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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상처 안 받나..<타인에게 말 걸기>

은희경 님의 <타인에게 말 걸기>를 읽고

by 김태경

나이가 들수록 아줌마 기질이 생겨난다.

여기서 아줌마 기질이란 '타인에 대한 일상적 수준의 참견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한 사람이 내가 사는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00번 버스가 여기에 서는지, 000로 가려면 이 방향에서 타는 것이 맞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봤는데, 질문을 받은 그 사람이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 있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예전이라면(20대~30대 초중반?) 나는 대부분 모른 척했을 것이다. 혹은 나한테 물어보면 그때 답해줘야지 하면서.. 하지만 지금(40대 초 중반)의 나는 그 사람에게 가서 여기서 oo을 타고 가면 된다고 말을 해 줘 버린다.


마트 야채 코너에서 어떤 식물이 미나리인지 모를 때 예전이라면 안 샀거나 미나리처럼 보이는 종류를 다 샀겠지만, 지금은 옆에 있는 아주머니나 할머니에게 어떤 게 미나리인지 서슴지 않고 물어본다. 내가 집었던 건 돌미나리였어서 해물탕에 돌미나리를 넣어도 되는 건지, 급기야 해물탕 레시피 정보도 얻는 말 섞음까지 한다.


아줌마 기질은 나름 유익이 있는 것 같다.

다만 그 정도가 일상적 수준의 광범위한 정보 교환과 관여를 넘어 사생활 영역에 가서 닿거나 상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아줌마 기질보다는 그냥 불필요하고 과한 오지랖 넓은 '피곤한 사람'일 것이다.


아줌마 기질은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자녀를 키우며 아직 어린, 젊은이들의 모습이 꼭 내 집 아들 딸 같아 한번 더 쳐다보고 챙겨주게 되는 경험, 40년 혹은 50년 이상 삶 속에서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들이 선물해 준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과 만나 흡사 모성애로, 잔소리로, 덧붙이는 말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

내 생각에는 그렇다.


하지만 내가 아줌마 기질로 점차 능글능글 해 진다고 해서 타인과 친밀한 교제를 더 잘하게 되는 건 또 아닌 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공통 접점 찾거나 만들어내야 하고, 속내를 내 보이거나 혹은 완벽한 위선과 가면을 쓴 채 웃으며 들어주고 시간을 써야만 한다. 그러니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아닌 분들도 많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은희경의 단편소설 <타인에게 말 걸기>에는 '나'와 '그녀'가 등장한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특별히 도드라지는 행동을 하거나 나서는 남자가 아니라 그저 사람들을 관찰하며 속으로만 생각하는 편이다.

반면에 '그녀'는 소위 잘 들이대는 스타일이다. 거침없이 대시하고 그러다 남자에게 차이기 일쑤이고 유부남과 연애하는 것도 서슴이 없다. 이 소설은 '그녀'가 도덕적인가 아닌가를 따지려 하지 않고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 외로움을 푹 젖은 사람 중 하나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 그녀는 이상하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한다. 돈도 빌리고 산부인과 동행을 요청하기도 하고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호자로 부르기도 한다. 그와 남녀로서 교제를 했었다거나 오래된 친구라거나 연인이 아닌데도 말이다.

소설 말미에서 그 둘은 이렇게 대화한다.


"내일 또 올 거지?

"뭐?"

"그때 산부인과에 따라가 달라고 처음 찾아갔을 때, 왜 하필 너였는 줄 알아?"

"왜 그랬는데"

"네가 친절한 사람 같지 않아서야. 거절당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았어... 그리고 만약 병원에 따라가 준다 해도 너한테 라면 신세 진 느낌이 적을 거라고 생각했지. 남의 비밀을 안 뒤에 갖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정 같은 것, 그런 것을 나눠주지 않을 만큼 차갑게 보였기 때문이야."

"..."

"난 네가 좋아.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냉정함 말이야. 그게 너무 편해. 너하고는 뭐가 잘못되더라도 어쩐지 내 잘못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어떻게 하면 너처럼 그렇게 냉정하게 살 수 있는 거지? 사실은 너도 겁이 나서 피해버리는 거 아니야?"


모른 척하면 편한 일들이 있다.

복잡한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못 본 척하기도 해야 한다.

너는 냉정하고 정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속 뜻처럼, 냉혈인으로 살며 누구와도 정을 나누지 않는 단조로움에 만족한다면 아예 상처받을 일을 안 만들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로 그렇게 살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외롭고 상처 많은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나'인 것 같다.

겉으로 말을 많이 하진 않지만 소설 속에 그려지는 '나'의 머릿속 생각은 복잡하고 치밀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두터워질수록 상처를 덜 겁내며 보다 인간다운 감정과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참 고결한 일일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아줌마 기질은 무심코 툭 말을 걸기에 참 쓸모 있는 기술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더불어 살고,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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