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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시야 서새이 Aug 20. 2023

팥빙수

 매년 원에서 풀장에서 물놀이를 했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물놀이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8월 첫째 주가 되어도 풀장 설치를 못했다. “올해도 물놀이 한 번도 못하고 지나가나?”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어 자발적으로 풀장 설치에 나셨다. 큰 풀장과 작은 풀장 두 개를 설치하고 아이들과 물놀이를 실컷 했다. 그때까지는 너무 좋았다. 단 하루하고 철거해야 했다. 왜냐하면 태풍이 온단다.‘태풍아 멈추어라.’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으로 철거했다. 그런데 태풍이 싱겁게 지나간 금요일 오후 또 풀장을 설치하게 되었다. 똥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설치에 해체까지 너무 일상이 바빴다. 설치하는 과정 중에 작은 풀장과 큰 풀장의 설치 기둥과 고정 대가 섞어서 설치하는 과정이 더욱 힘들었다. 설치 마무리를 남겨두고 차량 당번이라 차량 타러 갔다.   

  

 차량 타고 오면 동료 교사가 사 준 팥빙수를 먹는다. 날씨도 덥고 힘든 시간을 보낸 동료를 위해 사 준 것이다. 나는 차가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도 잘 먹지 않는 편이고 차가운 음료 한 잔이면 족한 사람이다. 집에서는 음료를 냉장고에 넣은 것을 꺼내 마시지도 않는 사람이므로 팥빙수에 대한 동경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동료가 사 주는 팥빙수의 맛은 어떨까? ‘팥과 함께 빙수를 한두 숟가락만 먹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어린이집으로 빨리 오고 싶었다.    

  

 차량 타고 원에 도착하여 내 담당 구역인 모래놀이 덮개를 덮었다. 나를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 원 안으로 들어가자 주임 교사가 나와 “선생님 미안해요.”라고 하신다. 조금 전에 우리 반 아이가 다툼이 있어 볼(얼굴)에 상처가 있어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통화를 한 상태이다. 다쳤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보육교사의 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아이가 다쳐서 피부과에 가야 하는 일이다. “한글이 다쳤어요?”라고 하자 “선생님 아니에요.”라고 하며 “내가 미쳤나 봐요. 팥빙수를 다 먹었어요. 선생님 것 하나도 안 남기고”“날씨가 덥고 밖에서 일하고 와서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 없이 그랬어요.”라고 하신다. 나는 “먹는데 뒤끝 있는 여자인데 왜 그랬어”라고 웃으며 말은 했지만 기분 좋지 않았다. 먹다 남은 수박을 제각각 잘라 몇 조각을 주었다. 그런데 옆에 가지런히 놓인 수박 몇 조각은 접시에 착착 담아 그것도 접시로 덮어져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더 화가 났다.‘종일반 선생님은 챙겨주고 나는 뭐야?’......      


 나는 음식에 대한 억울함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할머니가 셋째 딸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불공평하게 분배해 주셨다. 다른 형제들보다 아주 조금 주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일로 인하여 나에게 일을 시키고 끼니때가 되었는데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며 짜증을 낸다. 배가 고프면 남편도 자식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배 고픔을 달래야 된다. 보통의 아줌마라면 남편이나 자식을 먼저 챙기고 먹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동료 교사라서 먼저 사과하고 미안하다.라고 한 것이다.   

   

 모양이 제각각인 수박을 먹으며 생각했다. 팥빙수를 먹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사과하는 사람이 있어 감사하고 나를 알아주는 딱 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더 감사했다. 물론 나 역시 ‘내가 먹는 것에 억울함이 있는 사람이구나’를 돌아보며 위안을 줄 방법을 찾아봤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팥빙수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누가 나를 알아주고 챙겨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어렵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감사하겠지만 몰라준다면 내가 나를 알아주면 되지 않을까? 

         팥빙수 대신 아이스크림이라도 나를 위한 선물로 말이다.



#동료 교사 # 직장 #어린이집 #보육교사 #음식 #억울함 #풀장 #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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