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현실에 뿌리 내리려는 노력
육아휴직으로 전업주부가 된 지 5개월이 되어 간다.
종종 회사 이야기가 들려온다. 휴직 전까지 회사 기획실에서 일을 했던 터라 회사 경영과 관련된 이 일, 저 일에 관여하는 게 대부분의 내 일이었다.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나를 일 잘하는 직원 그룹에 포함시켜 취급해 주었어서 내가 하는 일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물론 책임도 무겁긴 했지만 말이다.
얼마 전 함께 일하던 동료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를 통해 듣게 되는 대부분 회사와 관련된 안 좋은 이야기들이었다. 경영이 위기 상황이라고 하기도 하고, 사장님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일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회사를 쉬고 있는 와중인데도 회사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을 들으니 참 속이 상했다.
그러면서 혼자 머릿속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설계를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런 식으로 하면 우선은 정리를 할 수 있고, 이런 방법을 제안하고 신속하게 처리한 다음에.. 뭐시기 뭐시기...
그러다가 내가 지금 상상 속 설계를 하고 있는 장소가 회사가 아니라 우리 집 내 책상 앞이라는 것을 문득 인식했다. 그러고 나서 일단 처음 든 감정은 안도감..
'아, 그 복잡한 일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가 안해되 되는구나'
그러고 나서 두 번째 든 감정은 황당함.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당장 복직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지금 거기에 내가 없어서 그런 일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이런.. 또 자기 인정 욕망에 빠졌구만'
세 번째 든 감정은 부끄러움.
'진짜 머릿속으로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대는구나. 배가 불렀다 불렀어. 교만해 나는 교만해..'
그리고 평상심(平常心)을 갖게 되길 바랐다.
'내가 앉아있는 곳은 내 집이고 조금 후에 올 내 아이들 간식거리를 준비해야 하고, 오늘 저녁 남편 퇴근 후 먹을 저녁찬도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다음 주에 치르기로 한 자격증 시험공부도 마저 해야 하고 큰 아들 중간고사 일정도 체크해서 숙제로 내주어야 한다..'
평상심을 되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릴 적에는 교회 수련회나 학교 수학여행을 며칠 다녀오면 그 재미와 즐거움의 후유증이 며칠 동안 지속되고, '네 멋대로 해라'나 '다모'같은 드라마(최근에는 '스물다섯스물하나', '갯마을 차차차')를 보고 나면 남녀 주인공 사랑이야기에 푹 빠져 며칠간 그들이 실제 하는 것처럼 내 머릿속을 휘젓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막 찾아보며 그래서 생각이 온종일 딴 데 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진짜로 사겨라 사겨라'하면서)
근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젠 그게 좀 덜하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내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있고, 내가 할 일 역시 어디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이제껏 즐거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시간이 알려주는 지혜 같다.
부질없는 상상에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현실이 어떻든 감정의 기복을 줄이고 최대한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이게 나를 위해
중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더 많이 들고 있다.
이런다고 해서 당장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딱히 묘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 차분해지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 혹은 평상심을 다시 찾아오는 일에는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혼자서 가만히 앉아 이 문제 속에 서 있는 내 속을 한번 들여다 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서 말이다.
동료와 잠시 이야기 나누는 동안 나는 내 상상 속에서 내가 뭐라도 된 양 회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어 있었다. 자기 과신 역시 평점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그저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 보면
해 떠서 아침 되고 달 밝아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꽃 피고 여름 되고 가을 돼서 겨울 되는 것처럼 필요한 시기에 내가 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마음속을 튼튼하게 해서 평상심으로 일상을 살아가 보려고 노력 한다.
가끔은 우당탕탕이기도 하지만, 실수는 습관으로 줄여나가며 내 일상의 무게중심을 잘 잡아 보고 싶다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 그래서 기대되고 값지게 느껴지는 이유인가 보다.
참..
한창 늦은 40대 중반에 결단한 육아휴직 시간들이 나름 치열하게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