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중성
시간의 이중성: 같은 얼굴, 다른 표정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 평소보다 조금 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웬일인지 나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신호등은 마치 나를 위해 미리 준비된 것처럼 가는 길마다 한 번에 초록불로 바뀌었고, 만원이어야 할 출근길 주차장은 거짓말처럼 비어 있었다. 여유롭게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린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진정한 평온함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참으로 평온한 아침이었다.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날은, 마치 시간마저 나의 편인 듯 느껴진다.
하지만 매일이 이런 완벽한 아침일 수는 없다. 다른 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일찍 서두르고 더 긴장한 채 집을 나섰지만, 그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가는 길마다 신호등은 번번이 빨간 불로 나를 막아섰고, 여유로웠던 주차장은 꽉 막힌 거대한 정체 구간이 되어 있었다. 휴대폰에서는 약속 시간에 늦을까 초조해하는 재촉 전화가 연이어 울리고, 익숙한 길 위에서 나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좌왕우왕 헤매기 시작한다. 마치 모든 세상이 나를 방해하려는 듯한 얄궂은 장난처럼.
그 순간 문득, 이 모든 시간의 흐름을 누가 조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때로는 순풍처럼 나를 밀어주고, 때로는 거대한 장벽처럼 나를 가로막는 시간. 시계는 항상 같은 얼굴로 일정한 속도를 가리키며 나아가지만, 그 시간은 나를 대하는 표정을 매번 달리한다. 어떤 날은 더없이 너그럽고 관대하게 흐르다가도, 또 어떤 날은 손톱만큼도 양보하지 않고 가혹하게 나를 몰아붙인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객관적인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은 주관적이다. 즐거운 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지루하고 힘든 순간은 더디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처럼 일상의 소소한 경험 속에서도 시간의 이중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누군가는 똑같은 24시간 속에서 성공을 일구고, 또 누군가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한다.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어떤 경험과 감정을 느끼는지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시간은 그저 존재할 뿐, 좋고 나쁜 표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를 대하는 시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상황이 그 시간을 다르게 느끼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그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시간이 가진 이중성 앞에서, 우리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