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보고
대학시절, 서태지로부터 시작된 1세대 아이돌의 등장으로 나는 힙합 바지를 입고 다녔다.
통이 큰 바지 밑단 안쪽에 양면테이프를 붙여 당시 유행하던 워커에 딱 붙인, 일명 '똥싼바지'였다.
물론 상의는 딱 붙는 쫄티. 근데 요즘 젊은이들이 바지통은 넓게, 상의는 짧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보니 정말로 유행은 돌고 도나보다. 이러다 우리 원준 오빠가 입던 치마바지도 다시 보게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패션뿐 아니라 역사 속 사건들도 다시 재현된다.
전쟁의 끔찍함을 그토록 겪었으면서도 침략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평범한 일상을 공격하는 테러가 그 누구에게도 좋은 것을 안겨 주지 않고 오히려 잔인한 앙갚음의 시작점이 된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테러는 계속된다.
어떤 역사학자는 전 세계적으로 평등을 주장하던 진보 세력이 약화되고 소위 극우 세력이 등장하는 것 역시 역사의 반복적 패턴이라고 말한다. 그 패턴의 다음 단계가 과거에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글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2022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제1차 세계 대전을 그린 이야기이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국가를 지키겠다는 정의감으로 자원 참전한 17살 파울은 단 며칠 만에 전쟁의 공포에 휩싸인다. 옆에 있던 친한 친구가 총에 맞아 죽고, 한 발자국 차이로 살아남고,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알 수 없는 총알이 빗발치는 저곳을 앞으로 전진하라는 명령에 따라 무작정 달려 나간다.
비할 말로 적절하지는 않지만 마치 영화가 '이게 복불복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말하는 것만 같다.
파울이 전장에 있는 동안 독일과 프랑스는 휴전 협상을 진행 중이다.
패색이 짙어졌음에도 독일은 곧바로 휴전 협상에 사인하지 않고 며칠의 시간을 보낸다. 프리드리히 장군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욕하며 계속 싸워야 한다는 말을 넓은 거실 어마어마하게 큰 식탁에 앉아 고기를 뜯으며 지껄인다. 그 며칠 동안 또 수많은 독일과 프랑스 군인들이 죽어나갔다.
이 영화는 이미 영화 시작 몇 분만으로 메시지의 전달을 끝낸다. 이 도입부만 봐도 영화를 다 본 것과 다름없을 정도이다. 시작은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또 다른 군인 하인리히로부터이다.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명령에 따라 앞으로 달려 나가다 가슴에 총을 맞고 전사한다. 사망한 하인리히의 벗겨진 군복은 세탁되고 꿰매어져서 신병에게 새 군복으로 전달되고 이 군복을 받은 사람이 바로 파울이고 이후부터 파울의 전장 속 전투일기가 좀 더 상세하게 보이는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인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1914년 10월 전쟁 발발 직후, 서부 전선의 전투 양상은 참호전으로 굳어졌다.
1918년 11월 종전 무렵 전선의 이동은 거의 없었다.
이곳에서 300만 명이 넘는 병사가 사망했으며, 대개는 고작 몇 백 미터 땅을 차지하려는 전투에서였다.
1차 세계대전에서 대략 17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영화의 원제 <im westen nichts neues>는 '서쪽에는 새로울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능력한 국가 지도자, 전쟁터에 있지도 않으면서 승리를 말하는 장군은 이기기 위한 전쟁도, 그 어떤 명분을 위한 전쟁도 아닌 그저 허울뿐인 명예와 자존심을 내세우며 젊은 군인들의 목숨을 져버린다.
재유행하는 똥싼바지와 쫄티, 잔스포츠 가방처럼 인간의 악행도 반복되는 듯하다.
노자 (老子)는 '역사는 돌고 온다. 이유는 인간이 가진 욕심 때문이다'라고 했다.
전쟁을 일으키는 지경까지 가 버리는 인간의 욕심은 평범한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남의 것을 뺏어 자신의 것을 불리려는 인간의 욕심은 누군가의 시간과 기회를 앗아간다.
이 세상 사는 게 처음이라서 잘 모른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수많은 시간 동안 이어져온 사람들의 삶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욕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별 수 없다. 당해보고 겪어보며 교훈을 찾는 수밖에.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잘못이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사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매일이 치열한 생계인 일상에서, 하인리히와 또 다른 하인리히인 파울이 생겨나지 않게 지혜롭고 과감하게 내 안의 욕심들과의 전쟁을 끝내려고 해 봐야 겠다.
끝내는 것이 불가능 하다면 휴전 협상에 사인이라도 해야지.
단 하루라도 욕심부리지 않는 날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