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발음법, 권10
※ 창언창안의 영어 발음 단막극에서는 영국식 발음 (잉글랜드 남부 발음)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유는 권1의 2부 2악장을 참고해 주세요.
※ 창언창안의 영어 발음 단막극에서 사용하는 발음 표기법은 권5의 간주곡을 참고해 주세요.
저번 장에서 자음의 '있음과 없음'을 다뤄본다고 했죠? 이번 장에서 다룰 것은 바로 울림이 있거나 없는 자음이랍니다!
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익숙지 않지만, 사실 자음을 말할 때 의식적으로 울림을 조절하는 것은 세계 언어 대다수의 공통점이랍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자음의 울림이 무의식적으로 정해지죠. 하지만 우리도 주의 깊게 내 성대와 나오는 소리를 구분하는 것으로 자음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답니다!
"부부"를 말해봅시다. 앞의 [ㅂ]과 뒤의 [ㅂ]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앞의 [ㅂ]는 성대를 울리지 않았고, 뒤의 [ㅂ]는 성대를 울렸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유성음(= 성대를 울리는 소리) 사이에 놓인 무성음(= 성대를 울리지 않는 소리)가 유성음이 되는 변화가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무성음이 유성음이 되는 현상을 유성음화라고 하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 세계적으로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규칙적 소리 변화랍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는 [ㄱ], [ㄷ], [ㅂ], [ㅈ], [ㅎ]에서 유성음화가 일어나지만, 영어에서는 [f], [s], [θ]에서 주로 유성음화가 일어난답니다.
영어에 어떤 자음이 있는지 복습한 다음 바로 유성음화를 다뤄볼까요?
비음 [m] ≈ ㅁ, [n] ≈ ㄴ, [ŋ] ≈ ㅇ
접근음 [l] ≈ ㄹ [j], [w], [r]
마찰음 [s] ≈ ㅅ, [h] ≈ ㅎ [f], [v], [θ], [ð], [z], [ʃ], [ʒ]
파열음/파찰음 [p] ≈ ㅍ/ㅃ, [b] ≈ ㅂ, [t] ≈ ㅌ/ㄸ, [d] ≈ ㄷ, [t͡ʃ] ≈ ㅊ, [d͡ʒ] ≈ ㅈ, [k] ≈ ㅋ/ㄲ, [g] ≈ ㄱ
영어를 배워보신 적이 있다면 영어 복수형의 규칙 예외 중 하나로 아래와 같은 예시를 배우셨을 겁니다.
wolf -> wolves
{늑대 -> 늑대들}
knife -> knives
{칼 -> 칼들}
wife -> wives
{아내 -> 아내들}
물론, 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 예외도 많기 때문에 (roof -> roofs) 영어를 배울 때 맞닥뜨리는 여러 난관 중 하나로 남아 있죠. 그러나 사실 이는 기존의 예외가 규칙화되는 과정에서 남은 잔재랍니다!
영어의 기본 복수형을 떠올려 봅시다. 영어에서는 단어 뒤에 [s] ([ㅅ])을 더하는 것으로 복수형을 만들죠. 그러나 단어가 [s], [z], [ʃ], [ʒ], [t͡ʃ], [d͡ʒ] 소리로 끝난다면 소리가 겹친다고 여겨 사이에 [ɪ] 소리를 더해 소리를 구분한답니다.
위의 여섯 소리는 다른 마찰음과는 다르게 바람이 이빨 쪽으로 통과해 특유의 쉿쉿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작 이빨에 혀를 대고 소리를 내는 [θ], [ð] 소리에는 이런 소리가 나지 않죠. 그래서 이렇게 쉿쉿 소리가 나는 소리를 "치찰음"이라고 한답니다. {이빨 마찰음}이라는 뜻이죠.
치찰음 뒤에 [s]가 오면, 치찰음끼리 겹쳐서 서로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ɪ] 소리를 더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f]에도 이 규칙을 적용해서 [f]으로 끝나면 뒤에 [ɪs] 소리를 더하고, 앞의 [f]을 [v]로 바꿨답니다. 다행히도 이 변화는 규칙적이진 않지만 표기에는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단어를 읽을 때 문제가 될 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뒤에 따라붙는 [s]이죠.
