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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Sep 06. 2021

하얀 밤 속_붉은 점

28번째


꼬리에 꼬리를 물던 질문은 결국 두가지로 귀결되었다.  

첫째, 우리 중에 범인이 있다는 성운이의 가정이 맞다면 도대체 누가 우리 중에 희정이를 죽이려고 했는가?  

둘째,  범인이 두명 이상이라면 왜 희정이를 죽이려고 같이 계획했을까?


성운이에게 물어도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말없이 눈을 감고 공황에 빠지지 않도록 소란스러운 주변과 내 불안한 마음으로부터 멀어져 있으려고 했다.

성운이도 아무말 없이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던 찰나에 성운이의 핸드폰이 정적을 깼다.

성운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전화기를 넘어 급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는 정확히 듣을 수 없었다.

무슨 일 있느냐는 표정을 짓자 성운이는 말없이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돌렸다.


“선배님의 친구 박호준씨가 정희정씨의 집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좀 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이번에도 독살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나는 더 이상 통화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이란 걸 할 틈도 없이 약으로 꾸역꾸역 버티던 몸이 다른 죽임이 쏘아 올린 포탄에 맞아 산산조각 나버렸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구릿빛으로 바랜 익숙한 천장만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내도 성운이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열어 메세지를 확인해보니 아마 성운이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 주고는 자기는 일을 보러 간 것 같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신호음만 몇 번 울릴 뿐 아무 반응도 없었다.

아마 내가 퀭한 상태로 쓰러졌으니 죽이라도 사오려고 나가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했다.

‘조금 있다가 오면 와이프한테 엄청 깨지겠군, 오기 전에 빨리 다시 정신 차리고 희정이의 집으로 가야겠어.’ 라고 생각하며 세수를 하러 나가자 현관문이 띠리릭하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이프의 한 손에는 죽이 담긴 종이가방이 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새콤달콤해 보이는 귤이 비닐 봉지 속에 가득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말없이 아내를 안았다.

물론 그녀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먼저 손을 쓰기 위함이었지만,

지금 당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내뿐이었기에,

그녀의 가슴에 안겨 한쪽으로 기울어 버린 나의 마음을 기대고 싶었다.

내가 아내에게 무너질 듯이 기대자 그녀는 또다시 내가 쓰러질까봐 겁이 난 듯,

내가 앞으로 쓰러지지 않게 꽉 안아주었다.

물론 내가 한참동안 그녀의 등에 올렸던 양손을 내리자마자 예상대로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기 시작했다.


“인간아... 내가 쓸때 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잖아..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은 사람이 왜 그래 도대체...

너는 나 없이 살아도 나는 너 없으면 큰일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도대체 뭘 하다가 이렇게 돼서 성운이가 자기를 등에 없고 온거야?”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성운이가 호준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아내에게 호준이의 죽음까지 지금 당장 말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와이프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 부분을 쏙 빼놓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말했다.


호준이의 사망을 제외하고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자,

아내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훔치고는 나를 방안으로 끌고 들어가서 누워있으라고 말했다.

아내의 말에 순순히 복종하며 아무것도 안하는 척 누워있었지만,

한손으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그날 모였던 친구들.. 아니 이제는 사건의 관계자들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화창의 읽음 표시는 줄어들지 않았기에 다른 친구들 모두가 거기에 모여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조차도 나의 질문을 본 순간 하나 둘씩 그곳으로 모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해서든 아내를 설득해서 희정이의 집으로 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끔찍한 범죄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는 추악한 인간을 찾아 내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아내가 죽과 귤을 상위에 올려서 내가 있는 방으로 가져다가 주었다.

방금 데웠는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고 안에는 전복과 야채가 들어있어서 한 숟가락 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허겁지겁 죽을 비우고 귤을 까먹고 있는 나를 보며 아내가 다시 물었다.

“다시 나가려고 그러지?”

그 질문에 순간 목이 막힌 나는 캑캑 대며 반으로 쪼개진 귤을 뱉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고는 하지만 무슨 수로 내 생각을 읽은거냐고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당신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어, 그리고 나한테 숨기는 게 있다는 것도 알아.”

아내와 동거만 3년 그리고 결혼한지 3년이 되가다 보니 이제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물론 나는 아내만큼 상대방의 마음을 파악하지 못해서 여자 마음을 모른다고 혼나는 게 일수였지만.


“이번엔 혼자 가지마. 그리고 무슨 일 있는 지 나에게 말해줘 내가 같이 갈께. 그래야지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남편 혼자 밖에서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쓰러져서 들어오는 데 다시 한번 그냥 내보내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그렇다고 내가 지금 멈추라고 해도 말을 들을 만한 상황이 아닌 것도 나도 잘 알고 있어, 자기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면 자기가 위험하다는 것도..”

어려운 순간 마다 아내는 올바르고 의연한 결정을 내렸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현명한 판단으로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나는 사실을 말했다가 괜히 아내까지 위험에 빠드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기서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팔짱을 끼며 완고하게 노려보는 아내를 지나 빠져나갈 길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혼자 있는게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며 마음속으로 합리화를 시켰다.

나는 마지못해 호준이의 죽음을 알렸고,

아마 지금쯤 경찰들이며 친구들이 다 그곳에 모여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 안에 희정이를 죽인 범인이자 나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는 놈년이 분명히 그 자리에 나타날 것 같다고도 말했다.


아내는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깥은 이미 해가 떨어져 별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흑칠이 되어있었다.

말없이 서있는 아내의 뒤에서 양팔로 그녀를 감싸며 혼자서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아니, 혼자서 가지마. 만약 희정이를 죽인 범인이 호준씨를 죽인 거라면 자기도 위험해질 거야. 나도 더 이상 여기서 뒷걸음 친 상태로 자기가 위험해지는 꼴은 볼 수 없어.

다 먹었고 기운 좀 차렸으면 짐 챙겨, 바로 나가자.”

내 생각과 다르게 아내는 전쟁에 나갈 준비를 하라는 것처럼 말했다.

그렇게 나도 아내의 명령에 따라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에 나아갈 채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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