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쓰 Aug 26. 2024

#20. 이 죽일놈의 영어

영문과를 졸업하신 우리 아빠는 영어를 참 잘하셨다. 무역회사에 재직하시면서 출장도 많이 다니셔서 영어에 대한 감각도 유지하실 수 있었다. 아빠가 영어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이상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피아노를 전공한 작은 고모는 일찍이 시애틀로 유학 가셔서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셨다. 가끔 한국으로 놀러오는 사촌동생들의 입에서 쫑알쫑알 영어가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학창시절,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영어 과목이 정규 수업에 포함되었다. 중학생 눈에 비친 영어 선생님은 정말 세련 그 자체였다. 하얀 피부에 자연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선생님의 이국적인 외모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환경 때문인지, 언어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때문인지, 나에게는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구가 항상 있었다. 외우고 읽고 쓰는데 집중되어 있는 그 당시 교육방침에 따라 영어 단어, 문장을 열심히 외우고 알 수 없는 두문자를 활용해 문법, 문법 예외 등을 열심히 외웠다. 그러다가 외고를 가보겠다는 목표 하에, 열심히 영어공부에 매진했고 “동시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얼핏 했다.


보기 좋게 외고를 떨어지고, 고등학교때 이과로 전향하면서 영어공부는 오직 수능영어만을 목표로 했다. 그럼에도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수시로 대학을 합격하고, 대학입학 전 시간이 남았을 때 내가 가장 처음 한 일은 영어 회화학원을 알아본 일이었다. 서울의 요지인 종로, 강남 등에 소재한 영어학원을 오가며, 비싼 수강료를 지불하고, 영어회화수업을 들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변리사 시험에 합격 후 첫 회사에 출근하기 전에도 영어 회화학원을 가장 먼저 알아봤다. Level Test를 보고 원어민과 대화하며 조금이라도 더 영어 실력이 향상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영어 드라마를 보며 받아쓰기도 해보기도 하고, CNN과 EBS English를 들으면서 잠을 청해보기도 했다.


이정도의 간절함과 이정도의 노력이면 잘할 법도 한데 도무지 영어 앞에 당당하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LEVEL 10 기준 대비 LEVEL 6 정도라고 스스로 점수를 매겨보니, 노력과 마음 대비 참담한 성적 앞에, 영어라는 녀석에게 점점 묘한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혼자 토라져버렸다.


핑계없는 무덤이 있던가! 결국, 직장생활에 찌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공식적으로 영어와 결별을 선언했다. 가끔 영어 문서를 쓰고 읽을 일이 있기는 했지만 주된 업무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나마 있었던 나의 영어 실력이 퇴보하는 사이, 우수한 번역기가 하나 둘씩 출시되면서, 업무하는데 있어서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적은 방심할 때 나타나는 법! 법인 생활을 청산하고 기업으로 이직하니 영어란 녀석이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진급”에 “영어” 항목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비중이 크기까지 하단다. 결국, 나는 다시 OPIC 시험을 보고, 사내에서 진행하는 영어수업을 수강하며, 화상영어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간단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머리를 쥐어 뜯고, 전형적인 콩글리쉬 문장구조에 수치심을 느끼고, 옆 팀에 근무하는 외국인들만 보면 움찔움찔 놀란다. 과연 얼마더 해야 영어 좀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최근에는, 큰 애를 상대로 영어유치원을 보내니마니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2대에 걸쳐서까지 나에게 이렇게 고민을 선사하는 영어란 녀석 이제보니 여간 지독한 게 아니다.


정말 이죽일놈의 영어가 따로 없다.

이전 18화 #19. 너랑 나만 아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