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게으름 찬가

by 도씨


나는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다.

마지막 회사를 퇴사한 이후로, 아르바이트 같은 일만 전전하며 최소한의 사회생활만 하자,

그 성향은 더 극단적이 되었다. 스스로의 성향에 갇히는 느낌이랄까..

거기다 더해 난 부지런하기보다는 몹시 느리고 게으르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바깥에 나가 하는 활동과 외출이 있거나, 사회생활을 오래 하는 날은

그야말로 진이 다 빠져 오래도록 쉬어야 한다.


배터리가 방전되는 것과 같다.

모든 사회적 에너지를 써서 정신을 바짝차린다.

가면을 쓰고, 목소리 관리에 온 힘을 쏟는다.

항상 긴장을 놓치지 않고 대화 맥락을 읽으면서 두리번거린다. 그래서 불안하다.

사자에게 쫓기는 사슴같은 마음인 것이다.

외향적임을 연기하고, 사회에 섞이려고 온 힘을 다해 꾸며낸다.

전속력으로 쫓기듯이 진이 빠지도록 마음을, 두뇌를 다 끌어다 쓴다.


남들에겐 간단하고 쉬운 일조차 그러다보니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나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에

쉽게 당황해서 토끼눈이 되는 날엔

집에 와선 바로 침대에 널부러지는 날이다.


특히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는 낮잠 시간을 꼭 비워둘 정도로 루틴이 되어버렸다.

한 잠 늘어지게 자고 나면 충전이 되어 진 빠졌던 마음과 몸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집과 내 방은 그런 의미에서 내 도피처이자 안식처이다.


하지만 나의 그런 휴식은 가족의 눈에도 잘 이해를 못할 정도로 길고 길다.

낮잠 한두시간 뿐 아니라,

주말이나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저녁먹고 이른 저녁에 잠들어 늦은 아침에 깨곤 한다.

내버려두면 식사도 거르고 잠에 빠지는 날도 있다.


침대밖으로 발 한자국도 내밀지 않고 반나절이고 한나절이고 보낼 때도 많다.

그래서인지 주로 나무늘보나 잠만보로 내 캐릭터를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라도 충전하지 않으면 나는 가면을 쓰고 돈을 벌 수가 없으니..


잠이나 게으름이 부족하면 저절로 예민해져 실수가 잦아지거나 짜증이 는다.

정말이지 안 그래보이면서 까다로운 성미이다.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고 적응이 안됐을 때엔 그런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스스로를 오래 지켜보는 나이가 되니, 익숙해져서 그런 나를 달래고 달래어 삶을 이끌어 나간다.


다른 사람에 비해 사회를 더 차갑고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인 것이다.


웃는 표정 하나에도 근력이 많이 필요하고

적당한 리액션이나 스몰톡 하나에도 계산이 필요하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말라버린 껍질인간 같다.


바스라진 자아를 눕히는 낮잠은 나에게는 현실로부터의 도망이자,

숨차게 달리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는 시간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얼굴을 잠시 벗어두는 의식이 된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일 같다.

그리고 유들유들해져 사회적인 가면을 꾸미는데에도 조금 수월해지는 일이다.


덕분에 나는 이제 나의 게으름도 단점이나 자기혐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래될 수록 오래 충전해야하는 물건들처럼

나는 금세 방전되는 기계처럼, 활동량이 작은 사람인 것이다.


이불밖이 위험해.란 말이 있다.

사회는 꼭 정글같아서 침대의 이불 밖은 거칠고 잔인하다.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 삶도 그렇다.

잘 씻고, 잘 먹고, 자더라도 적당히 자야 가족들이 편하다.

그래서 이불 밖에서 집안일을 후다닥 마치고, 잠이 든다.


나의 목표는 어느샌가 내 집 마련이다.

더욱 더 가열차게 게으르기 위해서 혼자 살 공간을 얻고 싶다.


지금의 수입으로는 택도 없지만 그래도 노인이 되기전에 혼자만의 작은 공간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치솟는 집값에 적은 현재의 벌이로는 택도 없을 꿈일 수 있지만,

나는 나의 게으름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사부작 거리며 글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안일을 한다.


오직 게으르기 위해서.


게으름이 생존의 목표가 된다니 우습지만, 나에게는 꽤 진지한 소원이다.

내 방 내 집에서 이불 밖으로 5분만 나가면 되는 삶..


너무나도 근사한 게으름이다.

근사한 꿈이다.


잠들면 꿈을 자주 꾸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

암흑을 닮은 낮잠과 밤잠 속에서 나를 회복하며

오늘도 겨우 숨을 뻐끔뻐끔 몰아쉬며 살아남는다.


그리고 내일도, 다시 방전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충전하기 위해 잠이 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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