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띵동— 저 왔어요!” 하지도 않는다.
대신 몰래 온다.
땅속에서 ‘톡’ 하고,
나무가지 끝에서 ‘슥’ 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연둣빛 점 하나로
존재를 알린다.
나는 그걸 매년 보면서도 매번 새삼스럽다.
“어? 너 언제 왔어?”
봄은 늘 그런 표정이다.
이미 와 놓고, 내가 알아차리기만 기다리는 얼굴.
겨울 동안 나는 꽤 진지했다.
계획도 세우고, 다짐도 하고, 괜히 인생을
통째로 반성도 했다.
그런데 봄은 말한다.
“그렇게까지 비장할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작은 새싹 하나를 슬쩍 보여준다.
저 가녀린 것이 얼어붙은 땅을 밀어내고 올라왔다는 사실이,
웬만한 자기계발서 한 권보다 묵직하다.
아, 그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소리도 크지 않아도 되는구나.
봄은 “다시 해도 돼” 하고 등을 툭 쳐주는 친구 같다.
넘어졌던 자리에서 먼지만 털고 일어나도
충분히 괜찮다고,
어제의 실패는 오늘의 흙이 되어
뭔가를 밀어 올릴 거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설렌다.
그래서 괜히 창문을 열어 보고,
괜히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가 보고,
괜히 나도 뭔가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은 잠시 멈춰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본다.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들린다.
“준비 다 안 됐어도 괜찮아.
일단, 고개부터 내밀어 봐.”
그 말에
내 마음도 슬며시,
연둣빛으로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