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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Sep 09. 2021

하얀 밤 속_붉은 점

29번째


인스타 핫플레이스라도 된 것처럼 성인 세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복도에는 사람들이 끝없이 늘어만갔다. 

자신의 집 근처에서 평생에 한번 보기 힘든 범죄가 일어난 것을 구경하려고하는 중고등학생과, 

그걸 막으려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래 위층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수많은 일반인들까지.. 

정희정의 집은 죽음이 깃든 집이 아니라 유명인의 생가처럼 붐볐다. 

문 밖에 배치된 경찰들은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려고 하는 시민들을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소림은 먼 발치서 정희정의 집 바깥에 늘어난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첫 사건이 어쩌면 언론에 대서특필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이민형 형사와 자신이 이 사건을 해결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이민주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두 형사는 이민주를 조심스럽게 차에 태우고는 가까운 서로 향했다. 

소림 형사는 이민형의 옆에 앉지 않고 벌벌 떨고 있는 이민주의 옆에 앉았다.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 가장 공포에 가득 차 있을 사람은 이민주일테니, 

그녀의 상태도 살피고 유의미한 단서도 찾으려는 소림의 첫 수사 전략이었다. 


소림이 앉아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거리며 위로를 해주었지만 그녀는 쉽사리 충격에서 벗어 나오지 못한 듯 고개만 땅바닥에 고개를 떨구고는 아무도 처다 보지 않았다. 

이민형은 이렇게 이민주를 놔뒀다간 이 사건이 언론에 의해 튀겨져 바삭바삭해진 자신들을 일반인들이 씹어 먹을 것을 알기에 혐의를 부정하고 있는 그녀에게 더 이상 시간을 줄 수가 없었다. 


“이민주씨, 이제는 조금 진정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씨가 말한 것처럼 저희도 민주씨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범인이었다면 그 자리에 남아서 칼을 들고 저희를 기다리셨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정황상 민주씨가 왜 그곳에 있었는지, 그리고 언제 저기 놓여 있던 박호준씨의 시체를 발견했는지를 민주씨에게 듣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민주씨에게 혐의를 덮어 씌운 나쁜 인간을 찾아서 박호준씨를 죽인 대가를 치루게 할 수 있으니까요.”


소림 형사는 그녀가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뒷자석에 놓인 작은 생수통의 뚜겅을 열어서 그녀에게 건냈다. 

그녀의 친절이 먹혔던 건지 그제서야 이민주는 고개를 들고 물을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이민형은 앞을 보며 운전하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거을 통해 이민주가 입을 열 것인지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그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가 불리하다고 생각하여 진술을 거부한다면 그에게는 단서를 찾기 정말 어려운 사건이 두건이나 생기는 것이기에 이민형도 초초한듯 운전대에서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겁에 질려 파랗게 질렸지만 이민주도 결심을 한 듯 그녀의 입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사하실 때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희정이와 같이 지낸 지 조금 됐습니다. 

희정이가 얼마전부터 혼자 지내는 것이 너무나도 무섭다며 저에게 같이 지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워낙 친하게 지내서 서로의 생활 습관에 대해서 알 정도였고, 혼자 자취하고 있던 저에게 월세도 안내도 되고 자신은 일이 바빠서 서로 신경 쓸 것이 없다는 희정이의 제안은 저한테 충분히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렇게 희정이랑 같이 지내고 있던 찰나에 희정이가 죽었고, 그리고 호준이도 그 집에서 죽어버렸네요... 

모든 게 마치 제가 꾸민 것처럼 흘러갔기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서 아까는 칼을 들고 버텼어요.. 

미안해요 형사님..” 


