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ly , forever
보통 함께이면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연애나, 사랑이나, 우정이나 서로 익숙해지면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한번도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영원히 혼자일 것처럼 스스로 혼자인 것에 길들여진 것이다.
돌아가신 엄마는 나의 그 속내를 다 아는 것처럼
나의 외로움을 다 들여다보는 것처럼
나에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엄마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혼자다.
내가 느껴왔던 혼자란 것은 자유다.
우선 백번은 있고도 남았을 세월의 나이지만
남편이 없고
첫사랑에 성공했으면 내가 낳았을 아이는 장정이 둘은 될 것이다.
시댁도 없고 친정도 없고
이젠 엄마도 없고
혼자다.
지갑과 통장에 돈만 들어있다면
어디든 훌쩍 떠날 수도 있고(돈없고 귀찮아 가진 않는다)
혼자서 카라멜 팝콘을 씹으며 영화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혼자서 밥을 먹다가 아가씨가 이런 국밥집을 혼자 오네?란 말도 들어보았다.
혼자서 찜질방을 가 계란과 감식초를 즐기며 찜질을 즐기기도 한다.
혼자서 깨지 못한 퀘스트는 고깃집에 가는 것 정도다.
이상하게도 2인이상 시키고 고기를 굽는 나는 상상이 안 가서 가지 못했다.
못 할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가고 싶지 않았다는 쪽에 가까웠다.
혼자임을 고깃집까지가서 증명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구워주는데로 가면 그만이긴 하다.
이 정도로 혼자에 길들여지니
우정이나 사랑이나 연애에도 저절로 벗어났다.
우정은 최소의 인원만 남았고,
연애는 그것이 뭐였더라.. 사랑보단 오래된 이별의 외로움만이 내 곁에 남아 맴돈다.
이렇듯 무한한 자유의 댓가는 무한한 외로움이다.
혼자 거리를 거닐다 다들 짝지어 손을 잡고 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빈 손을 주머니 속에서 꽉 쥔다.
좋은 영화, 좋은 음악, 좋은 드라마를 봐도 그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단 순간
브런치를 켜 글을 쓴다.
언제든 자유롭지만 또 언제든 불현듯 외로운 것이다.
혼자가 낯설었을 때는 소개팅이나 모임을 찾아 그것을 극복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나가볼 수록 더욱 혼자에 길들여진 스스로를 그리워하게만 됐다.
나는 사람에게 받는 마음의 상처와 말의 무게에 예민하고 약했다.
겉은 다 큰 어른이지만 마음은 혼자가 아니면 불편해하는,
혼자 두지 않으면 울어버릴 수도 있는 내성적인 소녀 그자체였다.
그래서 이제 나는 외로움을 피하지 않는다.
그 정도 외로움은 다들 스스로 극복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
혼자와 더욱 잘 지내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방법은 아주 어렵고도 쉽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다.
스스로를 되도록 잘 먹이고, 입히고 , 씻긴다.
단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장점을 사랑한다.
가만 들여다보며 상처 받은 내면을 잘 꿰메려 노력한다.
이렇게 조용히 혼자 잘 살아가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귀찮은 관계들을 모두 요리조리 피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은 외로움에 사무친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조금 울다 일찍 잠을 청한다.
사람은 역시 언제나 외롭고
나는 혼자라 더 자주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그렇게 눈 감은 새로 암흑이 들어오면 이 외로움이 자고 일어나면 끝나길 바란다.
이제는 안다.
외로움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길들여져 품고가는 순간의 감정이라는 것을.
혼자는 자유이자,
외로움의 증거라는 것을.
혼자는 영원한 외로움의 형벌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가장 솔직하게 설명하는 문장일 것이다.
그 영원함마저 도망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본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