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 선택 4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8:

# 선택 4화






사실, 난

산을 타는 게

죽기보다 싫은 남자다.




16. 요즘에도 가끔 셋이서 산을 탄다. 효상이는 내가 등산을 즐긴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도봉산을 따라가는 게 아니었다. 당시의 결정을 너무나 후회한다. 사실, 도봉산에 따라간 이유는 선배의 부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워낙 말수가 적은 효상이다. 동아리 선배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효상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나 역시, 효상이가 걱정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을 탔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도봉산에 혼자만 무장하고 나타난 효상이. 등산화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운동화를 신고 오라고 귀띔[16]은 해줘야 하지 않았나? 민소매를 입어서 팔에는 모기가 맛있게 식사한 자국 천지였다. 산모기한테 당하지 않은 자라면, 붓기와 가려움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지 못한다. 모기에 물린 자국 또한 혐오스럽다. 한동안 한여름에 긴소매를 입고 다녀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접지력이 약한 샌들을 신고 효상이를 따라가느라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피가 거꾸로 솟고 목덜미가 쭈뼛해지는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살아있는 게 천운[17]이었다. 덕분에 손바닥과 발은 물집과 피멍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등산이 처음이라고 이야기했는데도 효상이는 복장에 대해 일언반구[18]도 없었다. 설마 일부러? 아직도 미스터리다. 선배의 부탁으로 이게 무슨 개고생이었던가? 물론, 도봉산 등산 이후로 우리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등산을 즐기는 자를 이해할 수 없다. 산이 싫다. 징그럽다. 정말로.




왜 굳이 힘들게 올라가서

내려와야 하는가?




17. 회사 근처 카페에서 보자고 효상이에게 문자가 왔다. 오랜만에 둘이 만나는 거라, 이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승기가 아닌, 내게 먼저 다가와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다. 그래, 효상아, 우리 정말 친했다. 이제야 내 친구, 효상이로 돌아왔구나. 허구한 날, 가시 돋친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나 주는 승기가 뭐가 좋다고. 승기의 영향으로 효상이도 가끔 승기처럼 냉소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때가 있다. 내가 알던 효상이의 모습이 사라지는 게 못마땅하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와는 다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이래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거다. 갑자기 어머님 말씀이 떠오른다.




“우현아,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야 해.

누구랑 같이 있느냐에 따라서

네가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변해.”





18.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승기는 하관이 발달해서인지, 구강구조가 문제인지, 입을 열 때마다 소리가 난다.




딸깍딸깍, 딸깍딸깍, 딸깍딸깍, 딸깍딸깍

딸깍딸깍, 딸깍딸깍, 딸깍딸깍, 딸깍딸깍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죽겠다. 바늘로 심장을 쿡쿡 찌르는 고통이 느껴져서다. 볼드몰트 사건 때, 위로는 못 할망정, 조언을 방패 삼아 딸깍딸깍 소리를 내는, 바늘로 내 심장을 찌르는 승기의 턱주가리를 아작[19] 내고 싶었다. 그때, 효상이가 내 편을 들지 않았다면, 나와 승기 사이는 진작 끝났을 거다. 몇 시지? 효상이가 오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네. 나도 모르게 거울을 힐끔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승기보다 더 신뢰감 있는 인물로 보이고 싶어서다. 제기랄, 어제 접대의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 있다. 보통 밤새도록 접대하면 다음 날 늦게 출근하는데, 글로벌 미팅이 갑자기 아침에 잡혀서 씻지도 못하고 급하게 나왔다. 떡진 머리,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옷에는 어제의 음식을 예상하게 하는 냄새가 고스란히 베여있다. 영업부 직원에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기에 책상 서랍 안에는 면도기, 칫솔, 세안제, 샴푸, 속옷, 양말 그리고 탈취제로 수북하다.[20] 물건이 다 떨어지면, 그때 새로 사야 하는데, 생각날 때마다 구매해서다. 그래서 서랍 안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날짜를 꼭 확인해야 한다. 얼마 전에도 유통기한이 지난 세안제를 사용해 얼굴이 뒤집혀 고생한 적이 있어서다. 물건을 챙겨서 화장실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지 않나?

머피의 법칙[21]이다.




19. 수염을 세워 면도날과 마찰을 줄이려면 쉐이빙폼이 필요하다. 안 가지고 왔다. 세안제로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세안 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얼굴 주위가 울긋불긋하다. 또, 유통기한이 지난 세안제를 사용했나? 그건 아니다. 환장하겠다. 이런 모습은 효상이에게 신뢰감을 주기 어렵다. 더군다나, 떡진 머리를 대충 물로 씻었는데, 오히려 더 지저분해 보인다. 하필, 그렇게나 많았던 일회용 샴푸가 똑 떨어졌다. 화장실 가기 전에, 편의점 가서 구매했어야 했다. 물로만 머리를 감으면, 현재 상태보다 좋아지리라 생각한 근거가 무엇인가? 더군다나 드라이어기도 없다. 일주일 전에 파마해서, 드라이어기가 없으면 꼬일 대로 꼬인 머리카락은 그대로 굳는다. 양배추 인형이 따로 없다. 꼬일 대로 꼬인 머리카락은 현재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처럼 간단한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효상이에게 어떻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까? 한심하다. 얼굴은 어쩔 수 없다. 당장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어야 한다. 내 친구, 효상이를 악마 승기로부터 다시 찾아야 하니까. 내 엄청 외로웠다고! 내 친구 뺏어가지 마라! 김승기!




“오늘 중요한 고객을 만나야 하니,

깔끔하게 다듬어 주세요.”



to be continued....



[16] 귀띔: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미리 슬그머니 일깨워 줌.

[17] 천운 (天運): 하늘이 정한 운수.

[18] 일언반구 (一言半句): 한 마디의 말과 한 구절의 반《아주 짧은 말》

[19] 아작: 잘게 부서지거나 깨어짐

[20] 수북하다: 물건이 많이 담겨 있거나 쌓여 있다.

[21] 머피의 법칙(영어: Murphy's law)은 어떤 일이 잘못되어 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양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즉, 하려는 일이 항상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