를 비스듬히 세워 놓았다.

성운이와 나는 건질만한 정보가 있는지 뚫어져라 처다봤지만 보이는 건 우리가 내뱉는 날숨 때문에 김이 가득 서린 화면밖에 없었다.

김이 사라지고 나서는 시켜 놓은 음료에 입조차 대지않고 몇번이고 화면을 되감았다가 다시 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지쳐 떨어져 나갔고, 

화면을 돌려보는 성운이를 보며 라임 피지오나 쭉쭉 빨아댔다. 

음료가 자취를 감추고 얼음만 남자 뚜껑을 열어 얼음까지 먹으려고 하자 성운이가 나보고 작작 시끄럽게하라며 크게 소리쳤다. 

그의 신경질적인 소리 때문에 순간 카페는 조용해졌지만 성운이는 자기가 과민반응 했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는 듯이 말없이 영상을 따라 눈동자만 사방으로 움직였다. 

한겨울이 되기전 먹이를 찾는 뱀의 눈이 저럴까라는 생각을 하며 독기를 품은 친구의 눈을 보고 있다가

한순간 그놈의 눈의 반짝 빛난 것을 보고는 뭔가를 발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너 뭔가 찾았구나? 나도 같이 보자.”

“내가 말했지? 프로는 다르다고. 뭐 시간이 없어서 영상을 짧게 떠와서 찾느라 시간이 더 걸렸지만..”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성운이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물었다. 

“자, 여기를 봐. 너가 희정이를 태우기 1시간 전의 주차장의 모습이야.” 

다시 한번 영상을 보았지만 아까 보던 화면과 다를 게 없었다.


워낙 눈이 많이 내려 화면이 흐렸을 뿐만 아니라 차량의 종류정도만 구분될 뿐이지 자세한 모델이나 다른 디테일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영상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여기서 성운이가 무엇을 건졌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모르겠다는 눈치군.. 저기 오른쪽 끝에 보이는 차량보여?” 

“오른쪽 끝?” 

성운이의 말을 따라하고는 녀석의 손끝이 가리키는 차량을 보았다. 

희미하지만 차량은 세단으로 보였다.. 아니 세단인지 뭔지 정확히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세단은 맞는 것 같은데 무슨 종류인지 네 눈에는 이게 보여? 무슨 경찰들은 다 천리안인가?” 

“아니, 나도 안보여 그런데 이 차만 달라... 본넷 위를 자세히 봐봐” 

성운이는 비아냥거리는 나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시간을 돌리며 검지손가락으로 오른쪽 끝에 있는 차량의 본넷 위에 점을 찍었다. 


그제서야 왜 성운이가 자신 있게 말했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본넷에 눈이 하나도 쌓이지가 않았어.. 꽤나 오랫동안 세워 놨다면 다른 차량들처럼 눈이 쌓여서 앞이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맞아, 식별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우리가 처음에 발견하지 못했던 거야.” 

“그럼 차량은 내가 희정이를 태운 소나타인 것 같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범인은 이미 차량을 대기 시켜 놓고는 한참을 기다렸다는 말인가?

아니 그전에 누군가 타고 내렸던 흔적은?” 

“사실 너한테 말하기 한참전에 발견해서 그 부분도 몇 번 돌려봤는데 여기에는 그런 흔적은 없어. 

아무래도 차안에 있던 사람이 그대로 운전을 해서 주차장을 빠져나간 것 같아.” 

“차량 번호는 이정도 화면으로는 식별할 수 있나? 요즘 TV에서 보면 경찰들이 못하는 게 없어 보이더만..” 

“미안하지만 이정도 파일로는 FBI도 확인해줄 수 없을 거야. 눈 때문에 뭐가 보이질 않으니까.  

다만 우리는 조금이나마 새로운 가정을 해볼 수 있는 거지 만약 이 차량이 범행에 쓰인 차량이 맞다면 말이야.”

“무슨 가정?”

성운이는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더 이전의 시간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차량은 꽤나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거야. 

어제는 하루 종일 눈이 내렸으니 시동을 꺼두고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웠다면 30분만 지나도 차위로 눈이얼어붙을 정도로 쌓였을테니까. 

아무튼, 차량에 탑승한 운전자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린듯 해.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기 10분정도 이전에 차량이 빠져나갔으니 아마 너가 콜은 요청한 시점과 얼추 맞을거라 생각해." 


성운이의 말을 듣다가 나는 차량의 운전자가 범인이라면 다른 문제점이 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네 말대로, 운전자가 범인이라면 이건 단독으로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수준 아니야? 

어떻게 내 핸드폰을 가로채고 내가 전화를 걸거라는 걸 알고 거기서 기다렸다가 나와 희정이를 만나러 올 수가 있지?” 

성운이는 나의 말을 듣고 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맞장구를 쳐줬다. 

“맞아, 범인이 혼자라면 사실상 불가능하지. 하지만 둘이라면?” 

“둘?” 성운이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나는 순간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둘이라면 가능하지 네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그 날 누군가는 네가 희정이를 데리고 가면서 바래다 줄 것을 알고 있었어. 아니 바래다주게 만드려고 했을 거야. 그렇게 네 핸드폰으로 연락해서 자기는 용의자에서 제외되고 살며시 너를 그 자리에 대신 가져다 놓으려고 한 거지.

아니면 네가 여전히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공범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  


성운이가 나를 믿는다고 말했지만 동굴 밖에서 안으로 소리치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내 생각은 공포로부터 도망치려고 동굴 속 깊이 숨어 버렸고, 

또 다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의 몸도 같이 웅크려들었다. 

갑자기 덜덜 떠는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성운이는 급하게 내 뺨을 때리며 괜찮냐고 물었다. 

정신이 든 나는 괜찮다고 성운이에게 대답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 동굴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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