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쓰 Jun 17. 2024

#11. 제주, 처음인 것처럼 낯설다, 너!

2022년 8월 24일의 끄적임

올해 여름휴가를 어디로 다녀올까, 남편과 고민하다가, 아기가 24개월 미만이면 비행기가 공짜라는 혜택을 한 번은 누려보자 하고, 휴가지를 호기롭게 제주도로 정했다. 


코로나로 인해 제주도 숙박이나 렌터카나 모든 것이 예약하기 힘들다는 말들을 많이 들은지라, 일찌감치 예약해두고 넋 놓고 있었더니, 제주도로 출발해야 되는 날이 다가와 있었다. 


"오빠" 

"지원아" 


트렁크에 넣어둔 모든 짐을 하나하나씩 빼는 아가를 통제해가랴, 무얼 싸야 할지 허둥대는 남편의 행동거지를 하나하나 코칭해가랴, 혹여나 늦을까 다가오는 비행시간을 계속 체크해가랴, 정신없던 짐 싸기가 끝나고 드디어 공항으로 출발! 


24개월 미만 꼬맹이의 힘은 대단하다, 익숙한 공간도 낯설게 느껴지게 한다. 

꼬맹이가 없었다면, 공항에 유아휴게실이 있었는지도, 유아놀이터가 있었는지도, 임산부나 24개월 미만 아기들이 통과할 수 있는 별도 라인이 있는지도, 비행기 탑승 시 우선탑승권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막상 비행기를 타니 우리 셋 모두 약속한 듯 골아떨어졌고, 무사히 제주도 도착! 


둘이었던 여행의 풍경은 셋이 되면서 많이 바뀌었다. 

숙소도 침대방보다는 아기가 마음껏 누빌 수 있는 온돌방을 택하게 되었고,

여행지도 자연을 벗 삼는 곳보다는 아기와 유모차의 이동이 자유로운 테마파크를 택하게 되었고, 

밥집도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보다는 아기와 함께 가도 조금은 소란스러워도 괜찮을만한 집들을 택하게 되었으며, 

빡빡하게 짜인 일정보다는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일정을 준비하게 되었다.


제주도에 있는지도 몰랐던 뽀로로 테마파크에서 신나게 놀다가, 아기와 함께, 푸드코트에서 대학교 학생식당 보다도 못한 돈가스와 제육덮밥을 허기져 맛있게 먹고 있는 우리 둘을 인식하니 웃음이 나왔다. 

제주도까지 와서 서울에서도 흔하디 흔한 돈가스를 먹을 줄이야- 


하지만 왠지 싫지 않았다. 

유치한 뽀로로 음악에 열심히 박수를 치는 아기를 바라볼 때,  

유모차에서 곤히 낮잠을 자고 있는 아기를 보며, 그나마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실 때, 

아기에게 처음으로 바다를 보여주고 모래사장을 밟게 해 줄 때,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소와 말을 호들갑 떨며 아기에게 설명해줄 때,

5번 이상 방문했던, 익숙하다고 여겨졌던 제주의 풍경이 또 한 번 낯설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해안도로를 맘껏 달리지 못해도, 블로그에서만 봤던 카페를 방문하지 못해도, 

비눗방울을 열심히 쫓아다니는 아기만 보아도, 웃음이 났다.  


아가씨 때, 유모차가 있는데도 아기를 안고 다니는 부모들을 보며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유모차를 안 탄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 무거워도 안아줄 수밖에!)

사람 많은 곳에 굳이 아이를 왜 데려올까, 집이 더 편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만 놀아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생각보다 시간이 안 간다!)  


아기가 생기니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해되어 간다. 

육아는 힘들지만 찰나의 행복함과 기쁨이 그것을 잊게 해 준다. 


힘들었지만, 내 맘 같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하지는 못했지만, 행복했던 제주여행이었다.


"지원아 우리 어디 놀러 왔지?"

"제주도!"

라고 대답하는 아기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사르르 녹는다. 


이렇게 우리는 둘에서 셋이 되어간다.

엄마, 아빠가 되어간다. 




이전 09화 #10. 아빠, 그곳은 어떤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