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천우 Mar 15. 2022

사람은 발이 있다

조선족과 한복

 논란 많던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그 어떤 올림픽, 월드컵, NBA 올스타전에도 관심 없는 나이지만 개회식의 ‘한복공정’ 논란만은 관심이 갔다. 중국의 ‘뻔뻔스러운 야욕’ 때문이 아니라 공분하는 몇몇 한국인들 때문이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살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그들처럼 공분했을 것이다. 한복은 한국만의 전통 의상이니, 중국 56개 소수민족들이 저마다의 전통 의상을 입고 개회식에 등장할 때, 조선족은 한복 대신 치파오라도 입고 나와야 했을까. 그렇게 했어도 조선족이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만주족에 동화되었다며 누군가는 공분했을 것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각종 간판이나 도로표지판은 한글을 먼저 쓰고 한자를 뒤에 쓴다. 가게 주인이 한족이어도 가게 이름을 한글로 먼저 써 놓아야 한다.(소수민족동화책으로 곧 '한자 먼저, 한글은 뒤'로 바뀔 예정이다.)



 연길 시내 중심가에는 김치가게와 한복가게를 쉽게 볼 수 있고 그 가게에 들어서면 한국어로 물건을 살 수 있다. 조선족 직장동료의 결혼식에 갔더니 신랑 신부가 한복을 입고 있었다. 기차역이나 공항, 다리, 가로등에도 한복이나 장구 등의 상징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다 보면 영화 ‘황해’나 윤계상이 연기한 ‘장첸’으로만 연변이나 조선족을 기억하는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 나와 비슷한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먼 곳에서 아직도 한국어(연변어)를 사용하고 김치를 담그고 특별한 날에는 우리처럼 한복을 입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연길 아파트 외벽의 관용 홍보물, 오성기 아래 한복 입은 여인이 장구춤을 추고 있다.


다양한 민족의 화합을 강조하는 연길 도로변의 관용 홍보물,  맨 아랫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 사람이 한복을 입고 있다.


 …어떤 민족 문화적 집단이 어떤 땅과 동일하다는 의미에서의 ‘민족’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나 산과 같은 풍경의 요소와는 달리, 사람은 발이 있다.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민족이라는 것이 있는가? 국가와 영토와 민족이 늘 동일한가? 하나의 민족이 같은 하나의 국가를 이루며 동일한 영토에서 지금껏 살고 있을 리가 없다. 사람에게는 발이 있으니까. 내 조상들과 같은 터전에 살며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던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그곳에 다른 이념의 다른 국가가 들어섰고 새로운 국경과 영토가 정해졌다. 이제 이들은 우리와 다른 나라에 속하게 되었어도, 세대를 거듭하며 그 수가 줄긴 했어도, 여전히 떡과 김치를 먹고 한복을 입는다. 이주가 먼저고,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한민족인지, 조선족인지는 한참 나중에야 정해진 것이다. 조선족이 현재 자신이 속한 국가의 공식 행사에, 자신의 뿌리를 나타내는 한복을 입을 권리쯤은 있지 않을까.


 용정에 있는 윤동주 생가에 갔더니, 윤동주를 일제에 저항한 ‘조선족 시인’이라고 정문 앞에 써 놓았다. 돈화시에 있는 발해 오동성은 흔적도 없이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고, 발해 왕족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스러운 동모산에는 발해를 당나라 시대 지방정부로 소개해 놓은 비석이 있었다. 공분은 그럴 때 터트리는 거다.

.

이전 01화 세상 모든 이야기의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