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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pr 02. 2022

날씨가 좋아서 찾아갔어요

연길시 전면봉쇄 해제, 청명절 연휴의 풍경

 드디어 오늘부터, 3주간의 연길시 전면봉쇄가 해제되었다. 학교, 학원, 대형마트나 백화점, 수영장 등은 여전히 폐쇄지만, 미용실, 안경점, 식당(배달만), 택시 등은 영업 가능하다. 출입증을 제시하고 홀/짝 일로 드나들었던 거주지 출입도 자유로워진다.

전면봉쇄 해제 관련 연길 지역 신문 헤드라인

청명절(清明节)이 다가와서 그런지 날이 따뜻하고 하늘은 더없이 맑다. 무진의 명물이 안개라면, 연길의 명물은 단연 하늘이다. 외국인이라 건강바코드나 7차례의 핵산검사 음성증명서는 없지만, 어쨌든 나도 나가기로 한다. 봉쇄 기간 내내 한 시도 잊어본 적 없는 그곳, 혼자 쓸쓸히 잠들 때마다 상상하던 그곳을 향해.


아파트 보안 아저씨의 간섭 없이 아파트 출입문을 쏙 빠져나온다. 문득, 늘 지나치던 아파트 광장의 단발머리 동상이 눈에 띈다. 옆에 있는 동상은 루쉰인 줄 알겠는데 이 사람은 대체 누굴까. 이럴 수가! 한자를 자세히 읽어보니 애인사(爱因斯坦), 아인슈타인이었다! 과학박물관도 아닌 아파트 단지 내에 뜬금없는 아인슈타인 동상이라니, 게다가 3년 만에야 겨우 알아보다니!  


인민공원을 가로질러 간다. 라틴댄스팀, 아이돌댄스팀, 에어로빅팀, 오합지졸 막춤팀 등 평일 낮에도 여러 광장무 팀으로 쿵짝쿵짝 시끌벅적하던 곳. ‘대중 집결 금지’라는 정부 지시에 인민공원 광장이 휑하니 비어있다. 한데 인도 계단 아래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한국 트롯 가락. 주변에 앉아있던 어르신들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흥을 주체 못 하고 한 둘씩 일어나 춤사위를 시작한다. 열 맞춰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한족 어르신들이고 저런 소규모 프리스타일은 대부분 조선족 어르신들이다. 봄을 맞는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어쨌든 좋은 것이다.



인민공원 호수도 보인다. 여름이면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 피고, 겨울에는 썰매나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로 붐비는 인민공원 호수, 그 호수의 단단했던 얼음이 천천히 녹고 있었다. 늘 봄이 갑자기 온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봄은 이렇게 서서히 오는 거였다. 먼저 얼음이 부드러워지면서 녹고, 개울이 흐르고, 비가 오고 따뜻한 바람이 불고 그다음 꽃이 피는 거였다.



연변대 앞을 지난다. 가게에서 나온 한 아이가 비눗방울을 불어 날린다. 바람이 내 쪽으로 불어 무수한 비눗방울이 내 옷과 눈가에 와서 터진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의심스러운 간판들을 지나친다. 화양 수영관과 사우나, 버거킹은 아직도 문이 닫혀있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의심스러운 간판들

아! 드디어 찾아왔다. 我的店你的甜(나의 가게 당신의 달콤함), 디저트 빵집!

봉쇄기간 동안 브런치를 열심히 읽고 다졌던 미니멀리즘, 채식주의, 소비단식, 냉장고 파먹기, 두부 다이어트 등의 각오를 당장 내팽개치고 내 눈이 혹하고, 내 혀에 구미 당기는 아이들은 모조리 쟁반에 담는다. 가격 따위는 물어보지  않는다. 먹을 입이 하나뿐인 1인 가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신은 절대 그 맛을 알 수 없 디저트를 양손 가득 들고, 신은 절대 누리지 못 봄 속을 춤추듯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유한하고 늘 실패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인간이라서 행복다.

봉쇄해제 기념으로 너희들을 몽땅 잡아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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