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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찬이가 벌어온 3천원의 대가 <인형극>

조정래의 <인형극>을 읽고

by 김태경

요즘 부부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 상당하다.

아내와 남편 중 누가 더 나쁜 인간인지를 시합하듯 보여주며 매우 개인적인 생활들을 여과 없이 방송한다.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이들의 불화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결론 내리기에 바쁘다.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이혼 위기에 놓은 부부들의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은지 '어머어머'하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더라.

이런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그 부부의 아이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험한 부부의 싸움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있는 자녀들, 불 꺼진 방에서도 눈 뜨고 그 살벌하고 무서운 욕들을 그대로 듣고 있는 자녀들.. 남편과 아내는 자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전투를 벌이지만 사실 그 아이들이야 말로 더 이상 너네들과는 못 살겠다며 부모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걸어야 할 판이다.


어린아이들은 도출된 결과만을 보고 세상을 배우지 않는다.

그 결과가 나오는 과정,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 그 감정의 일관됨과 누적 정도에 따라 성격이 형성되고 이를 바탕으로 대처 도식이 발달하게 된다.

말도 못 하는 갓난아이가 왠지 모르게 엉덩이가 축축해서 매우 불편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울어대는 것뿐이다. 울음으로 내 불편함을 표시할 때 누군가 와서 기저귀를 갈아서 불편한 감정이 사라지면 '아 내가 울면 내 불편함이 사라지고 누군가가 오는구나'하며 엄마 배 밖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터득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온몸으로 의지하며 성장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가의 성장은 결과보다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중요한 셈이다.


조정래 님의 단편 <인형극>은 가난으로 초등학교도 못 다니고 있는 영찬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날 영찬이 엄마는 영찬이를 깨끗이 세수시켜 주며 '그 아줌마 말 잘 듣고 와라'라고 말한다. 영찬이는 친구 창호와 함께 엄마 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이상한 냄새가 나는 아줌마를 따라 차에 올라탄다. 자신과 동갑내기인 낙준이의 집에 도착한 영찬이는 그 아줌마가 시키는 대로 몇 가지 말을 외운다.

누가 아버지의 직업을 물으면 '예 우리 아버지는 태양 무역 사장입니다.' 특기를 물으면 '저의 특기는 피아노입니다.' 어디까지 공부했냐고 물으면 '저는 체르니까지 배웠습니다'라고 답해야만 했다.

낙준이의 비싼 옷, 비싼 구두를 얻어 입고 영찬이는 사립초등학교 추첨장으로 가게 되고, 당시 사립초등학교 입학 경쟁률이 3:1이었던 탓에 낙준이 엄마는 가난한 꼬맹이 몇 명을 데려다 추첨에 당첨되는 방법을 시도했던 것이다. 결국 영찬이가 돌린 공으로 당첨된 덕에 영찬이는 그날 무려 3천 원을 벌게 되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엄마가 세수시켜주는 것에서부터 차를 타고 낙준이네 가서 연습을 하고 3천 원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영찬이의 속생각이 가득 담겨있다.

특기, 체르니가 무슨 말인지 몰랐던 영찬이는 기가 죽었고 낙준이 아빠가 검사라는 걸 알고 아빠가 엿장수인 것이 창피하게 느껴졌고 낙준이네 화장실에는 비누도 휴지도 양변기도 있는 걸 보고 자신의 집이 얼마나 더러운지도 순간 느끼게 된다.

사실이 아닌 가짜 이야기를 하다가 걸리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설사 뽑힌다고 해도 나중에 면접을 보게 되면 거기서까지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어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잘 모르니까, 알 필요가 없는 일이니까 그냥 지나가는 일들이 있다.

가만히 있어봐. 저리로 가 있어. 네가 알 거 없어라는 말들을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이 일은 아이들은 처리할 수 없는 일이고 여기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고 굳이 아이들이 알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영찬이도 무슨 일 때문에 여기에 왔는지,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다. 시키는 대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니 그대로 했을 뿐이지만 영찬이는 그 순간 평생 기억하게 될 수치심과 거짓말이 주는 자책감, 3천 원이면 이래도 되나 하는 의구심, 낙준이네와 자신들의 환경적 차이에 대한 불편함 등 많은 감정을 타의적으로 간직하게 되고 말았다.


혹시 엄마에게 3천 원을 가져다주며 '저 검사가 될래요 엄마'라고 영찬이가 한 말을 가지고, 영찬이에게 꿈이 생겼다거나 영찬이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될래?"라고 물으면 보통은 선생님이요, 의사요, 경찰이요 라며 직업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사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정말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할 수 있게 교육하고 돌봐줘야 한다는 글이었다.

"저는 친절한 버스기사가 될래요."

"저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선생님이 될래요."

"저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될래요."

그러려면 직업 선택은 아이들에게 맡겨두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옳은 일들 속에서 바르게 알려주는 일이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내 아이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잠시 반성해 본다.

가급적 저리 가봐, 가만히 있어봐 같은 말들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오진 않았는지, 좀 더 분명하게 설명했어야 하지 않는지 말이다.

참,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고 키운다는 것만큼 아이러니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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