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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Dec 15. 2021

하얀 밤 속_붉은 점

32번째


소림은 이민형의 질문을 예상했었는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녹차는 이 동네 안에서 발견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CCTV를 돌려보니 박호준이 입고 있던 패딩이 불록한 것을 보니 밖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결제내역은 혹시 확인해봤나?” 

소림은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 튀어나오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 확인해 보겠다고 말하고는 현장을 벗어났다.

그사이 이민형은 다시 한번 계약서의 내용을 하나씩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첫째,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조건이지만 그걸 굳이 집어넣는다는 것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두번째 조건인 ‘위험’이 닥쳤을 때 서로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텐데 왜 사생활 존중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지 조차도 짐작할 수 없었다. 

세번째 조항은 위험을 방지하고 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희정이 제안했고, 이민주는 아마 이를 승인했을 것이다. 

마지막 조항은 이 조항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민주만이 이 집에서 떠나도록 패널티를 주는 내용이었기에, 이 계약서는 오로지 정희정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조건이다. 집주인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왜?' 

머릿속 주름을 간지럽히는 하나의 의문은 계속해서 그를 간지럽혔다.


답은 이민주만이 알고 있을 것이지만, 

경찰서에 들어가자마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녀를 설득해서 답을 얻기는 어려워 보였다. 

소림형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이민형은 이민주가 지내는 방으로 들어가 먼지가 쌓여 있는 작은 서랍을 열었다.

서랍안에는 각종 고지서들이 들어와 있었고 각종 관리비 그리고 이민주가 사용한 카드값까지 적혀 있었다. 

카드비용은 달에 80만원 남짓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내역서는 평범한 도시여성이 살 만한 것들만 주르륵 나열 되있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4월달에 백화점 명품관에서 구매한 150만원짜리 내역이었다. 

특별한 빚이 따로 없다면 서울에서 지내는 커리어 우먼이 자신의 소비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 금액이었고, 고지서 몇몇 곳에는 자신의 소비패턴을 분석한 듯한 이민주의 자필로 보이는 흔적들이 있었다. 

정황을 고려했을 때, 이민형은 아무래도 돈에 쫓겨 이민주가 정희정의 집으로 들어오기로 결심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때 마침 소림이 다시 돌아와 이민형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현금으로 결제한 것이 아니라면 본인이 결제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선배님.” 

“왜?”

“사망 당시 박호준의 핸드폰과 지갑은 그의 뒷주머니 속에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핸드폰에서 다른 기록이 있을지 해서 핸드폰을 살펴봤더니, 특별한 단서는 없었고 

카드 결제 시 자신의 핸드폰에 문자가 오는 서비스를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사망 시간 이전에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이걸 결제했다고 할 만한 내역이 없었습니다. 

카드에 조사해달라고 협조요청은 할 수 있겠지만요.” 


이민형은 책상을 뒤지다가 으갸갸 소리를 내며 일어나서 허리를 쭉 폈다. 

“어쩌면 본인이 거래내역을 지웠을 지도 모르지... 기록이 남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었을 지도 몰라.. 

아니면 누군가가 준걸 아무 생각없이 받아먹고 자리에서 사망했을지도 모르겠네. 

일단은 카드사에 확인 요청해보도록해.” 

“어쩌면 저희는 독을 자유자제로 다루는 독사 한 마리와 끝없이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소림이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일그러뜨리자 그녀의 미간 사이에는 활화산이 생겼다. 

“낙담하고 있을 시간 없어.

네 말 대로 그 사이에 또 누군가가 물릴지도 몰라. 

아, 사망추정시간이랑 이민주가 이집에 돌아온 시간이랑 일치하는 지 확인해봤어?"


“네,  추정시간은 약 12시경이고, 이민주가 집에 돌아온 시간도 거의 일치합니다. 고로 이민주는 여전히 유력한 용의자가 될 수 있지만.. 이민주가 말하는대로 박호준이 녹차를 마시지 않고 이민주의에 살해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민주가 범인이었다면 박호준도 살기위해 발버둥치며 방어흔이 남아야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그녀를 용의자보다는 목격자로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맞아, 우리가 처음 발견했을 때도 자리에 앉아서 그걸 마시고는 그대로 죽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말도 일리가 있지.. 이민주가 박호준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않았다면 말이지.....” 


소림은 이민형의 의견은 말이 안된다며 따지고 들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선배님이 보시기에도 180이넘는 거구가 160이될까 말까한 여자의 말을 들을 이유가 있을까요? 그것도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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