이민주는 말을 마치더니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로부터 이야기를 계속해서 꺼내기 위해서는 후속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소림은 이번엔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가 조사를 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이민주씨를 의심할 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내용은 저희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고, 어쩌면 이민주씨가 이 두사건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민주씨가 더 도움을 주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데 어떻게 그 시간에 박호준씨가 정희정씨 집에서 그리고 그걸 이민주씨가 발견했는지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소림 형사의 말이 끝나자 이민형 형사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운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소림의 드리블이 나쁘지 않았고 자신보다는 같은 성별의 여성이 조곤조곤 천천히 그녀의 마음을 파고드는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거리의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차안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신호등의 등불이 파란 불로 바뀌어 이민형 형사가 서서히 엑셀을 밟아 나아가자, 

이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민주도 다시 굳게 닫혔던 입의 물꼬를 텄다. 


“아마 경비실의 CCTV를 확인하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오늘 아침 일찍 희정이집에서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희정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저도 그 집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곳 저곳 돌아다녔습니다. 

볼일을 다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호준이가 축 처진 상태로 의자 위에 앉아 있었고 상체는 테이블 위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낮선 남자가 술에 골아 떨어져 있어 문을 바로 닫고 도망가려는 찰나에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라 다가가서 제가 아는 사람이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머리를 박고 푹 숙인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 호준이더군요. 

몇 번이나 호준이를 깨우려고 그 커다란 등치를 흔들어 보기도하고 뺨을 때려 보기도 했지만 일어나지 않았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상태를 확인하고자 의자를 뒤로 질질 끌었어요. 

그러자 호준이의 상체가 툭 하고 앞으로 꼬구라졌습니다. 저는 너무 놀란 나머지 급한대로 호준이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고 의자에 겨우 걸쳐 놓았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진정된 건지 이민주는 자신이 겪은 상황에 대해서 빠짐없이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이민형 형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그 뒤의 상황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면 왜 경찰에는 바로 신고하지 않으셨죠?” 

이민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길게 내쉰 한숨이 이민형의 입속까지 들어갈 정도였다. 

“당시에 저는 혼비백산해서 살인자가 집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집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던 찰나에 전화가 울리더군요. 전화 번호는 제가 모르는 번호인데다가 그 전화를 받는 순간 숨어 있던 범인이 저를 공격할 까봐 겁이 났어요. 그래서 살기 위해 테이블 옆에 놓여 진 칼 꽂이에서 식칼이라도 꺼내 들고 그나마 저를 뒤에서 덮치지 못하는 베란다로 도망간거에요.” 


소림 형사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바보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에 널린 게 CCTV고 그녀의 말이 맞는지는 오늘 출입문 쪽과 엘리베이터의 CCTV 시간만 확인해도 알리바이는 완전하게 증명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소림 형사가 생각하기에도 그녀의 진술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박호준씨를 처음 발견했을 때, 단순히 쓰러져 있는 상태였나요? 눈으로 보이는 상처나 주변의 다른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이민주는 아까 소림이 건내 준 생수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목에 털고는 말을 이어갔다. 

“저도 정말 정신이 없어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호준이의 얼굴이나 몸에 피가 묻어 있지는 않았어요. 만약 그랬더라면 저도 무서워서 근처에 가서 호준이를 깨우기는커녕, 뒤돌아서 도망 갔을꺼에요.
차라리 그럴껄..”

이민주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가지 못해 자신이 의심을 받는 상황이 못내 아쉬운 것처럼 말했다.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이민형 형사는 눈치챘다. 

아마 경찰서에 가고 나서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 조차도 다시 번복하거나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소림 형사가 그녀를 꾀어 냈을 때부터 몰래 한손으로 핸드폰을 켜서 녹음을 하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경찰서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교차로에서 불이 멈췄기에 이민형은 그녀의 말꼬리를 잡으며 그가 꼭 알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혹시 다른 특이한 점은 정말로 보지 못했습니까? 정희정씨가 평소에 말했던 모르는 사람의 침입의 흔적이라던가...” 

이민주는 다시금 살아났던 그녀의 생기와 감정을 지우며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휘저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힘드시겠지만 서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도록 하죠.” 


이민형은 조금씩 두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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