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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쓰 Sep 02. 2024

#21. 이직의 기술

2022년 6월, 7년 정도 근무하던 특허법인을 떠나, 사내 변리사로 근무를 시작한지 어언 2년이 다 되간다. 


“2년 밖에 안됐어요? 한 10년은 같이 일한 거 같아요”

“이제 저보다 회사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동료들은 이제 나를 오랜 기간 함께 일해온 것처럼 대해준다. 기존 직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근무지를 알아보고, 이직을 결심하고, 실제 이직을 하여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어려운 일에 감히 기술이 있다고 자만할 수 없겠지만, 직장생활 13년 중 4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써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직 후 적응하는 팁이라고 해야 하나?


3년 반 정도 특허법인에서 일을 하고, 다른 특허법인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국내회사를 주고객으로 하는 법인에서 해외회사를 주고객으로 하는 법인으로의 이직이었고, 5년 정도 밖에 안된 신생 법인에서 40년 명목을 이어온 오래된 법인으로의 이직이었으며, 50명 규모의 법인에서 200명 규모의 법인으로의 이직이었다.


신생 법인의 막내 변리사로 과한 이쁨을 받아왔던 젊은이의 패기였을까, 업무 능력에 자신감이 붙은 대리급의 뻔뻔함이였을까, 법인이 거기서 거기지 하는 마음에 이직 첫날임에도 생각보다 긴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생활사수와 업무사수가 매칭되고 이것저것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체감하기로 “특허법인”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달랐다. 

처음으로 맡겨진 법률 코멘트에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수의 빨간 펜이 가차없이 그어졌다. 변리사 수가 이전회사에 비해 10배 더 많다보니 경쟁적인 분위기도 한 몫 했다. 담당 부서의 업무가 세분화 되어있긴 했지만, 에매한 영역의 업무들은 오롯이 담당자 책임이었다. 특히, 이전 회사에서 처리하던 방식으로 일을 처리 후 피드백을 받았을 때는 “왜 이렇게 해야하지?” “내 방식이 더 좋은거 아닌가?” “오래된 법인이라 올드하군”이라는 불만이 솟구쳤다. 출근 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한 마인드 컨트롤이 매번 소용이 없을 만한 외로운 싸움이었다.


혼자 땅굴을 파고 있을 때, 그나마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동기들이었다. 동기들은 처음부터 이 법인에 입사해, 계속적으로 성장해 가고 있던 친구들이었다.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하소연도 들어주고 회사 욕(?)도 같이 해주며 나의 어려움도 잘 이해해 주었다.


어느 날, 동기들과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가지던 중 “부수적인 업무 가중으로 인한 비효율성”이 대화의 주제가 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나와 달리, 동기들은 어떻게 하면 부수적인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를 토론하고, 각종 편법들을 나에게 분출하면서 매우 뿌듯해했다. 고마운 동기들임에도 불구하고, 대화 중 미묘한 간극을 몇 번씩 확인하면서, 일종의 깨달음이 왔다. 


한 회사만 경험한 동기들에게 이 회사의 방식과 기준은 당연한 거구나, 나도 모르게 이전 회사의패치를 장착한 채 회사를 바라보고 있었구나


이직 후 빠른 적응을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전 “비워내기”가 선행되야 함을 간과한 것이다. 이전 회사에서 해왔던 모든 것들을 빨리 비워낼수록, 도화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을 지울수록, 새로운 것들이 빠르게 내 마음속으로 안착함을 경험했다.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했던 방식, 기준, 스타일,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내 안에서 저항, 반항심, 반발심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기존의 것들이 완전하지 않고 절대적이지 않음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으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다른 경력직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적응하셨어요?” 라는 질문에 오늘도 나만의 개똥철학을 설파한다.

“그냥~ 최대한 빨리 마음을 비우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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