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없는 자취
무게 없는 자취: 사라지지 않는 흔적
향수는 참 간사하다. 뿌리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유혹은 이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고, 그 어떤 물리적인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그 찰나의 매혹을 위해 값 주어 향수를 구한다. 덧없이 스쳐 가는 찰나의 향을, 마치 손끝에 영원히 담아둘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며. 그것이 존재의 순간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리라 믿으면서.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향기를 남기고 싶어 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기억되기를 갈망한다. 몸을 다듬고, 정신을 수양하며, 세상 속에 자신만의 고유한 향을 새기려 노력한다. 한 방울의 귀한 정유가 허공 속에서 매혹적으로 춤을 추듯, 우리 존재 또한 세월의 흐름 속에 미묘하고 아름다운 결을 남기기를 염원한다. 영원히 기억될 그 한 조각의 흔적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다.
그러나 결국, 삶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가장 진한 향도 시간이 지나면 스르르 사라져 버리고, 아무리 깊은 숨결도 결국은 차가운 바람 속에 흔적 없이 흩어진다. 언젠가 우리의 육체마저 흙으로 돌아가면, 그 어떤 형태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이다. 어쩌면 향수와 우리의 삶은, 끝을 알고도 시작하는 덧없음 속에서 가장 깊은 통찰을 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땀을 흘린다. 포기하지 않고 걷고, 또 걷는다. 힘겹게 흘린 땀방울 속에는 희미한 소금기가 배어난다. 그 하얀 소금기는 우리의 치열한 노력과 열정의 증거처럼 피부 위에 작은 흔적을 남긴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그 흘러간 시간과 애쓴 과정들은 우리 자신의 내면에, 혹은 누군가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깊은 자취를 새긴다. 조용하고 묵묵히,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그 흔적을 남긴다.
향은 사라지고 숨결도 흩어지겠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의 '흔적'이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새겨지는 우리의 태도와 과정, 그리고 마음인지도 모른다. 땀 속에 녹아든 진심처럼, 무게 없는 듯 보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아름다운 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