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FT 빅 리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이미 피해 참상과 전황,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많은 글이 있다.
하지만 오늘의 글은 서방이 전쟁 후 러시아에 가하고 있는제재가 현장에서 얼마나 준수하기가 어려운지, 피해 갈 수 있는 수많은 구멍이 있는지, 러시아가 제재를 피해 여전히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심층 리포트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내용을 정리해보면,
파이낸셜 타임스는 위성사진과 같은 1차 자료들을 통해 흑해에 드나드는 선박들의 경로와 목적 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항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약탈한 식량들이 선적되어 시리아, 터키 같은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원래도 식량 수출대국이었고,
제재 하에서도 러시아가 수출하는 식량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약탈한 식량을 크림반도의 항구에서 수출하는 것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후 제재의 대상이다. 즉 위법이다.
러시아는 선박위치 추적장치를 끄는 편법을 사용해서 세바스토폴에서 선적했지만 러시아 항구에서 선적했다고 속이고 우크라이나 탈취 식량을 반출하고 있는 것이다. 선박 대선박(ship to ship) 옮겨 싣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탈취식량을 원래 러시아항 구애서 수출용으로 실어온 식량과 섞어 반출할 수 있다.
거기에 러시아의 식량이 수출되는 목적지는 시리아, 터키 같이 제재에 협조적이지 않은 나라들로, 이를 통해 러시아는 현금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이 부여하는 제 재는 현장에서는 피해 갈 방법이 너무 많아 그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다. 전쟁이 지속됨에 따라서 이런 제재 회피 행위는 지속될 것이고 서방이 제재를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즉 러시아가 수출로부터 외화를 계속 벌어들여 전쟁자금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것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전쟁으로 심각해진 식량위기를 더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도 서방에 불리한 요인이다. 원래 러시아에서 출발하는 식량들은 북아프리카와 중동행이었으므로, 정상적인 식량 수출행위를 엄격히 규제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식량이 아닌 다른 물품도 앞으로 이런 방법을 거쳐 밀반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마리우폴(Mariupol)과 같은 점령당한 영토의 항구들이 속속 문을 열면서 이항구들을 통해서 물자를 반출하고 이 물자들이 러시아 항구를 한 번 거치도록 세탁되어서 러시아 자금 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터키 기업들과 같은 주오 거래선들은, 러시아 항구에서 출발한 것인 줄 알았다고 하면 그만이다.
브뤼셀에서 6차례에 걸친 제재의 채택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씁쓸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서방 제재는 채택까지도 너무나 험난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독일과 같이 러시아의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들이 갑자기 에너지원을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러시아의 군사공격에 민감한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급속한 러시라 에너지 수입 중단에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러시아가 유럽 전체의 40% 이상을 공급해왔던 천연가스에 대한 제재는 아직도 합의되지 않고 있고, 러시아산이 27%를 차지했던 원유에 대한 제재조차 육로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입은 예외로 허용해주도록 겨우 합의가 도출되었던 것이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모두 다른 입장차이를 극복하고 일정한 제재 조치에 합의한다는 것은 연합이 지금까지 내렸던 어떤 결장보다도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합의된 제재조차도 현장에서 효과적인 이행이 어렵다면? 천연가스나 원유뿐만 아니라, 식량 또한 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전이 될수록 우크라이나를 더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서방은 무기는 물론 한 달에 50억 유로 이상 되는 우크라이나 정부 운용에 필요한 기본 자금을 금 융 지원해주고 있으나 7-8천억 유로 이상으로 추정되는 복구 비용까지 생각하면 유럽이 져야 하는 재정적인 부담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부담스러워질 것이다.그 사이에도 러시아에는 원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농산물과 약탈 물자를 통한 현금 유입이 지속되어 러시아가 전쟁 자금으로 사용될 것이다. 이미 러시아가 수출하는 원자재들 가격 폭등으로 제재의 효과가 반감되어버린 상황에서, 제재 메커니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전쟁의 피해자는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의 시민들이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진정 바란다면, 자국 국민들에게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에 승리해 야 한다는 논리보다, 이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끝없이 상승하는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당장 유권자들의 겨울이 춥고 비쌀 것이라는 논리로 어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