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9: # 출장 2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9:

# 출장 2화






7. 택시가 서서히 멈춘다. 납치는 아니다. 단지 불친절한 택시기사다. 다행이다. 아직 내 운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내린 곳 또한 한적한 폐공장은 아니다. 다만, 도착한 곳이 아버지가 일러준 주소인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했어요. 아버지가 일러준 주소가 대학교였어요?

저 지금 대학교 정문 앞에 있어요.”


“알았다, 금방 나가마. 조금만 기다려라.”



불친절한 택시기사가 정확하게 안내한 듯싶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불안함이 사라지니,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쉰다. 한숨을 쉬고 주위를 둘러본다. 나무, 멀리 보이는 육교, 오래된 상가, 그리고 수많은 자동차가 보인다.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다 놀라운 점을 발견한다. 나른한 냄새? 목욕탕에서 때를 민 후, 다시 태어난 상쾌함을 만끽하며 거리로 나왔을 때 한적한 거리의 냄새. 이 상쾌함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솔의 눈’을 먹어야 한다. 오늘이 일요일이라고 말하는 그 거리의 냄새. 지금 난 그 냄새를 이곳에서 느낀다. 휴일인가 싶어서 요일을 확인한다. 아니다. 평일이다. 왜 이런 기분을 느낄까? 한적해서다. 한국처럼 빽빽하게 붙어있는 빌딩은 보이지 않는다. 공간의 여유로움을 뽐내는, 듬성듬성하게 놓인 건물이 눈에 띈다. 그렇다고 산업화가 덜 된 도시의 느낌도 아니다. 현대식 건물과 중국 특유의 향을 자랑하는 건물이 얽히고설켜서다. 그래, 대륙의 스케일이다. 건물이 많아도, 사람이 많아도, 나무가 많아도, 각종 조형물이 많아도,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대륙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건물이 있음에도 한적한 냄새를 풍길 수 있는 도시가 존재하다니. 조금은 부럽다. 한편으로 무슨 짓을 하면 이렇게나 큰 대륙의 하늘을 뿌옇게 덮을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 또한 대륙의 스케일이라 말할 수 있을까?



“오랜만이구나. 아들.

제법 어른스럽네.

이제 너도 중년이구나.”





8. 담담하게 말하는 아버지가 낯설다. 상상한 부자간의 상봉[53]은 아니다. 15년 만이다. 첫눈에 알아보기 어려웠다. 상상한 외모와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다. 수척[54]해진 아버지의 외모를 상상했다. 보통 야반도주하면 그런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너무나 건강해 보인다. 살도 제법 찌고, 누가 봐도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이다. 이처럼 잘 먹고 잘살고 있었나니! 그동안 마음고생을 한 내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건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다. 상상한 외모의 아버지를 만나는 게 더욱 괴로운 일이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더욱더 궁금하다. 건강한 외모만큼 돈이 될 거라는 기대가 들어서다.



“우현아, 보는 눈이 많아서,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어.

아버지 차는 저쪽에 있어. 따라서 오너라.”



아버지를 만나면, 그동안의 설움과 원망 그리고 그리움을 동시에 토해낼 거로 상상했다. 막상 아버지를 만나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딱히 할 말은 없다. 설사 있더라도 말하고 싶지 않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니, 조금은 알겠다. 아버지의 심정을. 고등학교 때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다. 뭐, 다투었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아버지에게 불만을 토로[55]했다. 한참 전 일이라,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게 그렇다. 매일 아침에 먹는 시리얼의 브랜드는 기억도 못 한다. 반면에 한 달 전, 지하철 안에서 잠시 스쳐 간, 물방울무늬를 지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짧은 단발머리에 굵은 웨이브가 돋보이는 발롱펌을 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매력적인, 아나운서 스타일의 귀여운 여성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아직도 뇌리[56]에 선명하다. 와이프는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된다. 내 선별적 기억력을.



기억이라는 게 그렇다.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시의 감정을 대변한다.





9. 여하튼, 당시에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던진 말씀이 있다.



“왜? 내가 그리도 못마땅하냐?

네 놈도 너와 똑 닮은 놈을 낳아 키우면

그때는 이 아비를 이해할 거다. 못난 놈.”



나와 똑 닮은 놈을 낳아 키우니 알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가는 세상의 고난과 무서움은 크고 깊었다. 아이는 이러한 세상을 알아서도 안 되고, 이해해서도 안 된다. 매일같이 사회의 칼날에 베인 상처를 감추며, 행복하고 따뜻한 사회를 보여주려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숭고함은 아이를 키우니 저절로 깨닫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내 아이가 몸담은 사회가 행복하고 따뜻했으면 한다. 설사 아이가 성인이 되어, 그토록 감추려 한 사회의 추악함으로 상처를 입을지라도, 지금은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그 숭고함을 알 리가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관심은 따뜻하다.


하지만

지속적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관심은 불편하다.


하지만

지속적이다.


타인의 짧은 명언에 깨달음을 얻어

세상에 건배하지 않았으면 한다.


잇몸으로 자갈을 씹으며

피투성이의 발로

당신을 위해

길을 내어 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했으면 한다.[57]





10. 30분을 아버지 발걸음에 맞춰 아무 말 없이 걷는다. 누군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다. 운전기사다. 멀리서 보아도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 차가 보인다. 과거 영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다. 얼마나 광택을 냈는지 주위의 모든 빛을 반사한다. 반사된 빛은 사방팔방 뻗어가 차 주위를 환하게 한다. 아니다, 눈이 부실 정도다. 더군다나 빨간색 세단이다. 모든 이가 아버지의 차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한가 보다. 하긴 나였어도 궁금했을 거다. 자동차도 아우라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방금 깨닫는다. 진짜 간지 폭발이다. 이게 아버지 차라니! 미심쩍었던 아버지의 제안은 성공의 확신으로 변한다. 승기야! 효상아! 우리 정말로 인생 2막 시작이다!



아버지는

완벽하게

재기[58]했다.



to be continued....



[53] 상봉 (相逢): 서로 만남.

[54] 수척하다 (瘦瘠―): 몸이 마르고 파리하다.

[55] 토로 (吐露): 속마음을 죄다 드러내어 말함.

[56] 뇌리 (腦裡): 생각과 기억이 들어 있는 머릿속.

[57] 안정호,『나는 B급소피스트입니다』, 북트리, 2021, p130

[58] 재기(再起): 다시 일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