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g 차이

다이어트는 슬퍼요

by 도씨



마음의 병이 생긴 이후로 내내 십여년간 약을 먹었다.

약은 내 친구이자 절친이자 반려자다. 누구보다 항상 내 뱃속 가까이 있으므로.

정확한 병명은 쉽사리 브런치에서도 입이 떼지지 않아 상상에 맡기려 한다.


마음과 정신의 약은 이상하게도 살이 야금야금 점점 쪘다.

빠져도 모자랄 판에 쪄버리니 나는 내 원래 몸을 잃는 상실감도 배워야 했다.

제 정신으로 사는 댓가로 네 몸을 내놓아라 라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있는 것만 같았다.


원래는 요즘 유행한다는 '뼈말라'였다.

항상 너무 말랐다는 말과 함께 , 한편으론 또 부럽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 가지고 태어난 조건에 관해선 사람은 크게 관심이 없지 않은가?

나는 그냥 그렇게 갖고 태어난 몸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먹어도 먹어도 많이 찌지 않는 체질이 고맙고 ,

뼈대에 거죽만 덮힌 것 같은 몸도 사랑했다.


무언가를 입어야 할 때 거리낌 없을 수 있었다.

무언가를 먹을 때도 거리낌 없을 수 있었다.

10키로는 더 쪄도 부담감이 없었다.

마른 몸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돌이켜 보니 아주 배가 아프다 .

스스로가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니 우스운 일이지만...

그 때의 내가 너무나 부럽다.


아픈 이후,

몸에 약을 좀 넣어야 마음을 달래어 살게 된 이후 ,

처음에는 붓는 줄로만 알았던 몸이 몇년간에 걸쳐 30키로 이상 커졌다.


조카의 말에 따르면

이모는 '두꺼워지'고 만 것이다.


주어졌던 마른 몸으로 게으르게만 살았던 나는

다이어트라는 것의 필요성을 생전 처음 마주하게 되고 ,

몇 번의 성공과 몇 번의 실패 끝에

요요로 더 부은 몸만 갖게 되었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망가졌고

재미로나, 미학적으로도 망가졌다.

라고 느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원래의 내 몸은 사라지고 이상한 살덩이를 얹고 사는 느낌이었다.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덜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


하지만 '낮잠'글에서도 언급했듯이

(03화 낮잠)

나는 움직임보다는 게으름과 낮잠과 밤잠에 길들여진 몸과 정신이었다.


그렇게 끝이 안 날 다이어트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몇십키로를 뺐어요!라며 성공적으로 다이어트를 이겨나간 삶을 과연 살 수 있을런지 싶다.


하지만

이제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약을 먹은만큼 건강해진 정신을 더욱 가꾸기 위해

몸도 바꿀때가 왔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위고비에 마운자로에 PT까지 있지만


이미 나는 PT도 요요로 끝난 결말을 갖고 있는 대단한 몸이다.하하.


그래서 영원한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다.

꼭 1월 1일부터 시작한 건 아니지만

이젠 좀 침대와 조금 이별하고 두꺼워진 몸을 얇게 썰어나가보기로 한다.


사랑할 수 없는 몸의 나를 가지고 사느니

그래도 사랑할 수 있었던 과거의 몸을 되찾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져서다.


하지만 다만 슬픈 것은

다이어트는 너무 배고프고 힘들고 슬프다는 것이다.


인간의 3대 욕구 중에 하나인 식욕을 버텨내야하고 ,

도저히 적성에 안 맞는 움직임을 최대화 해야하고,

그런데도 크게 변화가 없는 몸을 슬퍼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몇 번을 겪어봤더니 더욱 하기가 싫어지는 이상한 반항.


어쩌면 나의 다이어트는

예전의 당연히 가졌던 마른 몸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와 화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약을 먹고 겨우 살아낸 몸을 몹시 미워하면서도 끌어안는 일부터 시작일 것 같다.


오늘도 배고프고 슬프지만

정신을 지켜낸 나의 살아 숨쉬는 몸으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올해엔 꼭 얇아지리. 더 이상 몸때문에 슬프지 않으리.




브런치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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