{킥} kick: [ㅋㅣㅋ] [kɪk]
{키드} kid: [ㅋㅣㄷ] [kɪd]
{키스} kiss: [ㅋㅣㅅ] [kɪs]
{퀴즈} quiz: [ㅋwㅣz] [kwɪz]
kicks: [ㅋㅣㅋㅅ] [kɪks]
kids: [ㅋㅣㄷz] [kɪdz]
kisses: [ㅋㅣㅅㅣz] [kɪsɪz]
quizes: [ㅋwㅣzㅣz] [kwɪzɪz]
분명 복수형을 만들 때에는 뒤에 [s] 소리를 더하라고 우린 배웠습니다. 심지어 적을 때도 〈s〉를 쓰죠. 그러나 실제로는 무성음 [p], [t], [k], [f], [θ] 뒤에 올 때만 복수형의 〈s〉는 [s]으로 소리나고, 다른 모든 경우에는 [z] 소리가 난답니다. 치찰음 뒤에서는 [ɪ]을 더해 [ɪz]이 되는 거고요.
왜 이런 규칙이 있을까요? 바로 영어가 게르만계(독일어계)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게르만계 언어의 특징인 자음이 주위 환경에 따라 소리를 잘 바꾸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다루는 것은 자음의 유성음화입니다. 그중에서도 무성음인 [s]이 주위 환경에 따라 유성음인 [z]이 되는 것을 다루는 것이죠.
독일어를 배우신 분들은 뭔가 떠오르실 텐데요, 사실 그 규칙과 완전히 반대랍니다. 독일어에서는 단어의 맨 앞에서 [s]이 [z]이 되는 현상이 있죠? 반대로 영어에서는 단어의 맨 끝에서 [s]이 [z]이 된답니다.
예시를 볼까요?
{-대로} as: [ㅓz] [əz]
{가지다} has: [ㅎㅓz] [həz]
{놓치다} miss: [ㅁㅣㅅ] [mɪs]
{이끼} moss: [ㅁㅗㅅ] [mɔs]
13장에서 봤던 장모음 규칙을 떠올려 볼까요?
한 글자는 단음, 두 글자는 장음
자음으로 끝나면 단음, 없다면 장음
[s]의 유성음화 규칙도 비슷하답니다.
주위에 유성음밖에 없다면 유성음, 아니면 무성음
한 글자는 유성음, 두 글자는 무성음
모음도 유성음이란 걸 생각해 보면 위의 예시에 규칙을 쉽게 적용해 볼 수 있겠죠? 〈s〉로만 끝나고, 앞에 모음(유성음)이 있으며 뒤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주위에 유성음밖에 없고, 따라서 유성음이 된답니다. 3번과 4번 예시를 보면 주위에 유성음 밖에 없지만, 두 글자로 되어 있으니 무성음인 것이죠.
이건 사실 영어의 진짜 자음 분류 기준을 알면 명확해진답니다. 영어의 진짜 자음 분류 기준은 성대의 울림이 아닌, 단단하냐 부드럽냐를 따진답니다. 이를 한자로 경음硬音과 연음軟音, 영어로는 tense와 lax sound라고 하죠. 경음은 흔히 거세고 성대가 울리지 않는 소리며, 연음은 숨이 많이 나오지 않고 성대가 울리는 소리랍니다.
이 경음/연음 분류법을 모음에 적용해 보면 장음은 경음, 단음은 연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음이 더 단단하고 주위 환경에 바뀌지 않는 소리고, 단음이 부드럽고 좀 더 잘 바뀌는 소리니까요. 그리고 이걸 다시 자음에 적용하면, 두 글자로 적은 자음은 경음, 한 글자로 적은 자음은 연음이라는 것이랍니다.
이걸 어디에 써먹냐고요? 게르만계 언어의 주된 규칙인 경음과 연음은 같이 다닐 수 없다는 규칙과 함께 보면 유용성을 알 수 있죠! 모음이 경음이면 자음을 연음으로, 자음이 경음이면 모음을 연음으로 바뀐다는 규칙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유성음화는 이런 배경지식을 가지고 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아래의 여러 단어를 보며 영어의 장음과 유성음화가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는지 익혀 볼까요?
{잃다} lose: [ㄹㅜwz] [lʉwz]
{잃음} loss: [ㄹㅗㅅ] [lɔs]
{제목} title: [ㅌㅏjㅌㄹ] [tɑjtl]
{i 위의 점} tittle: [ㅌㅣㅌㄹ] [tɪtl]
{테이저} taser: [ㅌㅔjzㅓ] [tɛjzə]
{술} tassel: [ㅌㅏㅅㅓㄹ] [tasəl]
{오르다} rise: [rㅏjz] [rɑjz]
{쌀} rice: [rㅏjㅅ] [rɑjs]
{레이스} lace: [ㄹㅔjㅅ] [lɛjs]
{부족하다} lack: [ㄹㅏㅋ] [lak]
〈s〉가 하나라면 [z] 소리, 둘이라면 [s] 소리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어 끝의 묵음 e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는 모음인 것, 잊지 않으셨죠? 또, 두 번째 예시를 통해 자음이 유성음화를 겪지 않더라도 모음에는 여전히 똑같은 규칙이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예시를 통해 〈s〉 두 개 대신 구개음화된 〈c〉를 사용해 동일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저번 장에서 본 걸 그대로 적용한 거죠! 마지막 예시는 저번 장 내용의 복습입니다. 구개음화를 막기 위해 〈ck〉를 사용한 것이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건 다음 악장에서 다뤄보죠!
