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어려운 길을 선택하기 <삶의 기쁨>

헬렌 켈러의 시 <삶의 기쁨>을 읽고

by 김태경

뒤늦게 마라톤을 시작한 친구가 있다.

42.195km를 여러 차례 완주했고, 시간이 나는 대로 복싱을 배우고, 주말에는 항상 산에 간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힘들지, 너무 힘들지. 근데 그걸 다 뛰고 나면 그 감격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그거 때문에 뛰는 거 같아"

그래서 나도 아이들 학교 간 다음에 공원에 가서 빠르게 걷던 걸음을 조깅 격으로 바꾸어 보았다.

친구처럼 42km 미터는커녕 1km 미터 뛰고 헉헉 거리지만, 얼마동안 해 보니 걷는 것과 뛰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온몸에 땀이 나고 헉헉 거리면서도 몸 전체로 느껴지는 '내가 뛰었다"는 사실이 내게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요 며칠은 제법 선선해진 저녁과 밤 사이에 나가 뛴다. 1킬로 뛰고 걷고, 또 1킬로 뛰고 걷는 완전히 불완전한 러닝이지만 나름 열심히 뛰는 가운데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


중학생인 큰 아들은 수학 학원 가는 걸 너무 싫어했다. 두세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숙제가 많아 놀지도 못하는 친구들을 보며 학원은 다닐게 못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학원에 억지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냥 두었는데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서 나에게 와서 말했다.

"엄마, 이제 수학학원에 가야 될 것 같아. 학원 보내주세요"

"학원에서 3시간씩 있어야 하고, 숙제도 많을 거야. 다니기 전에 테스트도 봐야 할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지. 학원 다니는 애들이 시험을 잘 보는 거 같아. 나도 가 볼래"

학원 다닌 지 3개월 정도가 지난 아들은, 학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별 것 아니었다고, 숙제도 할 만하고 생각보다 괜찮다고 말하며 어깨를 뿜뿜해 댔다.

학교 시험 점수가 나와봐야 학원의 효과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으나, 그것 이전에 아이가 좀 더 나은 것을 위해 나름 어려운 길을 고민하고 선택했다는 것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아이 공부와 학원에 대한 예시가 적절한가 싶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헬렌 켈러의 시 삶의 기쁨에 대한 것이다)

헬렌 켈러의 시 <삶의 기쁨>을 소개한다.


삶의 기쁨

-헬렌 켈러


우리의 삶에 뛰어넘어야 할 아무런 한계가 없다면,

우리가 하는 경험들의 결실은 기쁨을 잃어버린다.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가는 고난이 없다면,

산 정상에 서는 기쁨도 사라진다.



한계는 언제나 나로부터 온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은 한계가 아니라 그냥 내게 주어진 자리이므로, 한계라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고작 동네에서 운동 삼아 러닝 하는 것, 아이 학원 가는 것에 헬렌 켈러의 시를 갖다 부치는 것이 민망하지만

이제까지 했던 모든 선택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므로 내가 무의식적으로 정해 놓은 내 한계를 넘어서는 일도 가끔씩은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무료하고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나만 아는 희열이나 뿌듯함,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글 쓰는 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널브러져 먹으면서 넷플릭스 보면 그만이겠지만 나는 무정하게 지나가기만 하는 시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책상에 앉아 내 생각과 감정을 굳이 정리한다. 그리고는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글 쓰는 대로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생각하는 대로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상 속 소소한 기쁨을 느끼고야 말 것이다.


내일 대장내시경 예정으로 오늘 오후부터는 굶어야 하지만,

이 한계를 괴념치 않고 오늘 저녁에도 밖으로 나가 뛰어 보련다. 대장내시경 약 먹기 전에.

그럼 잠 자기 전 일기 쓸 때 뿌듯함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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