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진 Dec 22. 2021

하얀 밤 속_붉은 점

33번째


멍하니 총재가 떠나간 곳을 바라보다가 누군가가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멀찌감치 태휘와 재영이가 어물쩍거리며 나의 눈치를 보며 서있었다. 

“성운이는 어디 갔어?” 친구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쳤다. 

늦음 밤 성운이를 찾는 내 음성이 온 동네로 퍼지자, 그나마 멀쩡한 재영이가 다가와 성운이의 행성 알려주었다. 

“민주를 봐야겠다며 경찰서로 간다고 하고는 사라졌어.” 

“나도 거기 가야겠어, 넌 가서 태휘 챙겨서 집으로 보내 알았지?” 

재영이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태휘에게 향했다. 

나도 정신을 번쩍 차리고 민주와 성운이가 있을 만한 경찰서를 핸드폰으로 뒤적이다 찾아냈다. 

그리고 택시를 잡기 위해 택시 앱을 킨 순간, 어제 택시를 불렀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냈기에 왼쪽은 허전해야 했지만 여전히 묵직했다. 

왼쪽주머니 손을 넣어보니 차갑고 딱딱한 휴대폰이 한 손에 잡혔다. 

꺼내서 비교해보니 둘다 같은 기종에 휴대폰 케이스도 없어 외관상으로는 바로 구별할 수 없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열어봤지만, 왼쪽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은 어제 내가 택시를 불렀던 내역이 없었다. 


택시를 불렀던 내역이 있던 핸드폰으로 나는 황급히 지난밤 우리를 태웠을지도 모르는 택시 기사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애간장이 끓어오르도록 전화의 신호음은 길어져 갔지만 수신음이 멈출 때까지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전화를 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기사가 응답하기만을.. 답을 주기를 기다렸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50대에서 60대정도 남성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나는 침착하게 지난 밤 택시를 불렀었는데 기억나시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참동안이나 수화기너머에서는 응답이 없다가, 태웠던 손님을 내려줬는지 다시 택시기사 아저씨는 전화를 받았다. 

“어제요? 혹시 어제 불러 놓고 그냥 쌩까신 그 손님아닙니까? 어제 그 시간에 눈이 엄청 쏟아져서 승차하는 곳까지 겨우겨우 갔는데 계시질 않던데요. 대체 왜 또 전화하셨습니까?”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그저 기사님께 죄송하다며 사과를 할 수 밖에. 

어제 택시를 예약했는데 술이 너무 취해서 다른 택시와 착각하여 그 택시를 타고만 것 같다고 말했다. 

“허 참,, 젊은 사람이 그라믄 안됩니다. 아무튼 담부턴 조심하시오.” 

그렇게 아무런 소득 없이 통화가 끝났고, 나는 양쪽 주머니에 가장 유력한 증거인 핸드폰이 두개를 아무도 볼 수 없게 깊숙이 집어넣었다. 


나는 머리가 복잡했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범인은 완전하게 나를 농락하고 있었다. 

모두가 이 싸움에서 정신이 없을 때 몰래 집어넣은 건지, 아니면 내가 잠깐이라도 한눈을 파는 사이에 집어넣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민주가 범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의 추측을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핸드폰을 돌려받았단 사실을 알게 되면 모두들 나의 말을 믿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나를 의심하면서 나를 범인으로 몰아갈 것이 분명했다. 

설령 성운이라도 지금 핸드폰을 돌려받았다고 말하면 더 이상 나를 믿고 같이 범인의 행방을 찾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범인은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 핸드폰을 돌려줬을까? 

자신감의 표현? 복수? 아니면 나를 다시 한번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나의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돌았다. 

다행히 뒤에는 왜 한참동안 돌아오지도 연락도 하지 않냐며 화를 내고 있는 아내가 서있었다. 

나는 억겁의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꼈지만 지난 30분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아내에게 말하고는 그녀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말했다. 

“정말 괜찮아?”  

아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현재 나의 상황을 이해하는 척, 걱정된 목소리로 나의 상태를 물었다. 

“응. 괜찮아 먼저 들어가. 나는 친구들 있는 경찰서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자기를 계속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위험할 거 같으니까 먼저 돌아가.” 

나의 완고한 부탁에 그녀는 포기한듯 발걸음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익숙함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