{숨} breath: [ㅂrㅔθ] [brɛθ]
{숨쉬다} breathe: [ㅂrㅣjð] [brɪjð]
유성음화가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마지막 소리, [θ]입니다! 이 소리의 경우는 위의 [s]보다 훨씬 규칙적 유성음화가 일어나죠. 등장하는 경우는 훨씬 적지만요.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이 유성음화는 명사와 동사 사이를 전환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것입니다. {숨}이라는 명사에서 {숨쉬다}라는 동사가 된 것이 보이시죠? 물론 연음-경음 규칙도 지켜졌고요.
이런 단어쌍이 영어에는 몇 가지 더 있답니다!
{옷} cloth: [ㅋㄹㅗθ] [klɔθ]
{입히다} clothe: [ㅋㄹㅓwð] [kləwð]
{목욕} bath: [ㅂㅏːθ] [bɑːθ]
{목욕하다} bathe: [ㅂㅔjð] [bɛjð]
모두 규칙적으로 유성음화 규칙과 이에 따른 연음-경음 규칙을 지키는 게 보이시죠? 근데, 왜 bath는 소리가 [bɑːθ]인 걸까요? 이건 영국식 발음에서 몇 안 되는 어려운 점인데요, 영국식 영어에서는 일부 짧은 [a]가 [ɑː]가 되었답니다. 영국식 발음의 특색이기도 하죠. 뭐, 예외를 외우는 셈 치는 수밖에요.
그리고 예외 하면 〈th〉 표기를 빼먹을 수 없죠. 유성음과 무성음(정확히는 연음-경음)을 철저히 표기로 구분하는 영어 표기법에서 유일하게 두 소리가 동일한 표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th〉랍니다.
무성음 [θ]을 〈th〉로, 유성음 [ð]을 〈dh〉로 표기하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역사를 보면 원래 [ð]은 [θ]의 유성음화된 형태로만 인식됐을 뿐, 별개의 소리로 인식되지 않았답니다. 기존의 형태에서 바뀌지 않는 영어 맞춤법인 만큼, 지금도 그렇게 표기하고 있는 것이죠.
다행히도, smooth와 with라는 두 예외를 제외하면 단어 끝에서는 유성음화 규칙이 잘 지켜진답니다. 저 둘은 [θ]으로 끝날 것 같이 보이지만 [ð]으로 끝나죠. 하지만 단어 앞에서는 규칙성이 없다고 봐도 된답니다. 그냥 외우는 수밖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명사와 동사를 오가는 연음-경음 규칙이 [θ]에만 있을까요? 당연히 아니랍니다!
{삶} life: [ㄹㅏjf] [lɑjf]
{살다} live: [ㄹㅣv] [lɪv]
{믿음} belief: [ㅂㅓㄹㅣjf] [bəlɪjf]
{믿다} believe: [ㅂㅓㄹㅣjv] [bəlɪjv]
{집} house: [ㅎㅏwㅅ] [haws]
{집을 주다} house: [ㅎㅏwz] [hawz]
{사용} use: [jㅜwㅅ] [jʉws]
{사용하다} use: [jㅜwz] [jʉwz]
[f]의 경우 유성음화 됐을 때 그 결과를 표기에 반영하는 맞춤법 덕분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s]의 경우 뜻을 바탕으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 유추해야 하죠.
심지어, live처럼 {살아있는, 생방송의}의 뜻으로는 [ㄹㅏjv] [lɑjv]로 읽는 경우도 있고, use처럼 {익숙해지다}라는 뜻으로는 [jㅜwㅅ] [jʉws]로 읽는 경우도 있답니다. 영어 맞춤법은 정말 이상하죠?
그리고 또 〈se〉로 끝나는 단어가 다 저런 규칙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서 base나 case처럼 무조건 [s]으로 읽거나 rise나 cause처럼 무조건 [z]으로 읽는 단어도 있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많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 나중엔 이런 단어들을 더 심도 있게 다뤄봐야겠죠? 하지만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영어의 기초 맞춤법 규칙에는 하나가 남아 있답니다! 그러니 다음 장에서는 강세 규칙을 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