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1 계속
아내에게는 따뜻한 꿀물과 차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잔뜩 긴장한 상태로 손님을 맞이했다.
자신을 이민형 형사라고 소개한 남성은 나와 눈높이가 비슷했지만 키는 조금 더 작아 180정도 되보였다.
밑으로 깔리는 굵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체격은 날렵했다.
그 옆으로는 뒤로 머리를 질끈 묶은 다른 여성 경찰관이 함깨했다.
형사들은 자리에 앉으란 말도 하기전에 먼저 소파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들에게는 반복되 지겨운 일상인 것처럼 보였기에 나는 그들을 따라 왼쪽 한켠에 비어있는 소파에 앉았다.
"아침부터 불쑥 이렇게 들어와 죄송합니다만 이미 저희가 찾아오실 것을 알고 계셨죠?
아시다시피 저희가 김현진씨를 찾아온 이유는 정희정씨의 죽음 때문입니다."
여전히 나는 희정이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형사들이 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선수를 치며 형사들에게 물었다.
"희정이는 대체 왜 죽은건가요?"
"아직 조사중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어제 김현진씨를 포함해서 여러 분들께서 희정씨와 함께
늦은 시간까지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사에 협조를 요청하고자 김현진씨를 찾아왔습니다." 항상 받는 질문에 넌더리가 난 듯, 딱딱한 말투로 형사는 대답했다.
"네, 그러면 제가 가장 먼저 형사님들과 이야기하는 사람이겠군요.."
여성 경찰관은 넌지시 이민형 형사를 처다 보았고,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던 그의 또렸했던 눈이 흐려졌다.
"네 맞습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정희정씨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사람은 김현진씨니까요."
그들의 말이 맞다.
나는 너무 취해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희정이가 걱정되어 택시를 태워 보냈다.
“희정이가 너무 취해 있어서 택시를 불러서 태워 보냈습니다. 카카오로 불렀으니까 택시 기사님이랑 번호판 정보도 나올 거에요 잠시만요.”
여전히 어제의 숙취 때문에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바닥의 나의 뺨을 후려쳐 머리속이 어질어질했지만,
나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 구석에 놓인 침대 옆 나무 테이블을 보니, 핸드폰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핸드폰을 들고서 방에서 나가니, 아내는 떨리는 손으로 뜨거운 물을 조사관들의 찻잔에 붓고 있었다.
하얀 찻잔위로 새빨간 홍차가 넘실대자 조사관들은 진정하시라며 손바닥을 내밀며 아내를 말렸다.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핸드폰을 바로 넘겨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핸드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이니까요.” 나는 애써 웃으며 그들에게 농담을 건냈지만 이민형 형사 대신 머리를 묶은 여자 경찰관이 답했다.
“네, 그 부분은 저희가 선생님 연락처만 받아서 따로 조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정보만 저희쪽으로 전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 그것보다 저희가 김현진씨를 찾아온 이유는 그게 아니라서요.”
그러면 아침부터 무슨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입만 우물거리고 있자 그녀는 자신을 소개할 시점을 놓지치 않고 말했다.
"아, 소개가 늦었네요. 소림 형사입니다."
“그러면 소림 형사님, 저를 가장 먼저 찾아오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어제 희정이를 택시에 태워 보낸 것이 전부입니다. 희정이가 혹시라도 자살을 했거나 아니면 타살을 당했다고 해도 저하고는 정말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민형 형사는 짐작했다는 듯이 오른쪽 눈썹을 중지로 밀어내며 뻔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저희가 가장 먼저 선생님을 찾아온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살면서 일반인들이 이러한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일이 거의 없어 얼마나 당혹스러우실지 그리고 슬프신지도 알지만 아예 발생하지 않는 일은 아니다 보니....... 어려우시겠지만 양해바랍니다.
저희가 선생님을 먼저 찾아 온 이유는 수사의 편의상 가장 마지막까지 희정씨와 있었던 분과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에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임에 참석하셨던 다른 분들과도 지금과 같은 절차를 밟아 수사에 도움이 되도록 요청할 것이니 몇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의 위로는 전혀 따뜻하지 않았기에 나는 찻잔에 담긴 꿀물을 한모금 삼켜 조그마한 따스함을 느꼈다.
이내 그의 물음에 대답하려했지만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아내의 모습을 눈치채고는 잠깐 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형사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두번 끄덕였고,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 안방으로 향한 뒤 문고리가 철컥 소리가 날때까지 문을 꽉 닫았다.
“아무 걱정하지마. 나랑은 정말 상관없는 일이고 나는 어제 희정이 택시 태워 보낸 게 전부야.
옆에서 자기가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있으면 경찰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꺼야, 그러니까 내가 저 인간들이랑 이야기하는 동안에 방안에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러자 아내는 또르르 눈물을 흘리며 방을 넘을듯 말듯한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나도 자기를 믿지만 이렇게까지 찾아오는 건 아무리 봐도 자살이 아닌 것 같아.
그러면 자기 친구들 중에 범인이 있다고 경찰이 생각하는거 아니야? 그리고 자기를 가장 처음 찾아온 이유도 난 이해가 안돼."
그 말을 듣자 술에 절여진 뇌가 지끈 하며 전두엽이 땡기는 것처럼 느꼈다.
실제로 전두엽이 땡기는 게 맞는지 알 수 조차 없었지만, 아내의 의견에 반박할 여지가 없다.
자살이라면 그걸 규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만약 자살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면, 어제 만난 모임 참석자들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부터 조사하는 것이 그럴싸한 순서니까..
“그래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정말 희정이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그러니까 믿어줘. 더 오래 있다간 오히려 더 의심을 살 테니까 지금 나가볼께”
나는 황급히 말을 끝마치고는 안방에서 나와 경찰들이 자리한 곳으로 죽음을 앞두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나아갔다.
--매주 화/토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