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님의 <조동관 약전>을 읽고
훌륭한 작가분들의 단편소설을 읽는 일이 즐겁다.
사실 예전에는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다. 역사, 철학, 자연과학 관련 책들을 읽는 편이었는데 읽다 보니 어느 순간 글을 따라가는 게 힘들었다.
기억해야 할 모든 글들을 적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그렇다고 안 적기에는 책 덮으면 싹 다 까먹는 탓에 약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의 지적 허영심이었으리라!
지금도 인문학책을 간간히 읽고 있다. 재미있는 책도 있고 여전히 어렵고 버거운 책도 있다.
어느 날, 가볍게 읽으며 머리 식혀 보자 하고 소설책을 둘러봤는데 두껍기도 하고 분권 된 시리즈 소설은 부담이 됐다. 그래서 이미 업계에서 훌륭하다고 추천된 단편소설집을 읽기 시작했다.
단편 소설은 길이도 길지 않고 소재도 다양해서 쉽게 읽혔다.
무엇보다 그 소설 속에 바로 인문학이 들어있었다. 역사, 사회관계, 사람의 마음 등등
어떤 책은 단 몇 장으로 세상과 인간사를 담아낸다.
대서사를 담은 장편소설도 훌륭하지만 사람과 사회, 시간을 단 몇 장으로 담아낸 소설가들의 통찰력에 연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읽은 소설은 성석제 님의 <조동관 약전(略傳)>이다.
일전에 <처삼촌 묘 벌초하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갑작스레 방문하겠다는 처가댁 식구들의 전화 한 통에 예초기를 집어 들고 혼자서 벌초하다 역시 갑자기 반전의 전화 한 통을 받고 먼 산 바라보게 된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치 글을 읽는 족족 텔레비전 속 드라마나 콩트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착착 극화되는 재미난 글이었다. 이 단편 소설 <조동관 약전>도 마찬가지이다.
조 씨 성의 동관과 은관 형제가 동네에서 벌이는 난장판과 말로(?)를 담은 이야기이다.
난장판이 있기 전 동관과 은관의 캐릭터가 설명되는데 단 서너 줄만으로도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똥깐은 이란성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났는데 죽을 때까지 형 은관과 대략 일천 회 이상의 드잡이질을 벌였다. 그 드잡이질은 똥깐의 타고난 체격에 담력과 기술, 자잘한 흉터를 안겨 주었고 그가 은척 연사상 불세출의 깡패로 우뚝 서는 바탕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상황을 설명할 때는 어디에 앉아 있고 무엇을 하고 앉아 있는지에 대한 정보(?) 보다 작가의 시점에서 만담 하듯 독자들에게 툭 던져주는 이야기가 너무도 재미나다.
"똥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역전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와 술을 대작하는 사람은 쌍둥이 형 은관이었는데 그 무렵 은관은 부인과의 전쟁에서 치명적인 패배를 당한 뒤로 꽤나 의기소침해 있었다. 형제는 '여자란 백해무익한 존재'라는 주제에 관해 오랜만에 의견 일치를 본 참이었다.."
이 짧은 소설은 읽는 내내 키득키득하게 만든다.
주인공들의 행태도 재미있지만, 이들을 묘사하는 관찰자이자 만담가인 작가의 위트와 글 속에 묻어나는 자신감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 작가님의 소설을 이렇다 저렇다 할 만한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고 그저 심심하던 차에 재미있으려고 소설책을 집어 든 초보 독자라는 걸 전제로 쓰는 내 생각임을 밝혀둔다^^)
그런 말 있지 않나. '말발로 씹어 먹는다..'
분명 인쇄된 종이활자로 읽고 있는데 말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소설이다.
내가 똥깐이 있는 그 은척 읍민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똥깐이 사고 치기를 바랐던 은척 사람들의 호기심도 이런 것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의 상상력이 인쇄된 종이글 속에 살고 있는 은척 사람들과 동관, 은관..
성석제 작가님의 상상력을 글로 옮겨 쓰는 놀라운 재능이 감탄스럽고 부럽고 그렇다.
이 소설 덕에 요새 소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게 잘 쓸 수 있을까..?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